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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Jun 25. 2023

내리사랑, 소불고기에서 스테이크로

아버지의 소불고기는 달짝지근했다. 고기는 씹을 게 없을 만큼 야들야들했고, 국물은 밥을 비벼먹기 안성맞춤이었다. 아버지가 해준 소불고기를 먹은 기억은 두어 번뿐이다. 초등학교 때로 기억한다. 그때 그 밥상은 40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생각난다. 드라마 예고편처럼 장면 장면으로 이어지는 기억이다. 그 장면이 여전히 떠오르는 건 그날 그 음식이 무뚝뚝했던 아버지만의 표현 방법이었다고 생각한다. 말이 아닌 음식으로 사랑을 표현하셨던 것 같다.


아내는 방학을 핑계로 여행을 떠났다. 준비하는 동안 투덜대면서도 내심 기대하는 눈치였다. 기대가 만족스러웠는지 하루종일 연락 한 번 없었다. 내가 먼저 연락하자 그제야 잔뜩 들뜬 채 답장을 보냈다. 몇 마디 안 했지만 즐거워하는 게 눈에 보였다. 아내가 마음 편히 여행을 즐길 수 있는 건 나와 두 딸을 믿기 때문이다. 이제는 자신이 집을 비워도 충분히 잘 지낸다는 걸 안다. 두 딸은 주말 동안 자기 할 일 알아서 하고, 남편인 나도 아내의 빈자리가 티 안 날만큼 야무지게(?) 해낸다. 물론 부녀끼리 버틸 수 있는 건 1박 2일까지다.


전날 저녁밥 대신 빵 먹은 큰딸을 위해 아침은 밥을 준비했다. 학원 숙제하느라 시간이 부족해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볶음밥을 만들었다. 대파로 파기름을 내고 당근과 야채를 볶다가 기름을 꼭 짠 참치를 넣는다. 달걀 하나 풀어 각각의 재료를 코팅해 준다. 달거진 프라이팬 한쪽에 간장을 눌러(간장을 끓여 풍미를 더하는 것) 간을 해준다. 재료에 간이 베이면 밥을 넣고 골고루 섞이도록 센 불에 볶아준다. 볶음밥의 성패는 수분기를 없애는 데 있다. 강한 불에 오래 볶아야 고슬고슬한 상태가 된다. 수분이 많으면 볶음밥 본연의 맛이 안 난다. 재료와 밥이 골고루 섞였으면 굴소스로 맛을 끌어올린다. 굴소스로 맛을 낸 볶음밥은 실패하는 법이 없다. 두 딸은 굴소스가 입맛에 맞나 보다.  


아침을 먹고 난 뒤 각자 알아서 시간을 보냈다. 큰딸은 학원으로, 둘째는 친구 만나러, 나는 집에 남아 빨래와 설거지 후 나만의 시간을 가졌다. 세탁기 한 번 돌리고 빨래 걷고 TV 잠깐 보니 반나절 금방이다. 각자 시간을 보내고 6시에 다시 집에 모였다. 저녁 메뉴는 전날 정해놨다. 둘째가 오랜만에 아빠가 구워주는 스테이크를 먹고 싶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삼겹살, 목살, 대패삼겹살, 제육볶음은 가끔 먹었지만, 스테이크 먹은 지 오래된 것 같았다. 아내도 여행 가서 무한리필 바비큐를 먹는다고 했으니 두 딸에게도 스테이크 정도는 해주는 게 맞았다. 좌 큰딸, 우 작은딸을 데리고 마트에 장 보러 갔다. 이런 날도 있구나.


둘째는 종종 따라나서지만 큰딸은 웬만해선 집을 지킨다. 중2 큰딸에게 장 보러 가겠냐고 물으니 흔쾌히 따라나서겠단다. 고기를 고르고, 곁들일 야채를 담고, 간식과 다음 날 아침으로 먹을 요거트도 샀다. 30퍼센트 할인받은 수입 소고기와 이것저것 담아 장바구니 하나를 채웠다. 12만 원 넘었다. 배달시켜 먹는 게 나았을까? 그래도 40분 남짓 두 딸과 마트 데이트는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경험이었다. 언제 또 같이 갈 수 있을지.


언제부턴가 고기에는 비빔면이 공식처럼 돼버렸다. 고기만 굽다가 비빔면까지 만들려면 신경 쓰고 준비할 게 곱절이다. 무엇보다 타이밍 싸움이다. 비빔면을 미리 만들어놓으면 면이 붇고, 고기를 먼저 구우면 면을 삶는 동안 식어서 제맛이 안 난다. 우선 고기부터 구웠다. 키친타월로 핏물을 빼주고 소금, 후추로 간해 실온에 둔다. 고기와 곁들일 호박, 파프리카를 준비한다. 프라이팬에 올리브유를 자작하게 두른 뒤 달궈준다. 기름 온도를 확인하고 고기를 올린다. 고기는 프라이팬에 닿는 면을 바싹 익힌다. 육즙을 지키기 기 위해서다. 반대면도 마찬가지다. 양면을 바싹 익으면 불을 줄여 속까지 익게 여러 번 뒤집어 준다. 고기가 익는 동안 호박과 파프리카도 같이 구워준다. 이때 버터를 넣으면 고소한 맛이 배가 된다. 이제부터 비빔면을 끓일 타이밍이다. 그전에 미리 면을 헹굴 얼음물은 준비해 놓는다. 면이 가늘어 2분도 채 안 걸려 익는다. 익은 면을 흐르는 물에 한 번 헹궈주고 얼음물에 담가둔다. 면발이 탱탱해지는 순간이다. 찬물에서 건져 물기 빼고 비빔장을 넣고 손으로 비벼내면 준비 끝. 비빔면 준비가 끝나면 다 익은 고기와 야채를 플레이팅 한다. 마지막으로 스테이크 소스를 뿌리면 완성이다.


두 딸은 이번 스테이크도 쌍엄지로 만족을 표현했다. 한 시간 넘게 불 앞에서 튀는 기름과 사투를 벌였다. 이 순간 서 있기 위해 매주 4.5킬로미터를 달렸다. 튀는 기름에 손이 데어도 괜찮다. 흐르는 땀은 아무것도 아니다. 분명 어릴 적 아버지도 소불고기를 만들기 위해 같은 노력을 했을 터다. 내 새끼가 맛있게 먹는 모습만 상상하며 불 앞을 지켰을 거다. 땀 흘려 만든 소불고기가 입으로 사라지는 속도만큼 아버지 입가의 미소는 더 지어졌을 것 같다. 나도 그랬으니까. 아버지는 음식으로 당신의 사랑을 표현했다. 나도 서툴지만 정성을 다한 음식으로 사랑을 표현해 왔다. 아버지와는 다른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나는 음식은 물론 말로 글로 표현하려고 노력 중이다. 말하지 않으면 상대는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십을 바라보는 지금에서야 말대신 음식으로 사랑을 표현했던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짐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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