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건너는 가장 따뜻한 지혜
아내의 말을 잘 들으면 삶이 편안해진다.
이 문장은 오랜 시간을 지나서야 비로소 내 것이 되었다. 살아오며 수없이 많은 결론을 얻었지만, 이렇게 단순하면서도 깊은 말은 드물다. 처음부터 이런 생각을 했던 건 아니다. 오히려 나는 오랫동안 이 진실을 애써 외면하며 살아온 사람에 가까웠다.
젊은 시절의 나는 스스로를 꽤 단단한 사람이라 믿었다. 모든 일에는 정확한 답이 있어야 했고, 틀림은 곧 실패라고 여겼다. 흔들림은 나약함의 증거처럼 느껴졌고, 실수는 용납할 수 없는 결함이었다. 융통성은 원칙 없는 타협쯤으로 오해했다. 지금에 와서야 알겠다. 그것은 완벽함이 아니라, 불안이 만든 갑옷이었다는 것을. 틀릴까 두려워 더 강한 척했고, 흔들릴까 봐 스스로를 더 단단히 가둬두었다.
그 시절의 나는, 솔직히 말해 꽤 가엾었다.
그런 나의 곁에는 늘 아내가 있었다. 말수가 많지 않았고, 조용했으며, 때로는 내 확신 앞에서 한 발 물러서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래서 나는 쉽게 착각했다. 아내는 나보다 덜 단단하고, 덜 분명하며, 보호받아야 할 존재라고. 하지만 삶은 언제나 예상과 다른 방식으로 진실을 드러낸다.
딸 결혼식 때의 아내 모습
아내의 말은 늘 크지 않았다. 다만 이상하게도 중요한 순간마다 정확한 방향을 가리켰다.
“그건 조금 더 생각해 보는 게 좋겠어.”
“당신 말이 맞을 수도 있지만, 이 부분은 위험해 보여.”
“지금은 밀어붙일 때가 아닌 것 같아.”
그때의 나는 그 말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내 판단이 흔들리는 것 같았고, 내 의지가 의심받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종종 귀를 닫았다. 듣고도 흘려보냈고, 때로는 애써 무시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무심코 지난날을 돌아보면, 인생의 중요한 갈림길마다 아내의 목소리가 남아 있었다. 크지도, 요란하지도 않았지만 분명하게.
지금에 와서야 알겠다. 그 말들은 간섭이 아니라, 삶을 함께 건너온 사람만이 건넬 수 있는 신호였다는 것을. 앞서가려는 나를 붙잡으려는 말이 아니라, 옆에서 함께 걸으려는 마음에서 나온 조심스러운 손짓이었다는 것을.
아내의 말 한마디에는 설명되지 않는 무게가 담겨 있었다. 계절이 바뀔 때 몸이 먼저 느끼는 기운, 수없이 넘어지며 배운 경험, 말하지 않아도 쌓여온 기억들,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향한 애정이 겹겹이 스며 있었다. 그래서 그 말은 늘 조용했지만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태도를 바꾸기 시작했다. 듣기에 거북해도 즉각 반박하지 않기로 했다. 먼저 귀를 열고, 시간을 두고 되새겨 보기로 했다. 그저 한 번쯤은 아내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자고 마음먹었다.
놀라운 변화는 그다음부터였다. 아내의 말을 따르니 삶이 정말로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추운 날에도 감기에 잘 걸리지 않았다. 독감 예방주사를 챙기고, 우산을 준비하고, 목도리를 두르고, 핫팩을 주머니에 넣어 출근했다. 하나하나 보면 사소한 준비들이었지만, 그 사소함이 하루를 지켜주었다.
신기했다. 삶의 큰 선택뿐 아니라, 이렇게 일상의 작은 습관들까지 아내의 말은 늘 나를 안전한 쪽으로 데려다 놓았다. 그것은 통제도, 지시도 아니었다. 함께 살아온 시간에서 자연스럽게 길어 올려진 배려의 언어였다.
나는 이제 안다. 아내의 말을 잘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부부 사이를 원만하게 만드는 요령이 아니라는 것을. 그것은 세상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는 일이다. 나 혼자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다는 오만을 내려놓고, 삶을 함께 건너는 사람의 시선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일이다.
완벽하려 애쓰던 나는 이제 조금 덜 완벽해도 괜찮은 사람이 되었다. 대신 더 안전하고, 더 따뜻하며, 덜 다치게 살아간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늘 아내의 말이 있었다. 말없이 건네던 조언들, 지나고 나서야 의미를 알게 되는 문장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다짐한다. 삶이 복잡해질수록 더 귀 기울여 듣겠다고. 아내의 말속에 담긴 계절의 신호와 삶의 경험을 놓치지 않겠다고.
아내의 말을 잘 들으면,
인생이 조금 덜 아프고,
하루가 조금 더 길어지고,
삶은 생각보다 훨씬 부드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