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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워킹맘 Aug 01. 2023

세상 겁 많은 엄마가 아이와 단둘이 산골로 가는 이유

엄마, 나도 시골학교 다니고 싶어요.
친구들이랑 맨날 밖에서 놀 수 있잖아요.



언젠가 아홉 살 둘째가 말했다. 유독 사람을 좋아하고, 친구가 중요한 아이의 학교 생활이 힘들었던 걸까. 큰 문제없이 초등 1년을 보내고 나서 내게 속삭인 말에 흔들렸다. 한 반에 스무 명이 넘는 도시 학교보다 시골 학교에 가면 소수의 친구들과 더 돈독한 관계를 맺을 수 있으려나 싶었다.


사실 아이의 말을 흘려들을 수도 있었다. 당장 시골학교로 갈 수도 없었다. 그저, 언젠가 기회가 되면 가보자고 공허한 답만 했을 뿐이었다.


그러다 1년 육아휴직을 시작했다. (저질렀다고 말하는 게 더 맞다) 이미 지칠 대로 지쳤고, 몸 여기저기도 아팠지만 아이들이 너무 빨리 커가는데 엄마가 모르는 게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계기가 됐다. 아이들이 언제까지나 내 품의 '어린이'는 아닐 테니까. 나중에 후회하게 될 것 같아 무서웠다. 내 키보다 더 커진 아이들이 이렇게 되물으면 뭐라고 할지 난감했다.


칫, 그동안 엄마가 너무 바빴잖아요.
나에 대해 하나도 모르잖아요.
나한테 관심이나 있었어요? (블라블라)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서늘해진다. 일이냐, 육아냐를 놓고 저울질할 수 있으랴. 내겐 일도 정말 중요했고, 가족과의 시간도 소중했지만 균형을 잡기란 쉽지 않았다. 말이 '워라밸'이지, 풀타임 워킹맘에게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일은 세상에서 제일 어려웠다.


그래서 결심했다. 중학생인 큰 아이와 아빠는 집에 남겨두고, 아직 초등 저학년이라 부담 없는(!) 둘째와 강원도 산골로 생태유학을 떠나기로 말이다. 딱 6개월이다. 혹시 1년으로 연장할 수도 있겠지만, 일단은 6개월 한 학기 동안 여행을 떠나듯 강원도 인제살기를 시작하게 됐다.


8월 중순, 개학날에 맞춰 아이가 전학 가게 될 인제의 한 초등학교


겁 많은 엄마의 6개월 인제살이 도전이란


산골생태유학을 결정하면서 아이가 다니게 될 학교와 집을 미리 둘러봤다. 아이는 한 학년에 한 반뿐인 작은 학교 운동장에서 한참이나 서 있었다. 학교가 마음에 쏙 든다며 하루라도 빨리 학교에 다니고 싶다고 했다. 한 반에 열 명도 안 되는 친구들을 어서 만나보고 싶다고 했다.


아이에게 솔직히 고백했다. 사실 엄마는 겁이 아주 많은 사람이라고. 새로운 것에 도전할 땐 용기가 아주 많이 필요하다고. 그런데 일단 시작하고 나면 겁이 없어져서 용감해진다고 말이다. 아이는 내 마음을 아는 듯 모르는 듯 활짝 웃었다.


엄마, 제가 있잖아요. 걱정 마세요.
나랑 같이 잘 살아봐요!


엄마와 달리 앞뒤 가리지 않고, 그저 씩씩하고 활달한 아이에게 지고 말았다. 아이는 미리 걱정하지 않는다. 계산기를 두드릴 줄도 모르는 아이에게 근심 가득한 엄마의 모습을 보여줄 이유가 없다. 그래, 우리 잘해보자. 너를 믿고, 너와 둘이 살아갈 이 엄마를 믿어야지 별 수 없다.


도시에서 태어나 나고 자랐다. 아파트에서만 살아봤던 내가 한옥집에서 아이와 단 둘이 살아가야 한다. 큰 용기도 필요하지만, 강인한 생활력도 필요할 것이다. 그 모든 여정을 기록으로 남겨두려 한다. 아이가 다 자라서 엄마와 단 둘이 살았던 6개월을 행복하게 추억할 수 있도록 말이다.


아들아, 잘 부탁해. 우리의 6개월을 잘 꾸려나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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