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세 가지 종류, 즉 타인의 죽음, 사랑하는 이의 죽음, 나의 죽음 가운데 가장 고통스러운 죽음은 나의 죽음일 것이다. 죽음에 이를 때의 통증, 사후세계에 대한 공포, 남겨질 이들에 대한 후회와 걱정을 온전히 자기 자신이 다 받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때로는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 더 고통스러울 때도 있다. 사랑하는 이가 겪는 고통을 바라보기만 해야 한다는 사실이, 그들이 떠나고 나면 다시는 볼 수 없고 눈을 맞추며 이야기할 수도 없고 기쁜 일이 생겼을 때 함께 나눌 수도 없다는 사실이 슬프고 괴롭다.
감사하게도 내 가족들은 아직까지 살아 계시지만 부모님 두 분 모두 가볍지 않은 지병이 있다. 특히, 어머니는 10년 전쯤 갑상샘암 수술을 했다. 십몇 년 전에 어머니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들려오는 이명 탓에 힘들어했고 또 어지럼증과 불면증을 호소했다. 참으면 되겠지 하고는 차일피일 미루다가 증상이 심해져 결국은 병원에 가서 검사를 했다. 검사 후 갑상샘에 종양이 발견되었고 다시 조직검사를 하기로 했다. 결과를 기다리던 어머니는 혹시나 악성종양이 아닐까 근심하며 며칠 밤낮을 뜬눈으로 보냈고, 나는 그럴 일 없으니 아무 걱정 말라고 달래주었다. 실제로 그때 당시 나는 암이 나와 상관없는 다른 사람의 일이거나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소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진단 결과는 암이었다. 나의 위로는 무색해졌다. 수술 날을 잡고 한 달 정도 기다리며 많은 감정이 일어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일단은 믿겨지지 않았고, 평생 고생만 하신 어머니가 불쌍했고 슬펐다. 그리고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불안했다.
어머니는 수술 전날 입원해서 수술을 준비하며 기다렸다. 기다리는 내내 두려워했고 결국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수술 당일, 이동식 침대에 누운 어머니는 두려움과 피곤함이 섞인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수술실로 들어갔다. 수술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 병원 주차장으로 내려가 차 안에서 5시간 정도를 기다렸다. 눈을 감으니 내 기억 속에서 어머니와 함께한 여러 장면이 떠올랐다. 고등학교 때 수해를 입어 안방까지 물이 차서 물을 퍼내다가 발을 다치셨는데 주무실 때 발에 감아놓은 붕대에서 피가 조금씩 스며 나오던 모습, 다음 날이 내 생일이라고 밤늦게까지 부엌에서 음식을 준비하던 뒷모습, 신병훈련소 들어가는 날 슬픔을 한껏 입에 머금으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듯 손 흔들던 모습, 시장에 가면 식당 앞에 잠시 머물러 음식을 구경만 하다가 그냥 지나치던 모습……. 다행히도 수술은 잘 끝났지만 어머니는 한동안 항암치료를 받아야 했다. 그리고 수술 후 십 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수술 후유증으로 불면증과 공황장애를 앓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고맙게도 잘 살아가고 계시다. 그때의 일은 나에게 처음으로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실감하게 했다.
사랑하는 이를 잃게 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다. 즉 사고로 인한 갑작스러운 죽음이나, 암 같은 중병으로 인해 서서히 찾아오는 죽음이다. 그중에서 특히 사고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사별 후 트라우마 또는 PTSD라 불리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를 겪는다. ‘외상’이란 말은 상처를 입었다는 뜻인데, PTSD는 심리적으로 충격을 받은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상처를 입은 곳은 육체가 아니라 마음인 것이다.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상처는 가슴에도 새겨진다. 어떤 비극적인 사건이 가슴에 상처를 만들어내고 시간이 흘러 기억 속에서는 희미해져가도 아물지 않은 채 삶에 계속해서 영향을 준다. 심지어 극단적인 경우 사망한 자를 뒤따라가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 ‘외상 후 스트레스’란 말에 ‘장애(disorder)’가 붙어 있다는 것은 마음의 상처가 평범한 사람이 가진 스트레스 대응능력을 압도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마음도 타격을 받으면 큰 피멍이 들고 상흔을 입는 것이다.
사고로 인해 목숨을 잃는 대표적인 예는 교통사고다. 심리학과 교수 알로에노우(Alloenou)는 교통사고로 가족을 잃은 유족 100명을 대상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관해 조사했다. 조사 결과 약 20퍼센트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경험했으며 슬픔, 분노, 우울 등 부정적인 감정을 느꼈다. 또한 자신과 남은 가족의 안전에 대한 과도한 걱정으로 정상적인 삶을 유지하지 못했다.
또 다른 심리학자 헤기(Haegi)는 연구를 통해 사별을 경험한 사람들이 사고 후 시간이 지나도 상상 속에서 확연히 사고를 재경험(re-experiencing)했다고 말한다. 대개 과도한 긴장 상태가 유지되었고, 돌발적인 불안증, 악몽, 전화벨 소리가 들리는 환청 같은 증상을 경험했으며 다수가 자살 충동을 느꼈다. 또한 추적 조사 결과 사고 후 3년이 지난 뒤에도 증상이 지속되었다. 사별 경험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작동하며, 그 어떤 경험보다도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것이다.
내 주위에는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경험한 선배들이 많다. 열 살 어린 사촌동생도 내 선배다. 동생은 중학생 때 사고로 엄마를 잃었고, 20대 초반에 갑작스러운 병 때문에 아빠를 하늘로 보냈다. 한편으로는 부모님이 제공하는 그늘 없이, 꿋꿋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존경스럽고 다른 한편으로는 삶에서 가장 큰 숙제, 그 힘겨움을 겪어낸 것이 부럽다.
솔직히 말하면, 전공이 죽음학인 터라 여러 논문과 글을 통해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자주 생각하고 미리 대비하라고 이야기해왔지만, 부모님의 죽음을 생각하면 여전히 두렵다. 이른 새벽이나 밤늦게 핸드폰에 전화벨이 울리면 부모님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걱정된다.
그러나 나는, 아니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찾아올 죽음과, 그들이 죽은 이후의 삶을 생각해야 한다. 앞으로 일어날 상황을 미리 생각하는 것은 대비이며, 그런 대비는 사건이 일어난 뒤에 버텨낼 힘을 제공해줄 것이다. 사별 후에도 여전히 다른 가족과의 시간이, 나 자신과의 시간 남아 있다. 그런 시간을 트라우마로만 채우다 삶을 마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일본 조치대학교 교수인 데켄(Deeken)은 사별 후 남겨진 가족이 비탄(grief)을 겪는 과정을 제시했다. 비탄은 슬픔(悲)과 탄식(歎)의 준말로, 말 그대로 탄식하며 슬퍼하는 것을 뜻한다. 그 첫 단계는 ‘충격과 부정’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과 마주하면 충격에 의해 일시적으로 감각이 정상적으로 활동하지 못하고 비현실적이라 느낀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마음속으로 ‘이건 현실이 아니야’라고 말하면서 죽음을 감정적, 이성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상태다. 데켄은 이런 반응이 심리학적 용어로 ‘방어기제’라 불리는 현상이며, 충격을 조금이라도 완화하려는 생명의 본능적인 활동이라고 말한다.
다음으로는 ‘분노와 부당감’의 단계로 넘어간다. 충격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면 슬픔과 함께 부당하다는 감정과 분노가 일어난다. 특히 암처럼 서서히 죽어가는 경우보다는 갑작스러운 질병이나 사고사를 당한 유족에게서 이런 반응이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 예를 들면, ‘왜! 착하게 사신 부모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거지. 텔레비전에 나오는 저 많은 나쁜 놈들은 멀쩡히 살아 있는데’ ‘차라리 아빠를 데려갈 것이지 왜 엄마를 데려간 거지’ ‘나는 이렇게 괴로운데 저기 공원에 있는 다른 가족들은 참 잘들 노네’ ‘그러게 진작 병원에 가라니까! 건강관리하라고 얼마나 많이 말했는데’ 등의 감정이다.
다음 단계는 ‘죄의식’이다. 죄의식은 ‘살아 계실 때 잘해드렸어야 했는데……’ ‘자주 찾아뵐걸……’ ‘그때 내가 병원에 모시고 갔어야 했는데……’ ‘왜 내가 화낸 모습을 마지막 기억으로 남겨버렸을까’ 등으로 표현된다. 죄의식은 비탄 과정의 대표적인 반응으로서 강렬한 후회의 정서를 동반한다.
죄의식의 다음은 ‘공상과 환상’이다. 공상은 죽은 사람이 아직 살아 있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힌 상태다. 실제로 유족 중에는 죽은 아들의 방을 매일 청소하거나, 매 끼니 죽은 사람이 먹을 음식을 차려놓고 기다리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심지어 부엌에서 음식을 만드는 엄마나 거실에 앉아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아빠의 모습을 보는 등 망자의 환영을 보기도 한다. 의식적으로 죽음을 인정하지만 현실에서는 수용할 수 없는 강렬한 의식이 무의식적으로 보상을 받으려는 과정에서 공상과 환상의 반응이 나타난다.
비탄 과정이 후반부로 진행되면 ‘우울과 무기력증’의 단계에 진입한다. 장례식이 끝나고 묘지 안장이나 납골 등 사후 처리를 거의 마치면, 돌아가신 분의 유품을 정리한다. 유품을 정리하는 데 짧으면 한 달, 길면 1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대개 유품을 정리하면서 비로소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인정하기 시작한다. 늘 함께했던 거실, 부엌, 서재, 단골 식당, 찻집 등은 우울하고 적막한 공간으로 변해버리고 사람들은 슬픔을 넘어 우울함에 사로잡힌다. 심한 경우 우울증으로 진행되거나 대인기피증이 생기기도 한다. 데켄은 특히 이 단계에서 주위의 많은 도움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비탄의 마지막 단계는 ‘수용’, 즉 받아들임이다. 이 단계에 이르면 죽은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는 현실을 분명하게 응시하게 되며 상대의 죽음을 받아들이려는 노력이 시작된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인정하고 다시 삶을 시작하려 준비하는 것이다. 데켄은 사람들이 수용 단계에서 유머와 웃음을 되찾으며, 이런 유머와 웃음은 건강하고 정상적인 삶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한다.
물론, 사별을 경험한 모든 사람이 정확하게 위와 같은 과정을 순서대로 거치지는 않는다. 데켄 또한 “상실을 체험하는 사람이 이 모든 단계를 겪지는 않으며, 각 단계가 순서대로 진행되지도 않는다. 때로는 여러 단계가 중복되어 나타나기도 하며 대개 심리적으로 완전히 회복하기까지는 최소한 1년 정도의 기간이 필요하다”라고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미리 떠올리는 것, 그리고 그들의 죽음 이후를 생각해보는 것은 반드시 언젠가는 우리 모두가 겪을 일에 무너지지 않고 남은 가족과의 시간, 나 자신과의 시간을 꿋꿋하고 건강하게 채울 수 있는 힘을 준다. 하지만 무엇보다 좋은 것은 그들을 보내고 나서 채우는 시간이 아니라, 바로 지금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채우는 시간일 것이다. 사랑하는 이들을 보내고 나서 흘리는 백 일간의 눈물보다 그들과 함께 있을 때 퍼지는 찰나의 미소가 더 낫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