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하반기
2020년 초부터 시작한 '진화' 프로젝트는 완전히 다른 나를 만들었다.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씩 시도해보며 찾아가기 시작했고 하루하루 나다워지고 있었다. 나다운 것이란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과 시행들이 매일매일 반복됐다. 취향이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고, 문화 권력이라고 말하는 것은 갑자기 생겨나는 것이 아님을 뼈저리게 경험했다. 무엇이 더 좋은지를 판단할 수 있는 자신만의 기준이 생겨나고, 그렇게 생겨난 안목은 내 인생을 더 입체적으로 만들어줬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지도 나다운 것에 포함되어 있었다. 매일매일 진화하며 나를 찾아가는 과정 자체도 즐거웠지만 어떻게 살고 싶은지,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지에 대한 생각도 많아졌다. 나를 나보다 더 잘 아는 친구를 통해, 수 없이 나에게 묻는 과정을 통해 나는 '쇼맨'이 되고 싶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위대한 쇼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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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워지는 것을 고민하다 보니 그 또한 브랜딩이었다. 대체가 불가능한 누군가로 기억이 되고 싶고 한번 보면 잊혀지지 않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일관된 삶을 살아내어 나의 발자취를 돌아보면 누가 보아도 나라는 사람임을 알 수 있도록 살고 싶어졌다. 모든 것에 더 솔직해질 수 있었고 주변의 시선에 점점 더 의미를 두지 않게 되었다. 그런 시즌이라 그런지 문득 내가 만들어낸 브랜드들을 생경하게 보게 되었다.
내가 만든 브랜드들은 브랜드가 맞을까. 대체가 불가능하고. 한번 보면 잊혀지지 않는 그런 브랜드가 맞나. 일관되게 같은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었나. 트렌드에 따라가지 않고 각 브랜드만의 길을 가고 있었던 것이 맞나. 그중 가장 중요했던, 내가 만들어 낸 이 브랜드들이 가장 나다운 모습을 하고 있는가. 내가 아니었다면 누구여도 세상에 만들어내지 못했을 그런 브랜드가 맞는가.
이 질문에 나는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었다.
내가 그전에 브랜드를 키우고 매각했던 방식과 같이 영혼이 없는 그것들을 또 만들어내고 있었다. 돈이 되긴 했다. 매출이 나오기도 했다. 안될 줄 알았던 제품들을 어떻게 이렇게 만들어냈냐는 주변의 칭찬이 나를 더 부끄럽게 만들었다. 떳떳할 수 없었다. 나의 삶의 모든 것들은 진화하고 있었으나 내가 하고 있는 일, 그것은 진화하지 못한 채 예전의 나를 답습하고 있었다.
하반기에도 에어샤워 등 내가 하고 있는 브랜드들은 나쁘지 않은 매출들을 계속해서 내었다. 이렇게 내년도 조금 더 매출을 키우고 나면 이 브랜드들을 매각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되면 나는 투자했던 20억을 회수할 수 있게 되고 또 한 번 회사를 매각하는 커리어를 내 인생에 남길 수 있었다. 브랜드를 만들기보단 매출을 잘 내는 방식을 선택하고 있었다. 나를 브랜드에 담아내기보단 재무제표에 찍히는 숫자가 우선이었다. 또다시 실패하지 않는 삶을 위해서 될만한 것들만 하고 있는 나를 마주하게 되었다.
2020년 12월, 1년을 돌이켜보니 회사는 작년보다 성장했다. 나는 공허했다. 대충 살지 않으려고 리스크에 나를 다시 던지며 20억을 투자했었으나 인간 이창혁은 엉덩이를 뒤로 빼고 타율 높은 배트만 휘두르고 있었다. 그렇게 살다가 공허함을 느꼈으면서 또 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었다. 2021년이 오는데, 새해를 이런 자세로 맞이할 수 없었다. 나는 실패할 수 있고 완벽하지 않음을 인정해야 했다. 내 인생에 실패한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것에 겁내지 말아야만 했다. 두려워하지 않아야 했고 용기를 내야 했다. 그래야만 나는 위대해질 수 있고, 대체되지 않는 무언가가 될 수 있었다. 12월의 마지막쯤 다시는 피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지며, 내 주변 모두에게 그 각오를 약속 하기 위해 브런치에 첫 글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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