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자신만의 길 위에 서게 된다

03 누구나 자신만의 길 위에 서게 된다

by 크리스티나

집안 어른들은 모두 장로교회 신자들이셨어요. 저만 가톨릭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례명이 크리스티나입니다. 절대자를 향한 저의 처음사랑이 담긴 이름인 셈이지요. 삼십대 초반 즈음에 성당에 찾아가서 6개월의 교리공부 끝에 세례를 받았어요. 날씨가 화창했던 아름다운 성모성월에 가톨릭교인이 되었네요.


그렇지만 성당자매로서의 생활은 3~4년만에 마침표를 찍게 되었어요. 한 사람이 종교를 찾고 또 떠나가는 일이 쉬운 결정은 아니잖아요. 여러 이유들이 있었지만 여기서 그 이야기는 생략할게요.


그 이후 성당도 교회도 다니지 않는 생활이 오래 지속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 길고 깊었던 방황과 진지한 고민 끝에 다시 신앙의 길을 생각하게 되었어요.


긴 시간이 흐른 후 마침내 저는 장로교회를 찾아서 신앙인의 삶 속으로 들어서게 되었어요. 가톨릭과 개신교가 한 뿌리에서 나온 그리스도교이므로 교리 부분에서 차이를 보여도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기에 교회에서는 입교 절차만 끝내고 교인이 되었습니다. 교회로 돌아간 것은 육신의 아버지와 뒤늦은 화해의 의미도 있었다고 해석이 됩니다.


교회를 다니겠다고 했을 때 사실 주변에서는 저를 말렸어요. 저와 어울리지 않는 결정을 했다고, 예민한 성격에 사람 많은 곳에 가서 상처받을 일 있느냐면서요. 그래도 한 번 먹은 마음은 기필코 행동으로 옮기는 성격인지라 동생도 더는 만류하지 않더군요. 무엇이든 자신이 직접 겪어봐야 깨닫는 것이 있게 마련이니 주변에서 하는 말이 사실은 별 소용이 없는거죠. 내 선택이 내 운명이 되고 우리는 딱 자신의 경험의 폭과 깊이 만큼 인생을 안다고 말할 수 있으니까요.


교인으로 등록후 예배에 출석하며 비로소 예배의 의미가 무엇인지? 기도는 왜 하는건지? 저는 마치 아이처럼, 배우고 깨우치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의미있었던, 절대자 앞에 깊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예수께서 능력이 있는 분이기 때문에 그 분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그가 세상에서 보이신 기적, 죽음 후 부활하신 사실, 신의 아들이라는 것... 모두 의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사실들보다는 우리와 다름없는 연약한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셔서 우리보다 큰 고통을 겪으셨기에, 말할 수 없는 저의 작은 고뇌도 헤아려주신다고 여기거든요. 누구보다 우리를 잘 아시므로 그분 앞에서는 어떤 치장이나 가식이 필요없는, 참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거죠.


그렇게 저의 마음 한 자락 내려놓을 수 있다 생각하고 찾아간 교회 공동체는 어디까지나 세상사람들이 모인 집단이었습니다. 자신이 어떤 사람으로 보이는지를 매순간 의식해야 되는 곳이었죠. 예배자로 선 그 자리에서조차 자유와 해방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모두 다르게 지으셨고 그 분이 사랑으로 우리를 만드셨기에, 우리는 본연의 자신으로 그분 앞에 설 수 있어야 하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힘도 그분으로부터 시작된다 믿습니다. 예배자로서의 삶 속에서 자유함과 자존을 발견할 수 없다면 교회라는 종교조직은 저에게 무의미하다 판단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저는 지난 주일 마지막 예배를 드리고나서 또 하나의 선택을 하기로 결심했어요. 절대자를 찾아가는 길은, 저에게는 세속의 교회 속에 있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버지 집으로 가는... 저의 길 위에 서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비록 연약하고 끝없이 흔들리는 존재이지만, 우리는 모두 아버지 집으로 가는 각자의 길 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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