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으며 살자고요
나는 참 재미없는 사람이었다.
적어도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왔다. 웃기는 이야기를 하거나 농담을 던지는 사람을 보면, 괜히 가볍고 실없어 보였다. 웃음 뒤에 숨은 깊이를 보지 못한 채, 진중함만이 사람을 단단하게 만든다고 믿었다.
옳은 말, 맞는 말, 틀리지 않는 말만을 골라하는 것이 나다운 태도라고 여겼다. 그게 어른스러움이고, 책임감이며,
사회 속에서 나를 지켜주는 갑옷이라고 생각했다.
오랫동안 그렇게 살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삶이 묘하게 무거워졌다는 걸 느꼈다. 말은 늘 정확했지만 공기가 딱딱했고, 관계는 유지되었지만 숨이 막혔다. 웃음은 늘 남의 몫이었고, 나는 듣는 쪽에 머물렀다. 그게 성숙이라고 착각하면서.
그런 나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은 아내였다.
요즘 아내는 가끔 이런 말을 한다.
“자기야… 도대체 어디서 그런 걸 배우고 오는 거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쯤 웃으며, 반쯤 의심스러운 얼굴로 묻는다. 그럴 때면 나도 속으로 웃음이 난다. 나 자신도 아직 믿기지 않기 때문이다.
며칠 전 저녁이었다. 여느 때처럼 함께 식사를 하다, 나는 별것 아닌 농담을 꺼냈다.
“자기야, 경찰서 반대말이 뭔지 알아?”
아내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경찰 앉아.”
순간 아내가 멈칫하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하…”
잠시 웃음이 가라앉자, 내가 또 물었다.
“사자는 왜 자꾸 숙제를 미루는 줄 알아?”
“음… 모르겠어.”
“밀림의 왕이니까.”
아내는 한 번 더 웃고는, 웃음기 남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한다.
“자기야…근데 어디 학원 다녀? ㅎㅎ
나한테는 괜찮은데 딴 데 가서는 그러지 마.”
그 말이 이상하게도 싫지 않다. 오히려 정답처럼 느껴진다. 사실 나는 다른 데에서는 잘 그러지 않는다. 밖에서는 여전히 조심스럽다. 사회적 지위라는 이름의 옷을 입고 있고, 바라보는 시선들이 있다는 걸 안다. 말 한마디, 웃음 하나에도 책임이 따르는 자리에서 살아왔으니까. 그래서 웃음은 늘 절제했고, 유머는 아껴두었다.
다만, 아내 앞에서는 다르다.
비록 저녁시간이더라도 하루의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사람. 하루의 끝에 마주 앉아 식사를 나누는 사람. 그 사람 앞에서는 조금 내려놓아도 괜찮다는 걸, 나는 뒤늦게 배웠다. 그래서 요즘의 나는, 저녁 시간이 다가오면 은근히 생각한다. 오늘은 어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줄까. 어떤 말에 아내가 웃을까. 어디서 하나 건져온 이야기라도 하나 들려주고 싶어진다.
아내가 웃으면, 나도 웃는다.
그 웃음은 단순한 반응이 아니라, 하루를 무사히 건너왔다는 신호 같아서.
생각해 보면, 웃음은 가벼움이 아니라 여유에서 나온다. 모든 걸 통제하려던 시절에는 웃을 틈이 없었다. 틀리지 않기 위해 애썼고, 무너지지 않기 위해 긴장했다. 그럴수록 표정은 굳었고, 말은 딱딱해졌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웃을 수 있다는 건, 그만큼 마음이 단단해졌다는 증거라는 걸.
아내 앞에서만 허락된 유머는, 내가 나 자신에게 허락한 가장 부드러운 변화다. 진중함을 버린 게 아니라, 진중함 위에 웃음을 얹은 것이다. 맞는 말만 하던 사람이, 이제는 따뜻한 말도 할 수 있게 된 것. 그 차이가 삶을 훨씬 숨 쉬기 좋게 만든다.
아내는 여전히 가끔 말한다.
“당신, 예전 같지 않아.”
그 말속에는 걱정도, 놀라움도, 그리고 분명한 만족이 섞여 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속으로 생각한다. 그래, 나는 예전 같지 않다. 그리고 그게 참 다행이다.
웃음은 늦게 배워도 괜찮다.
특히, 누군가를 웃게 하기 위한 웃음이라면 더더욱.
오늘 저녁에도 나는 아내를 마주 앉아 또 하나의 농담을 꺼낼지도 모른다. 그게 조금 유치하더라도, 조금 엉성하더라도 상관없다. 아내가 웃고, 그 웃음에 나도 따라 웃을 수 있다면, 그 하루는 충분히 잘 산 하루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