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형석 Nov 09. 2018

질문할 때, 생각할 때, 실행할 때

차안대 라는 것이 있다. 옆이나 뒤쪽을 볼 수 없도록 말의 눈 주위에 씌우는 기구다. 말은 원래 겁이 많고 주변의 상황에 잘 놀라는 성향을 지니는데, 차안대를 씌워놓으면 말은 그냥 앞만 보고 달려간다. 경주로에 들어선 말은 질문하거나 생각할 필요가 없다. 출발을 알리는 총성이 울리면 그냥 앞으로 달려나가면 된다.


그러나 사람은 말이 아니다.


1. Why를 모르면 질문을 하자.


업무가 주어졌을 때, 그 일을 왜 하는지 알지 못하는데 질문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그렇게 된 이유는 있다. 질문을 했을 때 냉랭한 반응에 기분이 상할 수도 있고, 물어봐도 답해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자기에게 업무를 준 매니저도 그 일을 왜 하는지 모르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그렇다고 질문을 하지 않을 것인가.


일의 목적을 이해하고 일을 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천지차이다. 자신이 하는 일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회사라는 거대한 톱니바퀴 안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하는지, 다른 사람들의 업무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동기부여, 업무의 효율성, 생각지 못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의 순간적인 대응력에 있어 엄청난 차이를 불러 일으킨다.


질문을 하려면 먼저 회사가 그러한 분위기를 만들어 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정말로 많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해보자. 회사가 그러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회사의 잘못이기 때문에 '나'는 그냥 업무의 목적을 모른 채로 일을 할 것인가. 그렇게 해도 직장에서 행복할 수 있는가.


직장은 행복을 찾는 곳이 아니잖아요.


아니, 깨어있는 시간의 절반 이상을 보내는 공간에서 그렇게 살아가도 괜찮은가. 


차안대를 씌웠을 때 오히려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도 많다. 이것은 회사의 잘못이고 '나'는 그냥 앞으로 달려나갈 뿐이라고 생각한다. 차안대를 벗고 질문을 해도 괜찮다고 하면 오히려 불안해한다. 회사에 문제아로 찍히기 때문도 아니다. 차안대를 벗으면 질문을 하지 않는 것이 온전히 자신의 선택에 달렸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게 되기 때문이다.    

  

모르면 질문을 하자. 모르면 질문을 하자. 모르면 질문을 하자.


2. 질문을 멈추고 생각을 하자.


이건 또 무슨 말이에요. 모르면 질문을 하라면서요.


질문의 중요성을 강조하면 정말로 모든 것을 묻는 사람들이 있다. 부산에 가라고 하면 왜 부산에 가는지, 어느 정도 예산을 써도 되는지, 기차를 타는 것이 좋은지 버스를 타는 것이 좋은지, 기차역에는 택시를 타고 가도 되는지, 중간에 점심비용은 어떻게 처리하면 되는지, 혹시 연착이 되면 어떻게 처리하면 되는지...


사람은 생각할 수 있다.


질문은 답을 찾는 과정이다. 모르는 것이 100가지가 있으면 100개의 질문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일을 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질문이 무엇인지, 무엇부터 물어봐야 하는지, 그리고 자신이 들은 답을 바탕으로 어떤 질문들을 생략할 수 있는지를 생각할 수 있다.


물론 처음부터 완벽할 순 없다. 혼자 끙끙대고 앓을 필요는 더더욱 없다. 모르는 것은 물어보고 답을 들으며 패턴을 찾으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자신의 매니저와 1개월이 지나도, 3개월이 지나도, 반년이 지나고 1년이 되도 그 패턴을 찾을 수 없다면, 무엇을 묻고 무엇을 묻지 않아도 될 지를 알 수 없다면 커다란 문제에 봉착한 것이다. 이럴 때는 매니저와 이야기를 해야 한다. 매니저가 왔다갔다 하는 것인지, 자신이 패턴을 잘못 파악하는 원인이 어디에서 발생하는지를 솔직하게 털어놓고 해결해야 한다. 


패턴파악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 있다. 그것은 바로 질문하기 전에 매니저가 어떻게 답할 지를 미리 예측해보는 것이다. 만약 예측률이 높다면 질문의 횟수를 줄이고, 예측률이 낮으면 자신을 돌아보면 된다.


패턴파악의 목적은 실패율을 0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실패를 하지 않으려면 정말로 모든 것을 물어봐야 한다. 실패에 따른 비용보다 커뮤니케이션 비용이 올라가면 업무는 마비된다. 결국 중요한 것은 무엇을 질문하고 무엇을 질문하지 않아도 되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이를 파악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생각'이다.


그리고 절대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질문을 해서는 안된다.


물론, 이미 답을 알고 있는 경우에도 질문을 해야할 때가 있다. 1) 샘플링 테스트를 할 때, 2) 정말로 중요한 업무일 때이다. 이런 경우는 괜찮다. 그러면 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질문하는 것은 안 좋을까.


그것은 자신이 담당하는 업무의 주체가 바로 자기자신이기 때문이다. '나'는 도구일 수 없다. '나'는 질문을 하고, 생각을 하고, 의미를 찾아간다.


3. 질문이나 생각없이 바로 실행해야 할 때는 언제인가?


크게 두 가지 경우를 둘 수 있다.


1) 위기상황

2) 매니저가 공유를 할 수 없는 상황(Confidential Issue)


가령 불이 나면 건물 밖으로 뛰어내려야 할 때가 있다. 연기가 나고 불길이 치솟는데 회의실에 모여 옥상으로 올라가는 것이 좋을 지, 계단을 내려가야 하는지, 밖으로 뛰어내려야 하는지 대책 회의를 할 수는 없다. 한 사람 한 사람 다 붙잡고 왜 그 결정이 확률이 높다고 생각하는지 설명할 시간도 없다.


불이 나면 누군가는 빠르게 판단하고 결정을 해야 한다. 비상 상황임을 전제로 업무를 지시했을 때는 질문이나 생각을 최소화하고 '선 실행 후 판단' 모드로 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Confidential 상황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Open을 지향하는 회사라 하더라도 그 순간에는 공개할 수 없는 정보가 있게 마련이다. 해당 업무에 관련된 제한된 사람들이 어떤 결정을 했고, Confidential 상황임을 선언했을 때는 역시 '선 실행 후 판단'으로 업무를 진행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다만, 1년 365일이 위기상황이고, 거의 모든 중요한 문제가 Confidential인 경우에는 이야기가 다르다. 이럴 때는 자신을 밝히고, 목소리를 내어 회사에 질의를 하고, 스스로 납득할 만큼 노력하고, 그럼에도 해결되지 않으면 새로운 길을 찾아나서면 된다.


질문할 때. 생각할 때. 실행할 때.


이것은 200쪽 짜리 가이드로도 해결할 수 없는 내용이다. 아무리 구체적으로 정의해도 예외는 발생하기 마련이고, 예외를 처리하기 위해 필요 이상으로 가이드가 길어지면 아무도 그 가이드를 읽지 않게 된다. 결국 센스의 문제이다. 개인 역량의 문제일 수도 있고, 다니고 있는 회사가 자신과 맞지 않아서 발생하는 이슈일 수도 있다. 그 중에 무엇인가 하는 것에 대한 답은 자신이 찾아야 한다.


가이드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내가 쓰고, 내가 읽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