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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nabutomby Apr 23. 2020

재고 정리 보드 만들기

보드 연구자의 핸드메이드 파우더 스노우보드 제작기

Episode 3: 재고정리보드


보드를 만든답시고 주문한 에폭시, 유리섬유, 베이스가 조금씩 남았다. 좁디좁은 12평 투룸의 1/3평 남짓한 베란다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나가는 창고를 보면서 이걸 어떡하지.. 싶었다. 보다보니, 베이스도 있고, 제작에 실패한 4번 데크도 있고, 잘 하면 눈썰매 하나는 만들어서 조카(없다) 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럼 최대한 품을 덜들이고, 내가 안만들어볼 것 같은 세팅 값의 데크를 만들어보면 어떨까라고 계획을 세웠다.


언제나 그렇듯, 마음을 먹고 결제를 함으로 모든 것이 진행되기 마련이다. 이번에는 해외에서 물품을 결제하지 않았고, 되도록 있는 재료를 사용하고 생략가능한 것을 생략했다.


개인적으로 테크니컬 라이딩 쪽에는 취미가 없는 관계로 (겁이 많다. 속도 빠르고 경사가 세면 무섭다) 해머 데크를 별로 선호하는 취향은 아니었다. 그럼 사이드컷의 R값을 좀 크게 줘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해머 데크 같은 세팅 값을 가지지만 사실 파우더 보드. 라는 느낌으로 컨셉을 정했다.

이를 통해 나온 아웃라인은 대충 이런 정도였다. 사이드컷 10M에 154~5cm정도 되는 해머데크 느낌의 파우더 보드. 사이드컷의 R이 10M니까, 왠만하면 해머데크처럼 카빙할 수 있지않을까 하는 살짝의 기대도 있었다.


다음은 우드 코어를 선택하는 일이었는데, 몇번에 걸친 보드 제작 과정을 거치면서 나무에 유리섬유를 바르고, 에폭시를 흘려내고, 진공 펌프를 작업하는 일련의 과정이 너무나도 고통스럽고 유해함을 알게되었다. (사실 한번만 해도 알 수 있었지 않았을까...) 좀더 나은 설계 방식은 없을까? 모든 보드 제작 산업계가 나의 아이디어에 깜짝 놀라서 공장을 바꾸고, 에폭시와 유리섬유의 사용을 줄여서 인부들이 손가락 사이를 긁는 일을 줄이게 할 수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나무를 안쓰면 안되나.


라는 생각을 사실 제일 먼저 했고, 나무를 대체할 수 있는 재질에 대한 탐색을 꾸준히 진행했다. 사실 대체제는 꽤 있지만, 내가 살수 있고 내가 원하는 만치만 입금할 수 있는 가공성과 경제성이 좋은 재료는 딱히 없었다. 그중에 눈에 들어온 거은 PC. 정치적 올바름... 은 아니고 폴리 카보네이트로, 수지의 한종류인데, 전경 방패로 쓰이는 재질이다. 아크릴처럼 깨지지는 않으며, 강한 탄성을 갖고 있으며 CNC 가공이 가능하고, 가격이 비교적 저렴하다. 조금 더 리서치를 해보니 PC를 이용한 보드를 이미 업계에서 만든적이 있었는데, 그 형태와 성능이 매우 아쉬운 수준이었다.

투명한 보드를 만드는데 집중한듯 하다.

나의 계획은 1T 혹은 2T의 PC 판재를 CNC로 가공하여, 유리섬유로 접착하여 만들어보자 였다. 마치 등고선 처럼, 1층과 2층의 형태가 다르면, 뭔가 프로파일 가공을 한것같은 효과를 줄 수 있지않을까 했다.

이러한 느낌으로.


이런 설계를 몇번 해봤는데, 실제로 제작을 하는 과정에서의 무리수가 조금 보여서 과감히(?) 포기했다. 이번 제작의 포인트는 창고파먹기의 컨셉이기 때문에. (재료와 비용을 줄이고 스펙만 가져가자)


그래서 선택한 코어는 자작나무 합판이었다. 맨처음 만든 1번 보드도 자작나무 합판이었는데, 프로파일 가공을 잘못하여 (테일쪽에 너무 큰 단차를 주었다) 파손된 전례가 있었다. 다만 그 보드는 가벼웠고, 탄성도 매우 좋았다. 숏턴을 하면 보드가 날 반대쪽으로 던지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신나서 그랬을 수도 있지) 그 느낌을 잊지 못하고, 이번에도 자작나무 합판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자작나무 합판의 경우 6.5T라는 적당한 코어 두께를 가진 규격이 존재하기 때문에 매우 경제적인 소재이다. 합판은 350mm*1600mm를 주문했고 2만원 아래에서 배송비포함 결제가 가능하였다.  (집성목 판재에 비해서 1/3...?)



내가 쓴 1편을 살펴보면, 되도록이면 베이스 재질은 CNC를 맡기라고 하였다. 정확하게 수직으로 떨어지는 단면과 보드의 형태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라 하였는데, 사실 CNC를 맡기려면 회사 점심시간에 사당에 있는 CNC 업체까지 가야하고, 또 완성된걸 받으러 다녀와야한다. 기회비용이 꽤 되는 일이기 때문에 이번에는 과감히 삭제하였다.


이어지는 작업의 과정은 다음과 같다.

- A4프린터로 일러스트 도면을 여러장에 나눠 뽑아서 도안을 만든다음,

- 이걸 베이스에 붙이고 가위로 잘라내었다.

+아 여기에 엣지를 붙여야하는데 엣지를 다시 주문하긴 싫어서, 4번 보드 (제작실패한)를 뜯어내고 거기에 붙어있던 엣지를 회수 하였다. ( 말도안되게도 깔끔하게 회복이 가능했다) 이 과정에서 겸사겸사 바인딩 인서트 역시 회수 하였다.

- 그리고 이전처럼 엣지를 손으로 휘어서 보드에 접착하였다. 아무래도 단차가 있었지만 최대한 밀착해서 붙인다고 생각하고 작업하였다.

작업 중에는 크라임씬을 정주행 한다. 볼때마다 범인을 틀린다...

이제 합판 코어를 선택할 차례인데, 창고파먹기 컨셉에 걸맞게 사이드월을 날려버렸다. (가공하다 실수로 노즈쪽 코어를 날려먹어서 그부분은 어쩔 수 없이 남은 베이스 재료로 팁필머티리얼을 채워주었다.) 어차피 강설에서 타는 것도 아니고, 파우더에서만 타는 보드...라는게 컨셉인데, 우레탄 바니쉬 (니스)로 마감을 해주면 좀 버틸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따라서 합판코어도 정확한 재단 없이, 다만 인서트의 위치만 신경써서 체크해주었다. 그리고 평비트를 사용하는 트리머를 이용하여 단차 가공을 해주고, 인서트를 삽입하였다.

정말대충...


그리하여

베이스 (CNC 맡기고 남은것 이어붙이고 가위/칼로 자름)

엣지 (이전 망친보드에서 뜯어냄)

코어 (자작나무 합판 6T, 사이드월 없음) - 16500원

인서트 (이전 망친보드에서 뜯어냄)

유리섬유 남는것 이용

에폭시 및 부자재는 구입. -10만원 정도?

우레탄 바니쉬 가공 (니스) - 싸다.


결과적으로 나온 모습은

깎고, 조이고, 만들자!

이러하다. 원래는 PC 1T 판재를 맨 위 탑시트 처럼 적용시킬 생각이었는데, 샌딩이 부족하였는지 접착력이 떨어져서 그냥 제거해버렸다. 그래서 그래픽은 그냥 마카들고 의식의 흐름대로 슥슥 그려나갔다. 눈이 좀 왔으면 하는 마음에서 모델명은 snowmaker (rain maker 처럼) 로 정했다. 보드의 위아래 보이는 갈색 라인이 두께 가공을 하면서 나타난 반대방향 나무판이다.



만든 보드는 올시즌 찾은 최고의 스팟 ABDG에서 테스트해봤다. 이름에 걸맞게 전날 폭설이 와주어서 파우더보딩을 할 수 있었다. (3월 말이었는데도!) 사실 강설에서 좀 타볼까하는 생각도 있었는데 기회가 닿지않아...


역시나 합판을 사용한 코어는 가볍고 탄성이 좋았다. 테일을 좀 하드하게 만들고 싶어서 두께를 조금 두껍게 했는데 (보통 끝단을 2T주는데 2.5T정도 주었다) 테일이 조금 단단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다만 합판의 경우 안쪽에 사용된 판재 중 옹이가 있거나, 썩은 것이 섞여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그 퀄리티 보장이 어렵다. (라는게 해외의 지론이다) 우리나라 합판 업체들 중에서 조금 비싼(그래도 싸다) 제품을 구입하면 그런 모습이 좀 적을 것 같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결론 및 향후 연구..

베란다 창고에 남는 재료들을 가지고 잘 취합하여 보드를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기회에 확실히 알게된 포인트 중 하나는, 내가 선택했던 프로파일+ 철판을 이용한 몰드 제작 방식에는 문제점이 있다는 것이다. 디테일하게 설명하기는 애매한데, 진공 압력이 가해지는 방향이 단방향이기 때문에 철판이 미세하게 들리면서 보드의 베이스가 꿀렁임이 생기는 것이엇다. (지금까지는 에폭시가 새어들어가서 그렇게된줄 알았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 글을 쓰는 지금으로서는 조금 개선이 되었는데, 이는 다음번 제작기에서 다루겠다. (또있음?)


암튼. 코로나 빨리 끝나고,

러시아 캄차카반도 스키장 예약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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