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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아 Nov 01. 2024

이렇게는 죽기 싫었던 날들

지금의 단단하고 덤덤한 나를 만들었던 기억의 조각모음_1 

모 진부하고 진부한 자기소개서에 시작하는 한 글귀의 문장처럼, 나는 무심한 아버지와 엄격한 어머니 밑에서 1남 1녀 중 딸로 태어나 평범하게 자랐다. 엄마와 아빠는 매달 아파트 대출금과 나와 오빠의 식비와 학원비 등을 위해 누구보다 평범하고 열심히 일하며 살았다. 아빠는 사업수완이 없이 욕심만 많은 사람이었고 대형마트가 판치는 세상에서 자신만의 작은 슈퍼마켓을 운영하고 싶어 했다. 그때 당시 24시간 내내 장사하며 호황을 하던 홈플러스 매니저로 잔뼈 굵게 일한 엄마는 슈퍼마켓이 승산이 없다는 것을 알고도 아빠에게 목돈을 내어줬다. 그리고 이 사업이 망하면 당신과 나는 이제 끝이라며 내 앞에서 신신당부했다. 엄마는 아빠의 사업이 망할 것을 알고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 엄마가 내다본 대로 아빠의 슈퍼마켓은 망했다. 철없는 오빠는 군대에 들어가 세상물정을 모르고 엄마에게 전화로 용돈을 보내달라고 투정을 부렸고 엄마는 나와 아빠를 앉혀 놓고 우리 집의 전재산을 하얀 A4용지에 쓱싹쓱싹 적었다. 아빠의 사업이 망해서 빚이 얼마고, 아파트 대출금은 얼마고, 우리 집의 매달 생활비는 얼마고. 우리 집은 이제 망했단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를 다 정리하고 빌라로 이사 가야 해. 마이너스와 '0'과 숫자로 우리 집이 망했다는 게 한 순간에 정리됐다. 수능을 준비하며 미분적분을 공부하던 내가 간단한 덧셈과 뺄셈도 모를 리가 없었다. 나는 엉엉 울었고, 아빠는 입에서 쓴 맛이 나는지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엄마와 아빠는 내 앞에서 싸움을 벌였고, 엄마는 정신이 나가 식탁 밑으로 기어들어가 아이처럼 웃으며 아빠와의 결혼앨범을 꺼내 모든 사진을 갈기갈기 찢으며 히히 웃었다. 정신이 나간 엄마를 두고 아빠는 방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 갔고, 나는 그날 태어나 처음으로 아빠에게 욕을 했다.


다음 날 엄마는 전날 아이처럼 울고 웃었던 일이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갑자기 변해버린 엄마와 세상이 무서웠다. 그래서 나도 변하기로 했다. 그래야 살아갈 수 있다는 걸 빠르게 깨닫고 현실에 체념했다. 이사 갈 집을 엄마와 함께 틈틈이 보러 다니면서 가장 덜 낡아 보이는 빌라를 골랐다. 매일 등하교를 같이하는 단짝 친구가 곧 내가 이사가게 될 빌라와 비슷한 집을 가리키며 자기는 저런 집에서는 못 살 것 같다고 얘기했다. 그래서 나는 그 친구에게 우리 집이 망했다고 말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3학년을 앞두고 추운 겨울날 우리는 이사를 했고, 나는 수능이 끝나고 문제집을 한 아름 안고 분리수거장에 버리는 선배들을 지켜보았다. 학교 오후 청소시간이 끝나고 해가 질 무렵 산처럼 쌓인 문제집 더미는 내게 보물 찾기와도 같았다. 볼펜과 연필자국이 없는 새것 같은 문제집들을 주워 들고 백팩이 찢어져도 좋을 만큼 꼭 꼭 담았다. 한 푼이라도 나는 돈을 아껴서 우리 집에 보탬이 되고 싶었다.


수능을 준비하며 하루 12시간 이상 앉아있으니 살이 찔 것 같다며 다이어트를 핑계로 석식은 신청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체력을 비축하겠다며 도보로 왕복 2시간 거리를 새벽 5:40 분에 일어나 가파른 산길을 맨다리로 열심히 걸어 다녔다. 해가 뜨기 전 인적 드문 골목에서 바바리맨을 마주칠 때마다 나는 누구보다 더 빠르게 걸었다. 우스갯소리로 친구들은 내게 축지법을 쓰냐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다른 사람들보다 보폭도 넓고 걸음도 항상 빠르다. 다들 논술전형이니 뭐니 하며 야자를 빼고 과외를 받고 학원을 갈 때 나는 담임 선생님이 혹시나 나를 불러서 수시를 쓰라고 할까 봐 내신을 뭉갰다. 수시를 지원하는 것도 다 돈이었다. 도박처럼 단 하루뿐인 수능날에 내 모든 걸 걸었다. 다행히 모의고사는 성적이 잘 나왔고, 반에서 상위권인 아이들만 따로 마련해 준 면학실에 내 지정 자리도 생겼다.


하루하루 이를 악물고 버티던 그 어느 여름날의 장마철 새벽, 곯아떨어진 내 귀에 물소리와 함께 엄마의 통곡 소리가 들려왔다. 졸린 눈을 비비고 황급히 방문을 열었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천장에서 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엄마가 새벽에 물소리에 놀라 잠에서 깨서 세숫대야와 걸레를 가져다 빗물을 닦고 대야를 받쳤는데, 닦아내도 닦아내도 물이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었더랜다. 엄마가 세숫대야에 가득 찬 물을 버리고 축축한 걸레를 아무리 짜내도 물은 계속계속 천장에서 뚝뚝 떨어졌다. 엄마는 그걸 보며 아이처럼 엉엉 울고 있었다. 내가 마주했던 엄마가 아이처럼 통곡하던 두 번째 순간이었다. 


마치 우리 집의 가난처럼, 아무리 닦아내려 해도 막을 수 없는 불행이 계속해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내가 문제집을 주워다 풀어도, 몇 푼 안 되는 돈을 아끼려고 석식을 굶고 왕복 2시간 거리를 매일 걸어 다녀도, 수시를 쓰지 않으려고 일부러 내신을 망쳐도,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최선의 노력을 해도 우리 집의 가난이 바뀌지 않듯 비는 계속계속 내렸다. 지금의 내가 무슨 행동을 해도 이 가난은 결코 끝날 수 없음을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해도 우리 엄마는 아이처럼 엉엉 울 거라는 걸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다.


아, 차라리 죽고 싶다. 내가 정말 죽고 싶은가? 아니, 나는 죽고 싶은 것이 아니라 이렇게는 죽고 싶지 않다. 이렇게는 살고 싶지 않다. 내 남은 생이 천장에서 매일같이 물이 떨어지는 삶이라면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 다르게 살고 싶다. 나는 지금 죽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죽더라도 이 불행은 끊어내고 가야겠다. 나는 아직 더 살아야겠다.


엉엉 우는 엄마를 옆에 두고 빗물이 가득 찬 대야를 비우고 걸레를 더 억세게 짰다. 구석에 던져있던 걸레를 더 가져오고 우는 엄마 등을 토닥였다. 이를 악물고 마음을 다스렸다. 수능이 끝나면, 바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해서 꼭 엄마에게 돈을 가져다줘야지.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직업을 가져야 하니까 좋은 대학교에 가야지. 


나는 엄마가 그 시간을 기다려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20살 봄, 엄마가 난소암 3기 말 판정을 받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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