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내기 대학생 시절에는 거의 모든 것이 새롭고 좋았다. 2000년대 특유의 밀레니엄 감성은 말할 것도 없고, 그 당시만 해도 여전하던 캠퍼스의 낭만은 요즘의 MZ 문화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특유의 끈끈한 정서였다. 최근 포털 뉴스에까지 오르내린 영철버거 영철 아저씨의 부고는 그런 의미에서 한 개인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넘어, 그 시절 고대생들에게 적잖은 충격일 수밖에 없다.
술을 마시고 난 뒤 선배 형들은 어김없이 영철버거로 후배들을 끌고 가곤 했다. 고를 필요도 없이 한 종류뿐이던 버거는 달큰하고 짭조름하면서 맛있게 기름져 해장에 좋았고, 콜라도 무제한으로 리필해 마실 수 있었기에 요새 말로 하면 그야말로 '혜자'였다. 그렇게 먹고도 단돈 천 원. 선배 한 명이 후배 여럿에게 술을 사고, 후식까지 챙겨주기에 그만한 장소도 없었으리라.
5년 전, 대학 시절의 친구들과 모처럼 학교 근처에 들렀다가 영철 아저씨가 새로 오픈했다는 주점을 찾은 적이 있다. 세월이 너무 흘러 옛날의 영철버거를 그대로 되살릴 수는 없었지만, 고대 근처에서 다시 맛있는 음식을 제공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아저씨는 진심으로 기뻐 보였다. 특히 여럿 중에서 내 얼굴이 기억난다며 반가워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나 역시 신이 나 함께 사진을 찍고, 아저씨의 전화번호를 받아 그 사진을 전송해 드렸던 기억이 난다.
내가 그분에게서 특히 인상 깊게 남은 것은 천 원 버거와 콜라의 혜택도, 여러 대학가로 체인을 확장하던 성공담도, 이후 사업 실패와 학생들의 펀딩으로 재기했다는 후일담도 아니었다. 언제 방문해도 늘 직접 고기와 야채를 볶으시던 성실함, 그러면서도 얼굴에 미소를 잃지 않고 학생들에게 반갑게 인사하던 그 한결같은 태도였다.
그 당시에는 몰랐다. 그것이 얼마나 대단하고 어려운 일이었는지를. 세월이 한참 흐른 뒤, 내가 그 시절의 영철 아저씨 나이가 되고서야, 그리고 어쩌다 보니 자영업을 하게 되면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아저씨는 사업의 관점이 아니었기 즐거웠고, 그래서 때로는 실패도 했으며, 그럼에도 결국 행복했을 것이란 사실을. 학생들의 천 원, 이천 원이 자신에게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았기에 다시 학생들에게 돌려주고자 장학금을 기부했던 마음은, 그 어떤 대기업의 사회적 공헌도 따라올 수 없는 근원적이고 인문적인 사랑의 가치였다.
지금도 종종 영철 아저씨를 떠올리면, 내 가게를 찾아주는 한 명 한 명의 손님에게 저절로 감사한 마음이 든다. 영철 아저씨라고 힘든 적이 왜 없었을까. 괴롭히는 손님이 왜 없었을까. 그럼에도 열 번이면 열 번 늘 친절하고 씩씩했던 그 모습은 자영업자의 귀감이라 불러도 모자람이 없다. 그래서 그 후로도 나는 늘 멀리서나마 응원하는 마음으로 그분을 떠올려 왔다.
갑작스러운 암투병, 느닷없이 찾아온 죽음. 내 스무 살 추억 속의 어른 한 분이 그렇게 스러져 갔다는 소식 앞에서, 나는 또 한 번 인생의 아이러니를 느낀다. 그분의 전부를 알 수는 없지만, 내가 기억하는 그분의 전부는 훌륭했다. 그 어떤 대학 교수들의 단정한 모습도 그분만큼 멋지게 기억에 남지는 않았다. 그 어떤 선후배, 동기들과의 끈끈했던 관계도 스무 해가 훌쩍 지난 지금에 와서는 그분의 부고만큼 진하게 남아 있지는 않았다.
언제나 행복하게 버거를 만들고, 나누고, 인사하던 영철 아저씨. 나는 그분의 부고를 통해서야, 앞으로 장사를 하며 되새겨 나갈 자산을 비로소 발견했다. 그것은 대학 강의실도, 졸업 스펙도 아닌 노상 점포에 있었다.
https://youtu.be/xMoBnTJepLg?si=skONbp2GshOlRyH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