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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아 Nov 01. 2020

자신이 기특해지는 순간

두렵던 혼자 여행을 가다

혼밥도 못하는 나는 혼자 해외여행을 가는 것이 로망이었다. 나는 길치에, 혼밥을 먹지도 못하고, 여행을 갈 때는 대부분 친구들에게 의지해서 다니고는 했다. 막연히 언젠가는 혼자 여행을 해봐야지 생각만 했지 실천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가끔 친구들이 혼자 여행하는 것은 재미없다고 말해주면 그래 재미없을 것 같으니 안 가도 되겠다면서 나를 위로하고는 했다.


그러다 작년 내게 용기를 준 것은 실연이었다. 갑작스럽게 이별을 했고, 12월이 됐다. 12월 내 생일 때에 맞춰서 함께 해외여행을 가기로 약속했었지만 나는 혼자였다. 혼자 해외여행을 자주 갔던 전 남자 친구는 왠지 혼자서라도 여행을 갈 것 같았다. 그래서 나도 가기로 했다. 나는 전 남자 친구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만약 돌아오지 않고 12월이 지나간다면 내 12월이 너무 슬플 것 같았다. 그리고 나 또한 여행을 워낙 좋아했기 때문에 전 남자 친구만 여행을 다녀오고 나는 안 다녀오면 부러워서 질 것 같았다.


처음에는 두렵지만 하고 싶었던 혼자 여행을 한다는 생각에 설렜다. 그런데 계속 고민만 하다가 비행기표를 결재하는 순간 후회가 밀려왔다. 바로 취소하고 싶었다. 예매가 완료되는 순간 현실로 와 닿으면서 내가 혼자 여행을 다녀올 수 있을까 겁이 났다. 하지만 너무 늦게 예매를 했기 때문에 취소하는 순간 40%의 수수료를 지불해야 했다. 그래서 취소하지 못했다.


대신 정말 열심히 알아봤다. 공항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무엇을 어디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부터, 호텔에는 어떻게 가야 하는지, 호텔에서 관광지는 어떻게 가는지 등등 하나부터 열까지 이미 그 여행지에 다녀온 것 마냥 열심히 공부했다. 처음 공항에 도착해서 무사히 비행기를 타는 것만으로도 뿌듯했다. 체크인을 하고, 수화물을 맡기고, 면세품을 찾고, 혼자 밥도 먹었다. 그리고서 비행기 좌석에 앉았을 때 1차 안도감을 느꼈다.


그렇게 나의 여행은 시작됐고, 생각보다 순조로웠다. 호텔 가는 버스는 잘 몰라서 택시를 타고 이동했고 그 이후에는 거의 도보로 다닐 수 있는 관광지여서 다니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혼밥도 거의 사람들이 없는 시간인 아침 일찍이나 애매한 시간에 가서 먹고는 했다.


물론 시간을 못 맞춰서 먹고 싶던 음식을 먹지 못하기도 하고, 길을 찾느라 구글맵만 보면서 걷다가 화단에 넘어지고 하고, 버스를 잘 못 타기도 했다. 연말 분위기에 혼자 여행 온 것이 오히려 실연당한 나를 더 외롭게 만들기도 했다. 그래서 좋아하는 여행인데도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심지어 밤에는 혼자 자는 게 외로워서 눈물도 났다. 그리고 다시는 혼자 여행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무사히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오니 뿌듯했다. 내가 그렇게 두려워하던 것이 막상 부딪치면 해볼 만한 것들이구나 느꼈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두려움이 누구나 있다. 정말 두렵고 가지 않아도 되는 길이라면 안 가도 되지만, 두려운 일들 중에는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들도 있다. 당시에는 다시는 혼자 여행 가지 않겠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때 용기를 낸 나 자신이 자랑스럽고 다시 한번 혼자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기특해지는 순간이 많을수록 자존감이 올라간다고 한다. 한 번의 경험이지만 나는 내가 기특하다. 어떠한 경험이든 새로운 경험들은 자신을 기특하게 만들어준다. 코로나가 지나간 후에 다시 한번 혼자 여행을 떠나봐야겠다.


그림: 혼자 여행으로 찍지 못한 독사진을 그림으로 대신 그려봤다.(마카오에서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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