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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보현 Jan 17. 2022

고양이에게 건넨 삼겹살 한 점

사람들의 따뜻한 동정을 얻으며 사는 삶의 방식

   겨울로 접어드는 어느 추운 , 하늘은 금세 어두워진다. 까만 하늘 아래, 파도치는 동해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고 있다. 철썩철썩 파도 소리와 지글지글 삼겹살 소리가 리듬을 이룬다. 입속 삼겹살에서 스며 나오는 뜨거운 기름에 열중하던 찰나, 무언가 형용하기 힘든 볍고 보드라운 기척이 왠지 느껴진다.

  

   옆을 바라보니, 모래사장을 뚜벅뚜벅 걸어온 고양이 녀석 한 마리가 있다. 뜨거운 온기에 이끌린 걸까, 맛있는 냄새에 홀린 걸까. 이 녀석, 사람으로 치면 청년쯤 되어 보인다. 뚫어져라 이쪽을 바라본다. 나를 바라보는 건지, 삼겹살을 바라보는 건지 모르겠다. 뭘 바라보면서 뭘 바라고 있는 걸까?

 

   양이 얼마 많지 않은 삼겹살, 한낱 미물에게 건네주기엔 아깝다. 고양이는 그 자리를 떠나지 않은 채 이쪽을 뚫어져라 응시한다. 그는 울음소리 한마디 내뱉지 않지만, 묘하고 빛나는 그의 눈빛이 내 귀에 새어 들려온다. 그 소리, 모르는 체하다가, 고기 조각들 먹다가, 또 먹다가... 작고 길쭉하게 생긴 삼겹살 한 점 모래 위에 툭 던져 내어 준다. 그는 모래 위 고기에 코를 박고 몇 번 킁킁대다가, 혀를 한 번 날름 거렸고, 결국엔 삼겹살에 라면 면발까지 디저트로 맛있게 식사하고 떠나가셨다.


   어둡고 차가운 세상에서 이 청년 고양이처럼 살아갈 수 있다. 힘이나 가진 것이 없어도, 사람들의 따스한 관심과 동정을 얻는 덕택에 커갈 수 있겠다. 남의 먹을 것을 거칠게 빼앗는 삶보다는, 차라리 보드랍게 얻어먹는 삶이 낫겠다. 돌이켜보면, 그때 그 고양이 녀석, 잘 먹고 지내서 제법 통실통실했지. 그렇게 충분히 잘 먹으며 보드랍게 살아갈 수 있겠다.

 

   난 도저히 사자처럼 살아갈 사람은 못 된다. 그렇게 강한 사나이가 되지 못한다. 흠이 많고, 능숙하게 돈을 모으는 재주가 없으며, 카리스마 같은 것도 없다. 누군가의 밥그릇을 뺏지 못한다. 고로 풍성하고 커다란 식사를 할 사람은 못 된다. 그러나 그날 본 청년 고양이처럼 조그만하지만 신나는 식사를 하며 살아갈 수는 있다. 따스한 사람들의 뜨거운 삼겹살 한 점씩 얻어먹으며 무럭무럭 자랄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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