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하늘 공활해서 반차를 냈다

by 김형준

월요일 같은 수요일 아침입니다.

오랜만에 자가용 대신 버스를 이용해 출근했습니다.

1시간 40분 걸려 회사 근처 빽다방에 자리 잡았습니다.

아침 출근길에 유난히 달라 보이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사람들의 옷차림입니다.

반팔 반바지가 눈에 띄게 줄고, 긴팔과 겉옷을 하나씩 걸쳤습니다.

하룻밤사이에 아침 기온이 10도 이상 떨어졌습니다.

저도 반팔 위에 카디건을 걸쳤습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더위도 이제 자리에서 물러나나 봅니다.


매장 안에서 모기 두 마리 잡았습니다.

여름이 끝나서 그런지 모기도 기운이 빠졌나 봅니다.

휘두르는 손끝에 맥없이 잡혀버립니다.

한여름 기운이 잔뜩 올랐을 땐 숨바꼭질하듯 잡히지 않던 녀석들이었는데요.

여름이 길었던 탓에 이 녀석들도 호의호식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가을이 늦게 온 탓에 지난해 보다 더 호사를 누렸을 겁니다.

호의호식에 호사를 누려도 결국 여름은 끝을 알려왔습니다.


최근에 가로수를 올려다본 적 있으신가요?

천왕역에서 사무실까지 벚나무가 심어졌습니다.

가을 하면 색이 바랜 이파리로 가득 덮인 나무가 상상됩니다.

색이 바랜 나무가 가을이 왔음을 알렸습니다.

더위가 한풀 꺾이면서 초록색이던 이파리 색이 서서히 변하는 게 순서였죠.

하지만 더위 탓인지 이파리가 붙은 나무가 거의 없습니다.

색이 변하기 도전에 초록잎이 다 떨어졌습니다.

요즘 나무를 올려다보면 가지만 앙상합니다.

단풍의 정취가 사라졌습니다.


계절은 돌고 돕니다.

끝을 모르고 이어진 더위도 찬물을 뒤집어쓰듯 한 순간에 사그라졌습니다.

가지만 앙상하게 남은 나무 주변에도 색이 바랜 이파리가 뒹굽니다.

찬 바람에 적응할 때쯤이면 본격 추위가 시작될 것입니다.

지난겨울 추위에 치를 떨던 기억이 다시 떠오르며 패딩에 코트에 내복까지 준비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다시 봄이 오고 여름이 오길 바랄 테고요.

오는 가을 막을 수 없고, 가는 여름 붙잡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달라지는 날씨에 따라 적응해 가는 것뿐입니다.


날씨뿐 아닙니다.

주변에 들고 나는 사람 내 의지대로 할 수 없습니다.

나에게 일어나는 일 내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일어날 일은 어떤 식으로 일어납니다.

부는 바람을 피할 수 있지만, 바람이 일어나는 걸 막을 수는 없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정해져 있습니다.

주변에 휘둘리지 않게 두 발 단단히 딛고 서있는 겁니다.

내 자리에서 내가 해야 할 일 하면서 말이죠.

날씨가 변하는 것, 바람이 부는 것, 낙엽이 지고 떨어지는 건 의지와 상관없습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만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이렇게 글 한 편 씁니다.

아무리 오늘 날씨가 끝내줘도 일하러 가야 하는 건 변하지 않습니다.

아침 햇살에 마음이 뒤숭숭해봐야 결국 사무실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내가 해야 할 일, 글 한 편 쓰는 걸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오후에 반차 냈습니다.

날씨가 끝내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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