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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Feb 25. 2024

옆구리를 툭 쳤을 뿐인데

넛지 - 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

넛지, ‘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이라는 뜻이다. 금지와 명령이 아닌 팔꿈치로 옆구리를 툭 치는 듯한 부드러운 권유로 타인의 바른 선택을 돕는 걸 의미한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같은 제품도 종류가 다양하면 선뜻 선택하지 못한다. 이때 판매하는 물건의 종류를 제한하면 고객은 선택이 수월해진다. 그로 인해 매출도 자연히 늘어나는 식이다. 자녀에게 책을 주면서 읽으라고 말하기보다,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더 효과적인 것과 같은 것이다. 물건을 고르는 것도 책을 읽는 것도 타인이 권유할 수 있지만, 결국 선택은 본인의 몫이어야 한다. 올바른 선택을 위한 어떤 형태의 '부드러운 개입'은 좀 더 현명한 선택을 내릴 수 있게 도움을 줄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행동경제학자 리차드 탈러와 법률가 캐스 선스타인이 공저한 《넛지》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다. 이 책은 출간 이후 줄곧 글로벌 밀리언 셀러로 자리 잡을 정도로 수많은 사람이 읽었다. 짐작 건데 이 책을 읽은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도 옆구리를 툭 치며 읽어보라고 권하지 않았을까 싶다.       


술이 인간관계에 미치는 영향


사회생활을 잘하려면 술을 마셔야 한다고 배웠다. 술자리는 술만 마시는 게 아니라 인간관계를 넓히는 곳이라고 알려줬다. 내 생각에 술자리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는 것 같다. 분위기를 이끄는 사람과 분위기에 끌려가는 사람이다. 나는 후자였다. 술만 마실 줄 알았지, 분위기를 이끄는 재주는 없었다. 재주가 없다고 술자리에도 참석하지 않으면 소외당할 줄 알았다. 꾸역꾸역 술자리에 불려 가면서도 주변 사람들과 쉽게 섞이지 못했다. 여러 직장을 옮겨 다니는 동안 술자리를 가졌지만 관계가 끈끈해진 경우는 드물었다. 술을 마셔도 나도 상대방에게, 상대방도 나를 편하게 대하지 못했다. 술에 취했을 때만 벽을 허물었고 정신이 돌아오면 다시 벽 뒤에 숨었다. 이런 나도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달라지려고도 노력했다. 타고난 천성인지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어느 때부터 술자리를 불편하게 여겼다. 고등학교 동창과 두어 개 모임을 빼고는 웬만해서는 나가지 않았다. 술자리를 통해 인간관계를 넓힐 수 있다는 목적대신 술만 마실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내가 내 옆구리를 툭 치다


코로나는 사람 사이를 강제로 떼어놓았다. 그 기간 동안 술자리 횟수도 눈에 띄게 줄었다. 줄어든 횟수만큼 스트레스도 줄었다. 코로나는 술자리가 아니어도 관계를 이어갈 수 있다는 걸 알게 했다.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몰라도 나는 이게 편했다. 부르는 사람도 없고 불려 나가 어색해하며 자리를 지키는 경우도 줄어서 다행이었다. 그렇다고 술을 안 마신 건 아니었다. 주로 집에서 적은 양이어도 거의 매일 꾸준히 마셨던 것 같다. 많든 적든 술을 마시면 다음 날 일어나는 게 쉽지 않았다. 매일 4시 반에 알람이 울렸지만 술을 마신 날은 이불 밖으로 나오는 게 가볍지 않았다. 이런 날이 반복될수록 의문이 들었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술을 마셔야 하는지. 사람들과 어울리는 자리가 줄어든 이때 집에서 마시는 술도 줄이면 어떨까 싶었다.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줄이는 대신 끊는 걸 선택했고 단번에 실천으로 옮겼다. 나의 필요로 스스로 선택했다. 내가 내 옆구리를 툭 쳤다. 그게 시작이었다.   


부드러운 개입으로 달라지다


술을 끊고부터 새벽에 일어나는 게 수월했다. 알람이 울리거나 울리기도 전에 깨는 게 일상이다. 당연히 머리도 몸에도 별 영향이 없다. 매일 4~5시간 자면서도 내 나름 숙면을 취한다. 별다른 저항 없이 일어나는 시간이 일정해지면서 아침 루틴도 꾸준히 지키는 중이다. 5시면 일기를 쓰고, 출근하는 동안 책을 읽고, 출근해 6시부터 글을 쓰는 일상을 반복해 오고 있다. 그사이 모임에도 회사 회식에도 불려 갔었다. 술을 끊었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한두 번은 술을 권했지만, 이후에는 눈치 준다거나 거리를 두는 일은 없었다. 술자리가 이어지는 동안 억지로 끌려다니기보다 스스로 털고 일어날 줄도 알게 되었다. 술을 마시지 않으니 굳이 끝까지 함께할 필요 없다고 생각이 바뀌었다. 인간관계가 돈독해지는 데 2, 3차 술자리가 전부는 아니었다. 이런 나를 이해해주지 못한다면 애써 관계를 유지할 필요도 없을 테다. 한편으로 인간관계가 정리되는 효과도 있다. 술자리든 집에서 술을 마시든 대개 늦은 시간까지 먹었었다. 다음 날 숙취뿐 아니라 속도 더부룩했다. 당연히 살도 찌고 몸무게도 늘었다. 술을 안 마시니 속이 편한 건 물론이고 장도 건강해졌고 줄어든 몸무게를 꾸준히 유지 중이다. 다이어트와 건강을 챙기는 데 이만한 게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게 술을 입에 안 댄 지 2년이 넘었다.   


모든 선택은 자신을 위해서


앞으로도 술은 마시지 않을 것이다. 평생이라고 장담은 못 하겠다. 언젠가는 마시게 되겠지만. 그때 남 눈치 보며 억지로 마시는 게 아니라 내가 원해서 다시 마실 거다. 누가 시켜서 금주를 결심한 게 아니듯 다시 마시는 것 또한 스스로 결정할 것이다. 누구에게는 평생을 두고 시도하는 금주를 나는 단번에 시작했고 실천해 왔다. 그만큼 어렵게 시작한 것이니 오래오래 이어가고 싶다. 남은 평생 글 쓰는 삶을 살기로 마음먹었듯 술도 같은 기간 동안 입에 대지 않을 수 있길 바란다.      


글쓰기를 선택한 건 옳았다


글을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때 누구의 권유도 없었다. 글을 써야 하는 직업도 아니었다. 돈을 벌 목적으로 글쓰기를 배우지도 않았다. 오로지 내 선택이었다. 그 선택을 내리기까지 그때까지 읽은 책들이 내 옆구리를 뚝 쳤던 것 같다. 책을 읽으며 글을 써야 하는 의미와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의미와 이유를 좇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 쓰면 쓸수록 왜 써야 하는지 더 알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누가 시켰다면 이만큼 오래 이어오지 못했을 것 같다. 아마 그때 누군가의 권유로 마지못해 시작했다면 지금과 다른 길을 걸었을 것이다. 다행히 누구도 아닌 스스로 선택했고 그 선택은 여전히 옳았다. 물론 앞으로도 나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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