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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Jun 20. 2023

엄마는 엄마다

총각무 김치 한 통


총각무 김치를 담가놨다고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옆 동 어르신이 무공해로 키운 총각무를 공짜로 줘서 담갔단다. 일요일 오후에 가겠다고 했다.


빈 반찬통을 챙겼다. 며칠 전 네 식구가 하나씩 들어야 할 만큼 이것저것 챙겨줬다. 빈 통도 장바구니 가득이다. 받은 만큼 채워 주는 게 정이라고 배웠다. 엄마에겐 예외다. 무얼 사야 할지 모르겠다. 과일은 당 때문에 안 되고, 빵, 과자도 혈당 오른다고 안 먹고, 간이 센 거 세서 못 먹고, 작정하고 사간 건 돈 쓴다고 핀잔 듣기 일쑤였다. 언젠가부터 빈손으로 갔다.


이날도 빈손으로 빈 통만 들고 들어갔다. 주방 한편에 이미 싸놓은 김치 한 통. 식탁 위에는 아이들 먹이라며 과자와 떡도 챙겨놓았다. 예전에는 투덜대기부터 했다. 당신이 못 먹는 걸 자식 손자 먹으라고 챙겨주는 거다. 그런 챙김이 싫었다. 받아들고 나오는 게 싫었다.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게 싫었다. 대단한 이유도 아니지만 어딘지 모르게 싫었다. 그냥 받아 챙겨 가는 게 싫었던 것 같다.


이번에는 툴툴대지 않았다. 조용히 주는 대로 다 받아왔다. 엄마도 눈치를 보는 탓에 더는 챙기지 않았다. 김치통 하나 주전부리가 담긴 쇼핑백 하나를 각자 들고 차로 갔다.


차에 싣는데 엄마가 뜬금없이 시계 있냐고 묻는다. 작은형이 찬 시계를 봤다며 필요하면 같은 걸로 사주겠단다. 아마 작은형이 찬 스마트 워치를 말하는 것 같았다. 안 그래도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때를 봐 하나 장만하려고 벼르고 있었다. 순간 솔깃했다. 천사와 악마가 찰나에 나타났다.


'당장 필요하다고 말해'

'이건 아니지, 네가 필요한 스스로 사야지'


3초 사이에 갈등했다. 나이만 먹었지 자식은 자식인가 보다. 엄마의 선의를 당연하게 받으려 하니 말이다. 내색하지 않고 괜찮다고 말했다. 엄마는 나의 거절이 아쉬웠는지 기어코 한 소리 더 거 든다.

"필요하면 언제든 말해, 빚을 내서라도 사줄게."


말이라도 고마웠다. 아니,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역시 엄마는 엄마다. 긴 시간 떨어져 지내도 엄마의 촉은 여전히 날이 섰다. 순간 방심하면 당신의 촉은 내가 필요한 것들을 어김없이 짚어내니 말이다. 같은 세월을 살았지만 여전히 무딘 내 촉과는 비교 안 된다. 자식은 평생 자식이고, 엄마의 속내를 이해하지 못할 터다.


손주들 먹을 수 있게 맵지 않게 맛을 냈다. 달짝지근한 무 맛이 감칠맛을 더했다. 담근 지 얼마 안 된 터라 입속에서 바스러지는 느낌과 소리가 경쾌했다. 맵지 않고 씹는 재미가 있는지 둘째가 잘 먹는다. 김칫 국물에 국수 말아먹으면 여름 더위 잊기 딱 좋은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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