정직한 대화
나는 꽤 오랫동안 기억력이 좋은 사람이라고 믿어왔다. 이야기 하나, 얼굴 하나, 문장 하나도 잘 잊지 않는 편이었다. 그런 나를 두고 사람들은 ‘기억력이 참 좋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나는 내 기억만큼은 언제나 정확하고 견고할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어느 날, 그 믿음은 조용히 흔들렸다.
오랜 친구와 나눈 대화 속에서였다.,같은 사건을 이야기하는데, 그의 기억과 나의 기억이 너무 달랐다. 나는 확실히 그렇게 기억하는데, 그는 전혀 다른 장면을 떠올리고 있었다. 순간 낯선 감정이 밀려왔다. ‘내가 기억하는 이 장면은, 정말 진짜일까?’ 그날 이후 나는 알게 됐다. 기억이란, 결코 고정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시간이 흘러갈수록, 기억은 마치 오래된 사진처럼 희미해진다. 빛이 바래고, 색이 흐려지고, 어느 순간엔 그 사진 속 얼굴조차 흐릿해진다. 그 사실이 두려웠다. 나의 지난 시간, 나의 감정, 나의 하루들이 그렇게 조용히 사라지는 게 너무 아쉬웠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잊히지 않기 위해서. 잊히지 않기 위해서.
“글을 쓴다는 건, 자신을 사라지지 않게 만드는 일이다.” - 에르네스트 헤밍웨이
나는 이 문장을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고 산다. 나의 글쓰기는 단지 취미나 표현의 수단이 아니다. 그건 기억을 붙잡는 일, 나라는 존재를 잃지 않기 위한 하나의 의식이다.
누구보다 성실히 일했고, 때로는 몸과 마음을 다 바쳐 노력했던 시간들이 있었다. 그것이 직장이든, 작은 사업이든, 혹은 삶의 도전이든 그 모든 순간이 내겐 치열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치열함조차도 결국 ‘희미한 추억’으로 변한다. 그리고 그마저도 내가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다면, 나의 이야기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그 생각이 나를 붙잡았다. 누군가에게 기억되지 않더라도, 적어도 나는 내 삶을 잊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쓴다. 이야기를 남긴다. 지워지지 않도록, 사라지지 않도록.
글을 쓴다는 건 단순히 ‘기억을 적는 일’이 아니다. 그건 ‘내가 나 자신을 다시 만나러 가는 일’이다. 펜을 들 때마다 나는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만난다. 어제의 나, 조금 더 어리고 미숙했던 나, 때로는 너무 예민해서 상처받았던 나. 글을 쓸 때 그들과 마주한다. 그리고 나는 묻는다.
“그때의 너는 왜 그렇게 아파했니?”
“무엇을 잃었고, 무엇을 배웠니?”
그 대화가 때로는 눈물이 되고, 때로는 미소가 된다. 그렇게 한 줄, 한 줄 써 내려가다 보면, 잊고 있던 기억이 다시 살아난다. 잊었다고 생각했던 감정이 문장 속에서 숨을 쉰다. 내가 쓴 글들은 거창하지 않다. 누군가에게 자랑할 만한 성공담도 아니고, 세상을 바꿀 만한 메시지도 없다. 그저 내가 살아낸 하루들, 그날의 공기, 그때의 냄새, 그 순간의 마음들. 그것들이 모여 내 삶의 조각이 된다. 그 조각들을 하나씩 꿰매며 나는 ‘나의 이야기’를 만든다.
사람들은 말한다. “그런 평범한 이야기를 누가 읽겠어?” 하지만 나는 안다. 진짜 글은, 읽히기 위해 쓰는 게 아니라 남기기 위해 쓰는 것임을. 누군가의 마음에 닿지 않더라도, 내 안의 기억이 사라지지 않는 한 그 글은 이미 의미가 있다. 어쩌면 글쓰기는 ‘나를 위한 가장 정직한 대화’다. 세상 앞에서 포장하지 않아도 되고,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 있는 그대로의 나로 서는 자리, 그게 바로 글 속이다.
나는 오늘도 펜을 든다. 때로는 두려움이 있고, 때로는 ‘이걸 왜 쓰고 있나’ 싶은 허무도 있지만, 결국 다시 돌아오는 이유는 단 하나다. 글을 쓸 때만 나는 사라지지 않는 나가 되기 때문이다. 세상에 나의 자리를 대신할 사람은 있어도, 나를 대신할 사람은 없다.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이라면 언젠가 자신만의 언어를 써 내려가야 한다.
비에 젖은 나뭇잎처럼 기억은 쉽게 닳고 스러진다. 그러나 그 자리에 글을 남기면, 그것은 다시 한 송이 이야기로 피어난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 내가 책을 남기려 하는 이유는 결국 그 ‘피어남’을 믿기 때문이다. 나는 언젠가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쓴 문장 속의 나는, 아직 웃고 있고, 고민하고 있고, 살아 있을 것이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나는 잊히지 않기 위해 쓴다.
그러나 더 솔직히 말하면,
나 자신을 다시 만나기 위해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