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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UN Apr 09. 2020

미국에서 셀프 이사하기

#04. 든든함

연애 시작 후 주말마다 맨해튼을 나갔더니 통장이 텅장되는건 시간문제였다. 내가 계산하려 할 때마다 그는 늘 뾰로통한 표정으로 본인이 사겠다며 나를 말려댔지만, 나는 얻어먹는 게 익숙지 않았다. 칼 같은 더치페이까지는 아니더라도 서로 비슷하게 데이트 비용을 내야 마음이 편했고, 텅장이 되어가는 티가 나는 건 또 이상하리만큼 싫었다. 각자의 일 때문에 주말에만 만나고 있었기에 만나는 횟수를 줄일 수는 없고... 결국, 월세가 더 저렴한 집으로 이사 가는 것으로 돈을 좀 굳혀보자 생각했다.


4월의 어느 화창한 날. 같은 동네 안에서 이사하는 거라 그에게 딱히 도움을 청할 생각은 없었다. 짐도 많지 않았고, 혼자서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사 몇 주 전부터 '이사 혼자서 하기 힘들지 않겠어?'라며 계속해서 연락이 왔고, 내가 아무렇지 않게 뱉은 '회사에 친한 남자 동료들이 도와줄 수 있을 것 같다.'라는 말이 영 거슬렸는지 결국 그가 이사를 돕게 되었다. 심지어 트럭까지 빌려서.


20살이 되던 해부터 지금까지 이사만 족히 일곱, 여덟 번은 한 것 같다. 혼자 살았기에 내 짐이 전부였고 살았던 원룸들은 가구가 포함되어 있었기에 딱히 힘들지 않았다. 그런데 미국에서의 이사는 조금 달랐다. 이 곳에 오고부터는 내가 영어가 완벽하지 않기에 오는 불안함과 내가 모르는 어떤 제도? 법? 이 있진 않을까. 이렇게 하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늘 들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확신을 가지고 실행에 착착 옮겼다면, 여기서는 이게 맞나...? 이렇게 해도 되는 건가..? 이렇게? 쭈뼛쭈뼛하며 하나, 둘 처리하곤 했던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그가 이사를 도와주겠다며 발 벗고 나서는 모습이 든든해 보였던 게.


연애 중인 커플이었지만, 든든함을 느낀 건 그때 그 이삿날이 처음이었다. 유하울(U-Haul)이라는 트럭 렌털업체를 통해 작은 트럭을 빌리고, 박스와 에어캡(일명 뽁뽁이), 갖가지 드라이버들을 챙겨 와 나보다 더 열심히 내 이사를 도와주는 뒷모습에 갑자기 심쿵했던 것이다. 싫은 내색 하나 없이 짐을 싸고 트럭에 척척 옮기며 도울 수 있어 기쁘다 말하는 모습에 고마움을 느꼈고, 새로 이사 갈 집 호스트에게 잘 부탁한다며 인사하고 집 계약서 보호자 칸에 본인 이름과 연락처를 적어주는 모습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든든함을 느꼈다. 확실히 한국 안에서 타지 생활을 하는 것보다 외국으로 나가서 생활하는 게 심적으로 더 두렵고 힘든 게 맞구나. 갓 20살 된 어린 유학생들은 얼마나 어려울까. 많은 생각을 했다.


여차저차 이사가 마무리된 후 우리는 중국음식을 먹기로 했다. 미국에도 중국집이 참 많은데,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자장면, 짬뽕, 탕수육들은 한국식 중국음식점에 가야만 먹을 수 있었다. 다행히 내가 살던 곳은 한인들이 많이 모여 살던 곳이라 근처에서 자장면을 먹으며 그에게 한국 이사문화를 알려줄 수 있었다. '한국은 이삿날 자장면을 먹어. 중국음식이긴 한데, 한국식 중국음식이야. 이사하는 날에는 냉장고에 식재료도 별로 없고 밥을 해 먹을 수 없으니 배달이 빨리 되는 중국음식을 찾는 것 같아.'라고 했더니 '중국음식이긴 중국음식인데, 한국식 중국음식?'이라 하더니 'Ohh.. interesting!'을 외치며 기대하는 눈치였다. 기다리던 자장면과 탕수육이 나왔고 까만 비주얼에 처음엔 당황했지만 한입 두입 먹더니 나름 맛있어하는 것 같았다. 음식에 대한 호불호가 굉장히 강한 사람이라 내가 소개해준 음식을 맛있게 먹으면 뿌듯함까지 느껴진다. 


그렇게 우리의 이사 대장정은 마무리되었다. 그의 발 벗고 나서서 도와주는 모습에 나는 든든함을 느꼈고, 그는 내가 살게 될 집을 직접 보고 위험하진 않은지, 함께 사는 호스트는 괜찮은 사람들인지 알게 되어 안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사 참 별거 아니었는데, 이런 것 하나에도 많은 걸 느끼고 누군가를 믿게 되는 게 신기한 날이었다.


U-Haul에서 빌린 10ft 트럭(더 작은 pick up 트럭을 빌렸어도 괜찮았을 것 같다) 




* 내가 살던 미국 동부 기준, 일반 스튜디오(한국으로 치면 원룸)는 월세가 보통 $1,000 이상이었다. 사실 $1,000짜리 방은 지하실을 개조해 만든 부엌 없는 간이 원룸의 개념이었고 제대로 된 곳을 찾으려면 기본 $1,500, $2,000 이상이 되니 학생이나 직장인에게는 굉장히 부담되는 금액이었다. 그래서 나온 게 룸메이트 개념. 거실, 부엌, 화장실 등의 공동 공간은 함께 사용하고 방 한 칸만 따로 쓰는 개념이라 월세가 훨씬 저렴했다. $600~$800대로도 나름 괜찮은 곳을 찾을 수 있었던 기억이다.

* 짐이 많이 없다면 우버(Uber)나 리프트(Lyft)로 큰 차를 호출해 이사할 수도 있겠지만, 가구가 하나라도 있게 되면 유하울(U-Haul) 트럭 렌트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작은 트럭 기준, 6시간에 $20 정도이고 마일당 $1.99로 큰 부담 없이 이사할 수 있다. 필요에 따라 박스, 에어캡, 짐수레 등도 함께 결제할 수 있고 도와주는 사람도 부를 수 있으니 이사에 딱이다. (유하울 사이트 www.uha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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