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아 Nov 08. 2024

살고 싶어서 발버둥 친 날들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쌓아올린 조각모음_2

엄마가 암에 걸리고,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집 사정은 더 나빠졌다. 벚꽃 휘날리던 3월, 갓 성인이 된 20살 대학생들은 설레는 마음으로 걷는 캠퍼스를 나는 웃으며 걸어 다닐 수 없었다. 빚쟁이들이 우리 집을 찾아와 돈을 달라며 나를 괴롭혔고, 아빠는 빚쟁이들을 피해 도망을 다녔다. 엄마가 운영하던 가게는 계약기간이 정해져 있었고 정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재고관리도, 손님응대도, 장부도 볼 줄 모르던 나는 1학년 1학기를 다니고 휴학을 한 뒤 엄마 가게를 운영하게 되었다.


어리숙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세상이 너무 어려웠다. 나보다 나이 많은 아르바이트생들은 내 눈을 속이고 일을 하지 않았고, 갖은 진상 손님들에 시달렸다. 제일 기억에 남았던 건 몇 년 전에 구매하고 오랜 기간 사용해서 이미 낡을 대로 낡은 물건을 가지고 제품이 좋지 않았다며 환불해 달라고 가져온 부부였다. 생뗴를 쓰고 소리를 지르며 난장을 피웠고 주변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나는 환불을 해줬고 현금을 받아가며 그 부부는 밝게 웃었다.


아침 9시부터 가게 문이 닫히는 밤 10시까지. 서서 또는 앉아서 나는 그 자리를 지켰다. 휴대폰으로 sns를 보면 여기저기 놀러 다니며 대학 캠퍼스를 오가는 밝고 행복한 내 또래 아이들이 부러웠다. 비교할수록 비참해지기만 하는 내 삶. 그러나 나는 단 한순간도 죽고 싶다거나 살기 싫다는 말은 입밖에 내지 않았다. 어떻게든 하루라도 더 살고 싶어 하는 암 말기 환자인 엄마 앞에서 그런 생각은 감히 할 수 없었다. 엄마는 처음엔 자신을 대신해 가게를 맡는 내게 미안함과 안쓰러움을 가졌지만 곧 그건 당연한 일이 되었다. 매출에서 가게를 오갈 최소한의 교통비와 밥값을 뺀 돈은 모두 엄마에게 고스란히 들어갔다.


요양원에 있는 엄마에게 어떻게 가게를 운영해야 할지 고민을 토로하면 엄마는 내게 화를 내곤 했다. 스트레스가 몸에 해가 된다며 알아서 하라는 식이었다. 맞는 말이었다. 사실 나는 내가 맡은 이 모든 책임감으로부터 때때로 도망치고 싶었다. 내가 마주한 현실로부터, 남들보다 비참한 이 모든 상황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절박하게 살고 싶지만, 살고 싶지 않은 아이러니. 그러나 이렇게만 살다가 죽고 싶지는 않다는 마음, 그러나 가끔은 죽고 싶었던 나날들 사이에서 나는 아슬아슬하게 버텼다.


작은 가게에 우두커니 서 있는 내 모습이 자연스러운 풍경이 될 무렵, 어느 날부터인가 배가 아팠다. 밤 10시까지 자리를 지키고 마감을 하기 위해 근처 약국에서 진통제를 구매해서 먹었는데도 복통이 사라지지 않았다. 몇 시간 후 더 강한 약을 달라고 요구했지만 약사는 더 강한 약은 없다며 당장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어찌어찌 대타를 구해 택시를 타고 근처 응급실을 찾아갔다. ct를 찍고 의사 선생님은 내게 난소물혹이 터지기 직전이니 내일 아침에 바로 응급수술에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처음 듣는 용어들, 그리고 처음 들어본 병명과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들, 그리고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 그 모든 잡념들이 구름처럼 둥둥 내 머릿속을 떠다녔다.


입원을 해야 한다는 말과 수술 주의사항, 보호자 동의가 필요하다는 설명을 들으면서 내가 아프고, 바로 다음날 아침에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 믿기 힘들었다. 짧은 찰나 수많은 질문들이 떠올랐지만 나는 의사 선생님의 설명을 다 듣고 나서 가장 처음으로 이 말을 내뱉었다.


"선생님, 그럼 수술이 끝나면 저는 언제부터 다시 일을 할 수 있나요? 제가 돈을 벌어야 해서요."


삶의 고단함에 찌들어 생기를 잃고 모든 감정이 메말라버린 20살의 내가 빠르게 현실을 받아들이고 내뱉었던 이 말. 나는 이 순간을 아직도 기억한다. 안쓰러움과 당황이 섞인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의사의 표정을 기억한다. 보호자 없이 나 홀로 배를 부여잡고 응급실로 어찌어찌 걸어 들어갔던 그 순간을 기억한다. 사실은 나는 살고 싶었노라고, 내 삶이, 지금의 상황이 이보다 더 바닥일 수는 없지만 이 바닥에서도 나는 숨 쉬며 어떻게든 살아보고 싶었다. 모든 순간 발버둥 치며 살았지만 가장 초연하고도 강했던 삶에 대한 의지를 느꼈던 순간이다.


십여 년이 지난 지금, 그 시절 스무 살의 나를 만나면 안아주고 싶다. 아무도 나를 안아주지 않았던, 홀로 모든 걸 감내해야 했지만 그럼에도 잡초처럼 끈기 있게 버티고 살아낸 나를, 죽고 싶었던 모든 순간을 버텨낸 나를 안아주고 싶다. 죽어야 사는 여자, 이렇게는 죽지 말자며 죽을 생각을 하며 아등바등 살았던 어리숙하고 너무 빨리 철들어버린 나를. 안아주고 싶다.

이전 04화 이렇게는 죽기 싫었던 날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