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워킹맘의 살림살이
살림살이
: 살림을 차려서 사는 일. 숟가락, 밥그릇, 이불 따위의 살림에 쓰는 세간
미혼일 때는 결혼만 하면, 아이만 낳으면 저절로 살림을 잘하게 되는 줄 알았다.
뭐든 잘 배우고, 성실한 편이니 살림쯤이야 쉽게 익히겠지 싶었다.
그런데 나는 확실히 살림에 소질이 없었다.
결혼한 지 올해 14년이나 되었지만, 요리 앞에서 나는 작아진다.
청소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면 청소는 어렵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요리는 왜 이리 어려운 걸까.
그때부터 나는 내게 살림의 소질이 없다고 믿었다.
살림하는 데도 소질이 필요한 게 분명하다고 말이다.
의욕은 넘치니 거창한 요리를 해보겠다고 장을 봐오기라도 하면, 그날 남편은 나를 말리느라 바빴다.
그냥 맛있게 된 걸 사 먹자. 그 시간에 차라리 쉬어.
처음부터 남편이 나를 불신한 건 아니었다.
신혼 초 호기롭게 '특제 라면'을 끓이겠다고 주방을 엉망으로 만들었는데 그 라면 맛이 신통치 않았던 것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남편은 요리를 하겠다고 주방에 선 나를 믿지 않는다.
(솔직히 나도 나를 믿지 못하겠다. 그러니 이해한다. 남편의 우려를)
육아휴직이 가져다준 선물이다.
일단, 출근을 하지 않고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니 눈에 보였다.
우리 집 살림은 메마르고 외로워 보였다. 나의 손길이 자주 닿지 않았으니 말이다.
버리지 못하고 놔둔 물건들, 구석구석 쌓인 먼지, 있는 줄도 모르고 계속 사들였던 생필품까지.
이제 나는
마치 처음 살림하는 사람처럼 재미있다.
분명한 건 그동안 난 회사일에 미쳐 나를 돌보지 못했다.
남편과 두 아이들도 '살리는' 진짜 살림을 살아내지 못했다.
그런 내게 기회가 온 것이니 놓칠 수 없지 않나.
아직 늦지 않았다면, 지금이라도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믿는다.
여전히 살림을 잘하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고, 따라 해보려고 애를 쓴다.
그러니 내겐 가능성이 있을 거다.
늦었지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용기를 내본다.
살림에도 소질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