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보현 Apr 01. 2023

벚꽃 향기 한번 맡기 위해 10km를 뛰었구나

   3월의 봄, 마라톤 대회에 참가했다. 강변을 10km 도는 코스였다. 마라톤 코스 사이사이에는 벚꽃 나무가 있었다. 벚꽃들은 분홍색 점 7할과 흰색 점 3할이 절묘히 섞여서 완성된 점묘화처럼 신묘막측하게 아름다웠다. 그런데 벚꽃은 향이 매우 약하다고 한다. 후각 기능마저 약한 나로서는 당연히 희미한 벚꽃 향을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것 같다.


   곧 마라톤은 시작되었다. 7, 8km 정도를 뛰었을 시점에 정말 숨이 가빴다. 평소 비염으로 인해 늘 한쪽 코는 막혀있다시피 하는데, 이렇게 숨이 차게 뛰니까 오랜만에 양쪽 코도 모두 시원하게 뻥 뚫렸다! 마라톤 코스를 헐떡대며 뛰어가는 중, 아름답고 거대한 벚꽃나무 한 그루가 전방에 나타났다. 숨차게 달려 나가면서 점차 그 벚꽃 나무와 마주하게 되었다.


   달리기 속에서 가지에 달린 벚꽃 솜뭉치를 스쳐 지나가는 순간, 나는 희끗하게 느낄 수 있었다! 벚꽃의 향기?! 아마 처음으로 자연에 존재하는 벚꽃의 향감각하지 않았을까? 평소 차분한 상태에서는 감각할 수 없지만, 약 8km를 쉼 없이 뜀박질하면서 온몸의 혈액이 체내에서 속히 순환하고 있던 바로 그때에는 감각할 수 있었지. 처음 마주한 그 향기가 참 반가웠다.


   자연에는 평소 감각하기 힘든 것들이 있다. 그것들이 너무나 겸허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온몸의 혈액이 바삐 돌아가게 할 정도의 적극성을 기울여 그것에 다가간다면? 그제야 느낄 수 있는 자연의 미묘한 아름다움이 있지 않을까? 마치 벚꽃의 향기처럼 말이다.


   벚꽃의 향기 한번 맡기 위해서, 나는 10km를 쉼 없이 뛰어갔나 보다. 미묘하다고 해서 없는 게 아니구나. 평소에는 감각하지 못하고 지나친다. 시간과 땀을 쏟을 때 그제야 감각할 수 있는 자연의 겸허가 있다. 벚꽃의 향기 외에도, 자연은 우리를 위한 특별한 체험들을 많이 내포하고 있겠지? 자연은 우리를 상대로 보물찾기 게임을 하고 있는 셈이라 할까? 자연이 숨겨놓은 것들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을 뿐. 우리가 열정을 갖고 다가간다면 그제야 발견할 수 있는 보물 같은 특별함이 생태에 많이 있다.



작가의 이전글 내 눈과 마음은 다초점이라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