옐로나이프와 오로라 헌팅
"오늘로 5일째인데 오로라는 첫날만 봤어요."
우리와 같은 숙소에 묵었던 한 친구가 해준 말이었다.
상대적으로 따뜻했던 옐로나이프의 날씨는 도시를 돌아다니거나 다른 액티비티를 즐기는 것에 있어서는 큰 행운이었지만, 날이 따뜻하면 구름이 두꺼워지고 이에 따라 오로라를 볼 수 있는 확률은 내려가게 된다.
우린 '헬로 오로라'라는 업체를 통해 낮에는 개썰매나 시티 투어 같은 활동을 즐기고 밤에는 오로라 헌팅을 하는 일정을 선택했다. 오로라 헌팅은 밤 10시부터 새벽 1시~2시까지 오로라가 자주 출몰하는 여러 스팟을 돌아다니며 진행된다. 아침부터 새벽까지 이어지는 강행군이었지만 이를 가능하게 했던 것은 누구나 한 번쯤은 마음 속에 품어 보았을 버킷리스트인 오로라를 보겠단 열정 때문이었다.
옐로나이프에서의 3박 4일 일정 중 밤 늦게 도착한 1박을 제외하면 우리에게 허락된 밤은 단 이틀이었다. 과연 옐로나이프의 날씨는 우리에게 오로라를 허락해줄까?
첫날, 저녁을 먹고 잠시 쉼을 가진 우리는 캐나다구스로 중무장을 한 뒤 헌팅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에는 우리 말고 다른 호텔에 머무는 한국인들이 꽤 있었다. 우리 모두 다른 표정으로 한 가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제발 오로라를 볼 수 있기를'
버스에 올라타자마자 헌팅 업체의 사장님은 주의해야할 점과 몸을 녹일 차를 먹을 수 있는 온수 포트를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셨고 와이프 분이 직접 구운 레몬 머핀과 메이플 쿠키를 나눠 주셨다.
어스름한 조명 때문에 어쩐지 푸른빛을 띠었던 버스 안의 풍경. 이동하면서 꾸벅꾸벅 졸던 중 보이던 밖의 풍경과 피곤함을 어느정도 환기시켜주었던 머핀과 쿠키들의 단 맛. 이러한 잔상들을 머릿속에 남기며 첫 번째 스팟에 도착했고 우린 기대감과 함께 버스에서 내려 무작정 하늘부터 올려다보았다.
"혹시 저 빛인가?"
주변에 빛도 없고 버스의 라이트도 모두 꺼놓은 상태인지라 공간은 그야말로 암흑. 그 와중에 강으로 추정되는 곳의 너머로 밝은 빛이 피어오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와 내 친구는 일단 휴대폰으로 사진부터 찍기 바빴고 다른 사람들도 연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업체 사장님은 그런 우리를 보더니 저 빛은 오로라가 아니라 도시의 불빛이라 말해주었다. 이 불빛이 간혹 지나가는 자동차들의 라이트와 만나 없어졌다가 다시 나타나며 파동을 일으키는데 그게 마치 오로라처럼 보인다는 것. 구름에 가려진 오로라라고 생각했던 우린 실망할 수 밖에 없었고 그곳에서 30분정도 더 머무르다 다른 장소로 가기 위해 버스에 올라탔다.
이후로 장소를 세 번이나 옮기며 오로라를 찾아다녔지만 날씨는 우리에게 오로라를 허락해주지 않았다.
만약 조금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헌팅 시간을 늘려서라도 찾아다니지만 오늘은 확률이 너무 낮다는 사장님의 말에 우리는 실망한 마음을 애써 다독이며 숙소로 돌아가야했다.
다음 날, 두번 째이자 오로라 헌팅 마지막 밤이 찾아왔다.
버스에 올라타자 사장님은 다행히 구름이 어제보다는 얇다는 희망적인 말을 해주셨다. 그리고 내 마음도 어제와는 다르게 이상한 쪽으로 희망적이었는데, 이상한 방향이라는 건 바로 오로라를 보지 못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오로라는 보게 된다면 더할나위 없겠지만 이미 나는 옐로나이프에서의 모든 것에 만족을 하고 있는 상태였다. 오로라를 보기 위해 버스에 몸을 실은 지금 이순간마저도 마냥 좋았다. 태어나 또 언제 캐나다의 시골 마을의 밤거리를 차로 달려보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자연의 한복판에 덩그러니 놓여보겠냔 말이다. 그리고 이상하게 지금이 아니어도 다음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언제가 될지, 어디가 될진 모르겠지만 그 언젠가엔 오로라를 볼 수 있을 것만 같은 근거 없는 자신감.
"어? 오로라다!"
두 번째인가 세 번째인가 장소에 도착했을 때 사장님이 하늘을 가르켰다.
두꺼운 구름 너머로 초록색 넓은 길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내가 상상하고 우리가 매체에서 보던, 휘황찬란하게 파도치는 그런 오로라는 아니었지만 분명 검은 하늘엔 태어나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초록색의 무언가가 거대하게 펼쳐져 있었다. 빛이 너무 약했던지라 오로라를 보았다 보다는, 내가 지금 오로라와 함께 있구나 정도의 느낌이었지만 내 머리 위에 오로라가 펼쳐졌다는 것은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어쩌면 우리가 들인 돈과 시간에 비해서는 초라하기만한 빛이었지만 겨우 이정도에도 나는 충분히 상기되었고 웃었다. 그래, 이정도면 되었다. 도전을 했다는 것 자체가 만족스러웠다.
그래서 우리는 오로라는 본 것일까 아닐까?
오로라 여행을 다녀왔다고 하면 백이면 백, 오로라 봤어?를 묻는다.
봤다고 하기엔 완벽하지 않았고, 못 봤다고 하기엔 그날 내 머리 위에 있는 건 분명 오로라였다. 이 애매함을 표현할 길이 없어 대답을 애매하게 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완벽한 대답을 찾지 못했다. 그랬기에 다시 꿈을 꾼다. 언젠가는 '어어, 오로라 봤어, 진짜 엄청났다니까?'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이렇게 우리의 옐로나이프 일정은 끝이났다.
눈을 돌리면 보이는 건 하얀 눈 뿐이고 대형 마트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은 딱 하나. 반나절이면 다운 타운과 올드 타운을 모두 둘러볼 수 있고, 이틀이면 지도 없이도 생활할 수 있을 것 같은, 누군가에게는 초라하고 지루한 마을일지도 모르겠지만 이 모든 지루함과 작음은 완벽하게 내 취향이었다. 하지만 우린 여행객이었고 다음 일정을 위해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다시 짐을 싸야했다. 이제는 정겹게 느껴지는 옐로나이프의 아담한 공항에 도착해 체크인을 마친 뒤 커피를 주문하고 테이블에 앉으려면 시점이었다.
"뭐야. 설마 정전?"
공항의 모든 불이 꺼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