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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돌 Dec 29. 2021

타인의 고통에서 용기를 본다는 건

거친 발길질에도 백조의 얼굴을 할 수 있도록



고통받는 타인을 통해 상대적으로 괜찮은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는 건 썩 좋지 않은 일이라 생각했다.


어렸을 땐 TV에서 인간극장 같은 걸 보며 ‘저렇게 힘든 분들도 있는데…’라는 생각을 꽤 했다. 그렇게 눈물 한 번 쏟고 나면 내가 얼마나 하잘 것 없는 이유로 불평하며 지냈나 반성하고 위안도 얻으며 행복을 되새기던 기억.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어떠한 식이든 남과 비교해봤자 내 상황은 별반 달라지지 않는단 사실을 깨달아가면서부터인지,

내가 원치 않는 위로나 동정이 불편하듯 타인 또한 그럴 수 있겠단 데까지 생각이 닿으면서부터인지-

고통받는 타인으로부터 알게 모르게 위로받는 스스로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특히나 지인의 고통 앞에서 그러한 경계심은 더욱 커졌는데,

행여나 그에 견주어 내가 낫다는 생각이 들면 고통받는 이에게 미안한 일이 될까 염려스러워서였다.


그런데 오늘 친구를 통해 지인이 남몰래 겪던 고통에 대해 듣던 중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타인의 불행을 알게 되면 회피하지 말고 직시할 필요가 있는 건-

결코 그를 동정하려거나 나의 작은 행복이나마 발견하고자 하는 옹졸한 이유 때문이 아니라는 것.


다양한 아픔과 슬픔에도 불구하고 씩씩하게 -때론 씩씩한 척이라 할 지라도- 살아가는 

타인의 용기에 힘입어 나 역시 조금은 더 용기내고 힘을 내야만 비로소 그를 힘껏 응원해 줄 수 있기 때문이 아닐는지.


내가 진정으로 경계해야 할 것은 고통받는 타인이 신경 쓸 여력조차 없을 나만의 허위의식 따위가 아니라,

고통을 견뎌낸 타인의 용기를 제대로 못 보고 나 자신의 고통에만 천착한 작은 생각이 아니었는지.



오늘도 물속에서 힘차게 발길질하며 수면 위를 미끄러지듯 유유히 흘렀을 백조들을 생각해 본다.

나 역시 하루하루 조금이라도 더 의젓하게 -때로는 의젓한 척이라 해도- 누구나 괜찮다고 볼 법한 백조의 얼굴을 할 수 있도록.


타인의 고통에서 나의 행복이 아닌 그의 용기를 가늠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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