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개발하는마케터 Jul 25. 2018

'그냥'이 통용되는 세상

다양한 의미로 해석이 가능한 열린 대답

피곤한 습관을 갖고 있다. '왜'라는 질문을 달고 산다는 것이다. 이것은 때로 어떠한 사건, 상황, 문제에 대해 본질을 파악하는 핵심 키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질문이 내가 아닌 타자에게 행해질 경우 상대방은 이와 같은 질문으로 인해서 스트레스 혹은 피곤함을 느낀다. 그러던 중 언젠가 친구가 나에게 말했다.

"그냥이 이유가 될 수 있어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 친구의 말에 수긍하면서 비디오테이프를 되감기 하듯 나 자신도 무의식적으로 쓰는 '그냥'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우리는 흔히 어떠한 질문에 대한 답으로 "그냥"이라고 쉽게 대답하곤 한다. 그냥은 함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단순히 마음이 끌리거나, 귀찮거나, 이유를 말하고 싶지 않거나, 이유를 알고 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거나 등의 다양한 의미를 내포한다. 예를 들면 단순히, 문득, 아무 생각 없이, 즉흥적으로 혹은 말 그대로 그냥이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냥이 대화나 관계 속에서 통용되기 위해서는 보편적으로 서로에 대한 벽이 낮거나 편한 관계를 전제한다. 이때의 그냥은 구차한 설명 없이도 알 수 있거나 혹은 그저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긍정적인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연인 관계에서 쓰이는 그냥이라는 답변은 해석의 몫은 수용자에게 있기에 가장 무서운 대답이 될 수도 있다.)


반면, 일반적으로 사회생활을 할 때 '그냥'이라는 대답은 무책임하고 불성실한 사람처럼 보인다. 내 말과 행동에는 합리적이면서 타당한 이유가 존재해야 하며 그것을 구성원 모두에게 이해시켜야만 한다. 심지어 그냥이라는 대답은 신뢰감마저 떨어트린다. 그냥은 합리성 타당성과 같은 설득력 있는 단어들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직관과 느낌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신속, 정확과 같은 이질적인 단어들을 합성시키면서 까지 효율성을 추구하는 우리 사회에서는 부정적인 단어로 여겨진다.


그냥은 때로 사회생활뿐만 아니라 친한 사이에서도 무성의한 답변처럼 비친다. 그러나 단지 무성의한 답변으로 치부하기에는 '그냥'이 담고 있는 뜻이 너무 방대하다. "그냥 좋아"와 같은 단순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떠한 감정에 대해서도 그냥을 쓰는 것처럼 '그냥'은 때로는 편리한 언어의 도구가 된다. 이 복잡한 세상에서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또한 모든 일이 원인과 결과로 단순하게 이분화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냥의 의미는 과거보다 더 확장될 것이고 다양한 곳에서 쓰일 것이다. 물론 '그냥'이 사용되는 상황은 적어도 서로에 대한 벽이 낮은 관계에서 이루어 진다. 어지럽고 무분별한 세상에서 그냥이라는 단어를 주고받을 수 있는 존재가 주변에 많이 생겼으면 한다. 어떠한 수식어 앞에 붙여도 어색하지 않은 그냥이라는 단어를 좀 더 사랑하기로 내 주변의 세상이 '그냥'이 통용되는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 결국 대화는 말하기보다 듣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