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새벽의 공기는 사람 마음의 깊은 곳을 건드리는 힘이 있다. 세상이 모두 잠든 듯 고요한 시각, 나는 문득 눈이 떠졌다. 침대 옆 창문으로 희끄무레한 겨울빛이 스며들었다. 아직 해가 뜨기 전, 빛이라고 부르기엔 이른, 어둠의 잔향에 가까운 빛이었다.
나는 조심스레 창문을 열어 보았다. 틈 사이로 스며든 겨울의 찬 기운이 한순간에 목덜미로 파고들었다. 차갑다 못해 송곳처럼 피부에 박히는 공기. 순간, 본능처럼 내 몸은 뒤로 움찔했고 나는 얼른 창문을 닫았다. 그리고 마치 도망치듯 따뜻한 이불속으로 몸을 파묻었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이런 순간을 안다. 추위 앞에서 갑자기 아이가 되어버리는 모습. 세상으로부터 숨어들고 싶은 작은 마음.
하지만 이불속으로 숨은 그 순간, 나는 자연스레 이런 생각을 했다.
‘아, 이래야 겨울이지.’
겨울은 겨울다워야 한다. 계절은 저마다의 언어를 갖고 있고, 그 언어는 때때로 불편함을 통해 우리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 봄이 온화한 바람으로 속삭인다면, 겨울은 매서운 찬바람으로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깨어 있으라, 지금이 바로 너의 시간이다.”
나는 어쩌면 겨울의 차가움을 오랫동안 잊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따뜻함에 익숙해진 몸은 늘 그 온도를 당연한 듯 받아들이지만, 찬바람을 맞닥뜨리는 순간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이 있다. 따뜻함은 원래 ‘기적’ 같은 것이었다는 것.
우리는 사소한 고마움을 잊는다. 따뜻한 방, 손을 감싸주는 머그잔, 아침에 누군가 건네는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라는 말. 그 모든 것들이 사실은 겨울이라는 차가운 배경 위에서 더욱 빛나는 것임을.
겨울의 찬 기운이 코끝을 때리는 오늘, 나는 문득 그런 생각에 잠겼다. 추운 건 괴롭지만, 따뜻함의 진짜 가치를 일깨워주는 계절이기에 겨울은 우리가 잊어버린 감각을 되찾게 한다. 아프게라도 깨우는 계절이 겨울이다.
또한, 사람의 마음도 계절을 닮았다. 누군가는 차갑게 굳어 있는 마음을 지니고 있고, 또 다른 누군가는 묵직한 슬픔 속에서 얼어붙어 있다. 그들의 마음에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일은 뜨거운 도움도, 대단한 행동도 아닐지 모른다. 다만, 아주 사소한 따뜻함을 건네는 것.
말 한마디. 눈 맞춰 미소 짓는 일.
“괜찮아요.” “수고했어요.” 같은 말들.
그 말들이 누군가에게는 이불속 같은 온기가 된다. 잡아줄 손이 없을 때 말은 손보다 더 따뜻한 것을 품고 있다. 겨울 창문을 열어젖힌 순간의 차가움처럼, 삶은 우리에게 종종 예상치 못한 냉기를 건네곤 한다. 갑작스러운 소식, 감당하기 어려운 말들, 설명할 수 없는 외로움이 어느 날 갑자기 스며들기도 한다.
그러나 바로 그때, 누군가의 아주 작은 온기 하나가
우리를 다시 살아가게 만든다. 나는 그래서 오늘 하루만큼은 겨울이 주는 메시지를 따뜻하게 번역해 보고 싶었다. 겨울바람은 말한다.
“추위를 견뎌라.”
하지만 마음의 목소리는 이렇게 답한다.
“그러니 서로에게 따뜻해져라.”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는 문명을 설명해 달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첫 부러진 뼈가 회복된 흔적. 그 상처가 회복될 때까지 누군가가 돌보아 준 흔적이 문명의 첫 시작이다.”
차갑고 거친 자연 속에서도 사람이 사람을 살린 순간이 문명의 시작이었다는 것이다.
겨울의 찬 공기 속에서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새삼 떠올렸다. 결국엔 우리가 이어지는 이유도, 계절을 건너 살아내는 이유도, 서로에게 건네는 온기, 그 작은 친절 덕분이다.
그러니 오늘 하루, 나는 나 자신에게도 말해본다.
그리고 지나가는 모든 사람에게도 마음속으로 건네본다.
“춥지요?
오늘은 조금 더 따뜻해지길 바랍니다.”
겨울의 찬바람이 비로소 제 역할을 다하는 날, 우리는 따뜻함을 나눔으로써 서로의 계절을 조금씩 덜 춥게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