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3일 추석명절, 처음 가족이 한자리에 모인 날이다. 민족의 대명절 추석, 모처럼 6남매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 맛있는 음식을 먹고 맘껏 웃으며 보냈는데...
일상으로 돌아온 지 몇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어머니로부터 듣게 된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은 뜻하지 않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충격이었다. 좀처럼 나에게 닥쳐오지 않을 일이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생전에 아버지의 모습은 그야말로 답답하리만큼 자신보다는 주변 사람들과 어울리시는 걸 좋아하셨다. 술에 취해 있는 일상이 많았다. 내색은 안 했지만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컸다. 체념하시듯 살아가시는 어머니를 보며 나는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는 다짐을 수없이 했다.
서운하고 원망스러웠던 마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항상 아버지께서는 “사람은 인간관계를 잘 맺어야 한다. 죽을 때가 돼서도 자기에게 세 명의 진정한 친구가 있는 사람이 드물지..”라는 말씀을 입버릇처럼 하셨다.
장례식장에서 보고 느꼈던 모습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한평생 농사일만 하셨던 아버지였다. 끝도 없이 밀려드는 조문객들의 발걸음과 슬픔의 눈물을 흘리는 수많은 사람을 보며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
그동안 70여 년 동안 걸어오신 아버지 인생의 뒷모습을 생각하며 무언지 모를 코끝이 찡함을 느꼈다. 이생이 끝나는 날, 내가 잠시나마 원망했던 아버지, 나는 아버지만큼 잘 살았노라고 자부할 수 있을까? 나는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인간관계를 맺으며 살아왔는가?
나에게 이로운 사람, 친절한 사람에게만 잘하지 않았나? 혹여 나보다 약하고 힘없고 부족한 사람에게 힘들게 하진 않았나 하는 반성과 함께 조심스레 나 자신을 뒤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인생을 거듭할수록 좋은 친구, 진정한 친구가 비례적으로 늘어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세월이 지나며 가장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길 때 앞에서 위로와 격려가 되어주는 그런 친구가 필요한데 말이다.
그런 친구를 만나기 전에 스스로 반문해 본다. 내가 먼저 다가가고 먼저 손 내밀어 진정한 친구가 되어 줄 수 있는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비록 아버지를 멀리 떠나보내고서야 그 깊은 마음을 헤아린 못난 불효자지만 앞으로 남은 인생은 아버지가 항상 입버릇처럼 말씀하신 “인간관계의 중요성”에 대한 인생의 교훈을 가슴 깊이 새겨 삶의 지표로 삼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