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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Oct 02. 2024

가을 하늘 공활해서 반차를 냈다

월요일 같은 수요일 아침입니다.

오랜만에 자가용 대신 버스를 이용해 출근했습니다.

1시간 40분 걸려 회사 근처 빽다방에 자리 잡았습니다.

아침 출근길에 유난히 달라 보이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사람들의 옷차림입니다.

반팔 반바지가 눈에 띄게 줄고, 긴팔과 겉옷을 하나씩 걸쳤습니다.

하룻밤사이에 아침 기온이 10도 이상 떨어졌습니다.

저도 반팔 위에 카디건을 걸쳤습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더위도 이제 자리에서 물러나나 봅니다.


매장 안에서 모기 두 마리 잡았습니다.

여름이 끝나서 그런지 모기도 기운이 빠졌나 봅니다.

휘두르는 손끝에 맥없이 잡혀버립니다.

한여름 기운이 잔뜩 올랐을 땐 숨바꼭질하듯 잡히지 않던 녀석들이었는데요.

여름이 길었던 탓에 이 녀석들도 호의호식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가을이 늦게 온 탓에 지난해 보다 더 호사를 누렸을 겁니다.

호의호식에 호사를 누려도 결국 여름은 끝을 알려왔습니다.


최근에 가로수를 올려다본 적 있으신가요?

천왕역에서 사무실까지 벚나무가 심어졌습니다.

가을 하면 색이 바랜 이파리로 가득 덮인 나무가 상상됩니다.

색이 바랜 나무가 가을이 왔음을 알렸습니다.

더위가 한풀 꺾이면서 초록색이던 이파리 색이 서서히 변하는 게 순서였죠.

하지만 더위 탓인지 이파리가 붙은 나무가 거의 없습니다.

색이 변하기 도전에 초록잎이 다 떨어졌습니다.

요즘 나무를 올려다보면 가지만 앙상합니다.

단풍의 정취가 사라졌습니다.


계절은 돌고 돕니다.

끝을 모르고 이어진 더위도 찬물을 뒤집어쓰듯 한 순간에 사그라졌습니다.

가지만 앙상하게 남은 나무 주변에도 색이 바랜 이파리가 뒹굽니다.

찬 바람에 적응할 때쯤이면 본격 추위가 시작될 것입니다.

지난겨울 추위에 치를 떨던 기억이 다시 떠오르며 패딩에 코트에 내복까지 준비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다시 봄이 오고 여름이 오길 바랄 테고요.

오는 가을 막을 수 없고, 가는 여름 붙잡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달라지는 날씨에 따라 적응해 가는 것뿐입니다.


날씨뿐 아닙니다.

주변에 들고 나는 사람 내 의지대로 할 수 없습니다.

나에게 일어나는 일 내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일어날 일은 어떤 식으로 일어납니다.

부는 바람을 피할 수 있지만, 바람이 일어나는 걸 막을 수는 없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정해져 있습니다.

주변에 휘둘리지 않게 두 발 단단히 딛고 서있는 겁니다.

내 자리에서 내가 해야 할 일 하면서 말이죠.

날씨가 변하는 것, 바람이 부는 것, 낙엽이 지고 떨어지는 건 의지와 상관없습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만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이렇게 글 한 편 씁니다.

아무리 오늘 날씨가 끝내줘도 일하러 가야 하는 건 변하지 않습니다.

아침 햇살에 마음이 뒤숭숭해봐야 결국 사무실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내가 해야 할 일, 글 한 편 쓰는 걸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오후에 반차 냈습니다.

날씨가 끝내주네요.




https://naver.me/FtT1e0G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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