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같은 석화 한 접시
겨울이 오면 유난히 차가운 바람 사이로 지나간 세월의 결이 더 또렷하게 느껴진다. 그중에서도 한 장면은 매해 빠지지 않고 찾아오곤 한다. 아내 앞에 놓인 석화 한 접시. 얼음 위에 가지런히 눕혀진 굴껍데기들, 까만 윤기와 은은한 바다 향을 품고 있는 속살들. 나는 평생 먹지 못하는 음식인데도 이상하게 이 장면만큼은 익숙하고 따뜻하다. 아내가 빛나는 얼굴로, 마치 오래 기다려온 선물을 만난 듯 흐뭇해하며 젓가락을 드는 그 순간 때문이다.
언제부터였을까. ‘아내는 생굴을 정말 좋아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던 건 불과 몇 해 전의 일이었다. 오랜 세월을 함께 살았지만, 사람은 끝끝내 다 알 수 없는 비밀스러운 취향을 품고 사는 법인가 보다. 나는 먹지 못하는 음식이라 굳이 접할 일이 없었고, 또한 아내도 늘 나에게 맞추다 보니 스스로의 작은 기쁨을 말없이 접어두었던 모양이다. 내가 그것을 알게 된 건 어느 겨울 저녁, 회집에 들렀을 때였다.
“자기, 혹시 굴 좋아해?”
내 질문에 아내는 의외로 환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당황스러울 만큼 순수한 표정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겨울이면 일주일에 한 번은 꼭 회집에 들러 석화를 주문한다. 그저 아내가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아내가 그 접시 앞에서 보여주는 표정은, 참 묘하다. 다 큰 어른이면서도 순간적으로 어린아이가 되는 듯한, 기대와 기쁨이 섞여 무장해제가 되는 순간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애틋함이 밀려온다.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할 때 가장 크게 느끼는 감정 중 하나는 그 사람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목격하는 일에서 온다는 사실을 나는 그때마다 새삼 깨닫는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우리의 지난날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때 정말… 짜장면 한 그릇도 제대로 못 사 먹었었지?” 아내가 웃으며 말하면 나도 따라 웃지만, 그 안에는 서로만 아는 묵직한 기억이 한 조각씩 숨어 있다. 어설프고, 서툴렀고, 가진 것도 없던 시절이었다. 서로에게 기대기도 미안해하던 때, 대접받기보다는 주고 싶은 마음이 앞섰지만 현실은 늘 모자랐던 때. 그래서 우리는 결혼해서도 돈이 없으면 사람들을 만나지도 않는 날들이 많았다. 서로에게 부족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가 아니라, 상대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럼에도 우리는 늘 베푸는 것이 더 마음 편한 사람들이었다. 누군가에게 한 끼를 대접하고 나면 지갑은 가벼워져도 마음은 늘 이상하게 든든했다. 그런 우리만의 방식은 세월이 흘러도 바뀌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절의 가난이 우리를 좁게 만들지 않고 오히려 넓어지게 만든 것 같다. 점점 형편이 나아진 지금, 그 마음이 습관으로 굳어버린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다.
“지금 우리는 대견하다.”
가끔 아내와 앉아 그렇게 말하곤 한다. 견뎌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자랑스러운 날들이 있었다고. 그 힘든 시절이 있었기에 아내 앞에서 펼쳐지는 석화 한 접시가 그저 겨울철 별미가 아닌, 세월이 만들어낸 작은 보상처럼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얼음 위에 차갑게 빛나는 굴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문득 생각한다. 섞여 있던 자잘한 모래를 떨고, 파도에 부딪히고, 차고 짠 물속을 견디며 단단해진 껍데기처럼, 우리의 삶도 그렇게 단단해져 왔다고. 그리고 그 안을 가득 채운 아내의 웃음은 그 어떤 미식보다 귀하고 소중했다.
돌이켜보면 아내와 함께 보낸 시간은 화려하진 않아도, 서로를 향한 배려와 작은 기쁨들이 촘촘히 스며 있는 시간이었다. 지금도, 앞으로도 나는 늘 같은 마음으로 아내를 챙기며 살지 않을까. 12월의 찬 공기 속에서도, 봄날의 햇살 속에서도, 아내가 좋아하는 작은 것들을 기억하고 그것들을 하나씩 건네는 일. 그게 내가 아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진심 어린 사랑인지도 모른다.
석화 한 접시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있는 이 겨울밤. 나는 또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좋아하는 것을 아낌없이 먹이고, 기뻐하는 얼굴을 오래 바라보며, 그렇게 당신의 하루 옆에서 살겠습니다.”
사랑은 거창한 약속보다,
상대가 좋아하는 작은 것 하나를 잊지 않는 마음에서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