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오지 않는 순간들
누군가와 시간을 나눈다는 것은 결국 마음 한편에서 그 사람을 소중히 품고 있다는 증거다. 무심한 듯 흘러가는 하루 속에서도 누군가에게 시간을 쓴다는 일은 결코 가벼운 선택이 아니다. 그 안에는 말로 다 표현되지 않는 정성과, 오래 묵혀 빛이 되는 사랑이 배어 있다.
종종 생각한다.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은 어디로 흘러가 있을까. 사라진 듯 보이지만, 사실은 우리의 마음속 어딘가에서 조용히 쌓여 다져지는 건 아닐까.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정은 절대 경제적인 조건이나 순간의 편의로 설명되지 않는다. 처음 몇 번의 만남은 우연처럼 보일지 몰라도, 결국 곁에 남는 시간들은 마음이 선택한 결과이다. 사랑은 말보다 ‘머무르는 시간’으로 증명되는 법이다.
살아가다 보면 하루는 지나치게 빠르고, 인생은 믿기 어려울 만큼 쏜살같다. 문득 어제 같았던 날들이 어느새 몇 년 전의 기억이 되어 있고, 서로 어색했던 시절조차 그리운 장면처럼 떠오르곤 한다. 지나간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지만, 그 시간 속에 함께 있었던 누군가는 마음 안에 오래오래 잔향처럼 남는다.
그래서 나는 안다. 함께 보낸 순간은 결코 소모되지 않는다는 것을. 잠시 머물렀던 대화도, 가볍게 흘려보낸 웃음도, 아무 의미 없는 듯 걸어가던 길들도… 언젠가는 다 추억이 되고, 기억 속 따뜻한 온기가 되어 우리 삶을 지탱한다.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바빠서 시간을 내기 어렵다"라고. 하지만 나는 안다. 시간을 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가닿는 곳에 시간을 배치하지 않았을 뿐이라는 것을. 바쁨은 이유가 되지만, 사랑은 늘 방법을 만든다.
나는 아내와의 시간을 '남는 시간'에 끼워 넣지 않는다. 아무리 바빠도, 일이 밀려 있어도, 피곤함이 하루를 짓누르고 있어도… 아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은 늘 따로 확보하는 것이지 남은 틈에 덧붙이는 일이 아니다. 그조차 사랑의 방식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매일 함께 나누는 시간은 길지 않을 수도 있다. 식탁 앞에서 몇 마디 주고받는 이야기, 산책 중 나뭇잎 하나에 대해 웃으며 하는 잡담, 하루의 끝에 나누는 짧은 눈인사… 그런 것들이 쌓여 우리를 만든다. 사랑은 큰 사건에서 완성되는 게 아니라, 매일의 작은 시간들이 조용히 이어 붙여 완성하는 작품 같은 것이다.
돌이켜보면 우리 삶의 많은 순간들이 그렇게 쌓여왔다. 버거운 날에도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며 안도했고, 좋은 날에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기쁨을 나눴다. 때로는 서로의 침묵조차도 이해하게 되었고, 함께 걷는 길의 속도도 닮아가기 시작했다. 그 모든 시간들이 모여 지금의 우리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마음속으로 되뇐다.
나는 아내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아내와 함께 살아가는 시간을 만드는 것이라고.
우리가 걸어온 많은 날과 앞으로 걸어갈 날들 속에서,
서로에게 할애한 그 소중한 시간들이 삶을 기어이 단단하게 버티게 해 줄 것이라고. 아무리 세월이 빨라도, 마음으로 나눈 시간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고.
오늘도, 내일도. 나는 아내에게 시간을 ‘내어주는’ 사람이 아니라, 아내와 시간을 ‘함께 만들어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사랑은 시간을 주는 일이 아니라,
시간을 함께 만들어가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