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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아 Oct 25. 2024

어차피 죽을 건데 왜 열심히 살아야 하나고요?

모든 순간은 결국 영원하지 않으니까요.

우리 아이는 책을 좋아한다. 어느 날 조선미 교수님의 추천 책 중에서 "마음 안아주기"라는 시리즈를 구매하고 그중 <보고 싶은 마음 안아주기>라는 책을 읽어주었다. 생명의 개념과 죽음과 이별에 대해 아이의 눈높이에서 자세히 설명하며 보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스스로 위로하는지에 대한 책이었다.


평소 나는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어 상세히 설명하는 엄마였기 때문에 그날 또한 열심히 책에 나온 것 외에 예시를 들어가며 죽음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때 아이는 만 3살을 갓 넘긴 시점이었지만 또래보다 언어표현이나 발달이 빨라서 금방 이해했는데, 책을 다 읽고 나서 다음 책을 읽어주려는 순간 아이가 오늘은 책이 보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했다. 평소에는 잠들기 전까지 책을 읽어달라고 떼를 쓰거나 재미있는 내용의 책은 반복해서 읽어달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많았던지라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책이 보고 싶지 않다는 정확한 의사 표현은 태어나 처음 듣는 것이었다.


깜짝 놀라서 "왜 그래? 왜 책이 보고 싶지 않아?"라고 물으니 아이가 또박또박 이야기했다. "엄마, 마음이 아파요. 그럼 엄마 아빠도 죽어요? 그럼 다시는 못 만나요?" 밥을 먹다 말고 아이가 펑펑 울었다.



아차 싶었던 나는 엄마 아빠는 아직 젊고, 특히 엄마는 너를 아주 건강하게 낳았으며 너와 오래 살기 위해 영양제를 매일 챙겨 먹고, 운동을 열심히 다닌다고 얘기했다. 아직 아이가 숫자는 모르지만 손가락 개를 연신 펴 보이며 아직 우리가 함께할 시간은 놀이동산에 100번이 넘게 남았다고 이야기했다. 그래도 아이는 엉엉 울었다. 그래서 조금 고민하다가 다시 말을 시작했다.



 오늘 우리가 키즈카페에 다녀오고 만들기 체험을 다녀왔던 기억들이 다 OO 머릿속에 남아 기억이 되고 추억이 되고 그건 우리가 헤어져도 사라지지 않는다고, 엄마가 사진과 동영상을 아주아주 많이 남길 거라고 이야기했다. 그래도 혹시나 엄마 아빠가 너무너무 보고 싶으면 거울을 보면 된다고, 거울에 보이는 OO 이 얼굴에 엄마 아빠 얼굴이 담겨있다고 이야기했다. 이 말을 하면서 왠지 모르게 나도 목이 메어서 눈물이 나고야 말았다. 그래서 바보같이 세 살배기 아이를 안고 함께 울었다. 아이는 한참을 울었고 며칠이 지나도 문득문득 슬프다고 했다. 잠들기 전에도 엄마가 죽으면 자기는 너무 마음이 아플 것 같다고 얘기했다. 눈물자국으로 얼룩진 아이의 잠든 얼굴을 바라보면서 나는 아이가 태어난 이래로 가장 큰 위기에 봉착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크게 실수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과 이별에 대해 언젠가 설명하고 이해시켜야 하는 개념이라고 생각은 어렴풋이 하고 있었지만 내가 너무 일렀던 걸까? 아니면 지금 당장 죽음에 대해 정확히 말하기보다는 엄마아빠는 영원히 네 옆에 있어줄 거라고 선의의 거짓말을 했어야 했나? 내 인생에서 엄마의 죽음이 첫 번째 터닝포인트가 되었듯 내 아이에게도 엄마의 죽음은 엄청난 충격일 텐데. 죽음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상상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상실의 공포로 다가올 텐데. 바보같이 나는 그것을 간과한 것이다.



산책하던 길에 말라죽은 지렁이를 보면서 "엄마, 왜 애는 안 움직여요?" 하고 물어보는 아이의 궁금증을 풀어주고 싶었을 뿐인데. 그래도 굳이 지금 알려줄 필요는 없었을 텐데 하고 나는 자책했다. 우리가 함께할 시간은 지금도 일분일초 줄어들고 있는데, 그 소중한 시간에 온전하게 집중하지 못하고 아이가 슬퍼하며 며칠을 보냈다고 생각하니 속상했다.



이미 아이는 죽음과 이별의 개념을 알아버렸고, 이해해 버렸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육아와 일로 정신없이 돌아가는 일상 속, 여유가 생기는 짧은 순간마다 내가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이 숙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했다. 죽음을 알려 주었으니 삶도 알려주어야 한다. 나는 아이에게 살아있는 것들이 왜 소중한지 알려주어야 했다.



그즈음 보홀로 가족 여행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일정을 구상하면서 아이와 함께 해볼 만한 뜻깊은 체험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아이의 아직 어린 나이를 고려해서 참여 가능한 투어 중 반딧불투어가 눈에 띄었다. 도시의 인공적인 불빛에 둘러싸인 아이에게 진짜 불빛을 보여주면 어떨까? 사실 나도 반딧불을 실제로 본 적이 없어서 궁금하기도 했다. 보홀에 도착해 해변가를 거닐다 즉흥으로 현지 투어 업체를 예약했다.



 캄캄한 밤, 한 시간여를 달리고 달려 보트들이 떠있는 조용한 강가에 도착했다. 다른 한국 분들과도 합류해서 함께 보트를 타고 고요한 적막이 흐르는 강을 떠다녔다. 필리핀 현지 가이드 분이 높은 작대기로 반딧불들이 모여있을 만한 나무 위를 툭툭 두드렸다. 그 소리와 충격에 반딧불들이 순간 빛을 내며 번쩍이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반짝이고 예뻐서 깜짝 놀랐다.



아무런 전등도 없는 캄캄한 강 위의 보트에 앉아 우리는 순간순간 반짝이는 반딧불이들의 불빛을 관찰했다. 너무 깜깜해서 코앞 외에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덕분에 하늘에 수 놓인 별들도 오롯이 구경할 수 있었다. 현지 가이드분이 반딧불이를 몇 마리 잡아와 우리의 손에 한 마리씩 내려놓아주었다. 아주 작은 반딧불의 꽁무니에서 불빛이 반짝였다. 참 신기했다. 이 생명의 신비가, 살아 있는 불빛의 아름다움이 사진에 다 담기지 않아 아쉬웠지만 더 열심히 보고 눈과 마음에 꼭 꼭 담기로 했다.



항상 화사한 조화보다는 생화가, 언제든 반짝반짝 빛나는 크리스마스트리의 미니 전구보다 지금 이 순간 빛나는 반딧불이 더 아름답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그날. 아이는 처음엔 크리스마스트리 전구가 더 이쁘다고 했다가, 고요하고 깜깜한 하늘에서 별도 보고 반딧불이도 한참 보더니 반딧불이가 훨씬 더 예쁘다고 했다. 잘 시간이 지나 연신 하품하면서도 손에 올라온 반딧불을 소중하게 감싸고 아이는 싱글싱글 즐거워했다. 좁고 더운 투어 차 안, 여러 사람들 사이에 끼여서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한 시간여를 고생고생해서 갔지만 그 고생이 싹 잊힐 만큼 뿌듯한 순간이었다.



지금 이 순간 살아있는, 소중한 것들을 직접 다 보여줄 수 있어서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아직 너무 어려서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알려주고 싶었다. 이 생각과 마음을 기록해 글로 남기고 싶었다. 우리는 모두 죽는다. 모두가 자신의 죽음이 언제일지 아무도 모른다. 죽음을 위해 우리는 매 순간순간 충실히 살아야 한다. 죽음의 순간 우리가 가지고 떠날 수 있는 건 열심히 살았던, 사랑했던, 혹은 후회하거나 아쉬울 기억뿐이다.



잠깐 빛나다 금방 꺼지는 반딧불 빛처럼 우리는 모두 영원히 살지 못하기 때문에 매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 한단다. 역설적이지만 생명이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이 작은 순간들이 모두 의미가 있는 거란다. 지금 이 시간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아. 그래서 엄마아빠는 항상 최선을 다해 너에게 사랑을 주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 늙어서 놀지 말고 젊고 어릴 때 많이 많이 놀자. 엄마 아빠가 더 많이 안아주고 손잡아줄 수 있는 지금 이 순간들을 실컷 누리자. 우리 앞으로도 같이 사이좋게 많이 많이 놀자. 사랑해 아가야.



죽기 전에 이 세상에서 우리 아이가 궁금해하는 건 눈으로 꼭 보여주어야지. 살아 있어서 소중한 모든 것들을 함께 지켜보아야지. 더 크면 추운 나라로 은하수와 오로라도 보러 가자고, 동물원 대신 초원에서 뛰어노는 사자와 코끼리와 기린을 지프차 타고 구경하러 가자고 잠든 아이의 머리칼을 넘겨주며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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