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옳음'을 향한 충성
군대는 철저히 서열의 세계였다. 모든 것은 계급으로 나뉘고, 모든 판단은 계급에 의해 정해졌다. 명령은 위에서 내려오고, 복종은 아래에서 올라간다. 이 단순한 수직 구조 안에서 한 인간의 인격, 지식, 나이, 경력은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계급이 곧 권위이고, 계급이 곧 진리였다.
‘계급이 깡패다.’
군 생활을 하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었다. 처음엔 그저 농담처럼 들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말의 의미를 실감하게 되었다. 계급은 명예이기도 했지만, 때로는 방패였고, 때로는 무기였다. 누군가는 그것으로 자신을 감췄고, 누군가는 그것으로 타인을 누르며 버텼다. 나는 그런 현실이 늘 불편했다.
나는 문제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부당한 지시, 잘못된 관행, 불합리한 구조 앞에서 “그건 잘못된 것 같습니다.”라는 말을 꺼내곤 했다. 하지만 그 한마디는 언제나 공기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자네는 너무 앞서 나가. 조직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아.”
“좋은 뜻인 건 알겠는데, 그런 말은 윗분이 불편해해.”
결국 ‘바른말’은 늘 나를 고립시켰다.
내가 상급자에게 보고하던 수많은 문제들은, 대부분은 이미 다들 알고 있는 것들이었다. 다만 아무도 말하지 않았을 뿐이다. 말하면 감당해야 하니까. 그들은 조용히 넘어가는 법을 배웠고, 나는 끝까지 맞서는 법을 배웠다. 그 차이가 나를 외롭게 했다.
어느 날, 작전과에서 근무할 때였다. 지속적으로 지휘권문란을 일으키는 간부가 있었다. 진급을 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진 상급자에게 충성하고, 직속상관과 동료들은 투명인간 취급을 하는 인원이었다. 나는 그 즉시 상급자에게 보고서를 올렸다. 재발 방지 대책과 개선안을 함께 정리했다. 하지만 돌아온 건 칭찬이 아니라 질책이었다.
“왜 문제를 밖으로 키우나?”
“조용히 넘어갈 수 있었던 일을 왜 문제 삼느냐?”
그날 이후 나는 모든 업무에서 배제당했고 오랜 기간 아무도 드나들지 않는 창고에 존재감 없이 방치되었다. 군복 위 계급장은 여전히 번쩍였지만, 내 마음속의 신념은 무겁게 가라앉고 있었다.
그때 깨달았다. 군대는 단순히 명령 체계가 아니라,
‘책임을 나누는 구조’이기도 하다는 것을. 누군가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계급을 이용했고, 누군가는 책임을 다하기 위해 계급을 감내했다. 나는 후자를 선택했다. 그게 내 양심이었고, 나의 군인정신이었다.
결국 나는 계급장을 내려놓게 되었다. 누군가는 ‘승진의 길을 스스로 닫았다’고 했지만, 나는 후회하지 않았다. 군인은 계급으로 평가받을 수 있지만, 진짜 군인은 ‘충성의 방향’으로 기억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 방향이 비록 내 진급의 길을 막았다 해도, 그건 나의 선택이었다.
군 생활을 돌아보면, 계급보다 더 큰 힘은 ‘신념’이었다. 명령은 하루를 지배하지만, 신념은 평생을 이끈다. 계급은 벗을 수 있지만, 신념은 버릴 수 없었다. 나는 군복을 벗은 지금도 여전히 ‘명령’ 대신 ‘양심’의 소리를 듣는다. 그게 내게 남은 마지막 군인정신이다.
지금도 가끔 묻는다.
“그때 그냥 조용히 있었으면 더 편했을 텐데, 왜 굳이 그랬냐”라고.
나는 웃으며 대답한다.
“군인은 편하자고 있는 게 아니니까요.”
군인의 본령은 복종이지만, 진정한 군인의 가치는 ‘옳음’을 향한 충성에 있다. 나는 그 신념 하나로 버텼고, 그 신념 덕에 여전히 똑바로 설 수 있다.
계급장은 사라졌지만, 내 마음속의 별은 여전히 빛난다. 그 별은 진급으로 얻은 별이 아니라, 양심을 지킨 자만이 품을 수 있는 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