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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사이란 행성 궤도와도 같은 것

친구란 정말 시절 인연일까?

by 선빵

흔히 친구 사이란 시절 인연이라고 한다. 한 시절에 만나서 친구가 되고, 그 시절이 끝나면 보지 못하는 관계가 된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친구 사이란 행성 궤도 같다. 행성들은 저마다의 궤도가 있다. 각자의 궤도대로 운동하다가 두 행성이 서로 가까이 만날 때도 있고 멀어질 때도 있고 다시 시간이 흐르면 다시 가까워진다. 친구 사이도 그렇다. 각자의 인생 궤도를 돌다가 둘의 거리가 가까워질 때 친구가 된다. 새로 알게 된 친구이니 그 친구의 새로운 점, 흥미가 생겨서 자주 만나게 된다. 자주 만나서 이야기도 하고, 술도 먹고, 맛집을 같이 찾아가고, 산책하고, 놀러 가고 등. 그러다가 두 행성이 각자 자신의 궤도대로 운동하면서 행성들이 멀어진다. 이와 비슷하게 각자의 일상이 바빠져서 혹은 서로의 관심사가 달라지면서 연락이 점점 줄어든다. 그러다가 행성들이 멀어졌다가 다시 가까워지는 것처럼 멀어졌던 친구와 다시 자주 만나게 된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들어 준 친구들이 있다. H와 D이다.


H는 고등학교 3학년 때 같은 반이 되면서 알게 되었다. 그때는 서로 친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성격도 성향도 너무 달라서 나는 H를 이해하지 못했다. 둘이서만 논 적도 없었다. 그렇게 5년 동안 친구라기에는 서먹하고 남이라기에는 친밀한 사이로 지냈다. 그러다가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다른 친구들을 포함해서 네 명이서 만나려고 했으나 시간이 되는 사람은 나와 H뿐이어서 5년 만에 처음으로 단둘이 만났다. 그런데 H랑 코드도 잘 맞고 너무 재미있는 거다! 둘 다 추리 장르를 좋아한다는 점, 음악 취향이 비슷한 점, 남돌 덕질을 시작했다는 점이 같았다. 그렇게 우리는 이틀마다 혹은 사흘마다 만났다. 둘이 얘기하는 게 재미있어서 산책하면서 걷다 보면 20km를 걸었다...! 걷다가 지쳐서 술집에 들어가서 술을 마시고, 취한 채로 깔깔거리며 다시 20km를 걸어 오기를 반복했다... 지금은 자주 만나지 못하고 있다. 내가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고 H도 취업 준비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D는 중학교 때 친해진 친구다. D와 거의 매일 만났다. 학원과 과외가 같았고 서로의 성격과 취향이 정말 비슷

했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 단짝 친구를 떠올려 보세요.’라고 한다면 주저 없이 D이다. 그런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자 서로의 대학교가 너무 멀었고 의도64하지 않게 타이밍이 계속 맞지 않아 점점 볼 수 없었다. 1년에 1번 보는 것도 정말 많이 보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D가 결혼을 하면서 나의 직장 근처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그렇게 D를 만나는 횟수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이렇듯 H라는 행성과 나의 행성 간 거리는 멀었다가 가까워졌고 다시 멀어지는 중이다. 반대로 D라는 행성과 나의 행성 간 거리는 가까웠다가 멀어지고 다시 가까워지고 있다. 그 외에 친했지만 요즘 만나지 못하는 친구들이 있다. 조바심을 내지 않고 기다리고 있다. 각자의 궤도대로 인생을 살고 있고 내 행성과 그들의 행성 거리가 언젠가는 가까워질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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