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 이민국에서의 기억

저 워홀 비자 좀 주세요

by 홍세구


앞서 말했듯 이번 캐나다 여행의 가장 큰 목적은 워홀 비자를 오픈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비자 최합을 위한 약 3개월에서 4개월 동안 한국에서의 준비가 필요하고, 최종 합격 서류를 지참하고 캐나다 입국 시에 공항 이민국에서 승인을 해줘야 한다.

또한 2년이라는 기간이 보장되는 해외 보험도 필요하다.


원래 캐나다 워홀 비자는 1년짜리인데, 2024년부터 2년으로 늘어놨다.

이 때문에 보장 기간 1년의 해외 보험을 갖고 가면 1년짜리 비자 밖엔 승인되지 않는다.

초기에는 2년짜리 해외 보험 자체가 없었기에 비자 기간에 대한 이러저러한 문제들이 발생했는데 이제는 2년을 보장하는 보험사가 생기면서 이러한 문제는 거의 없어지게 되었다.


비자 승인을 받았다는 후기들을 보면 최종 합격 서류나 보험 서류 말고도 통장 잔고나 체류 장소에 대한 서류까지 요구하고 질문도 생각보다 까다로웠다는 경우가 더러 보였다. 이와 반대로 별다른 서류 확인도 없이 바로 비자가 발급되었다는 경우도 꽤 되었다. 고민을 하던 나는 일단 최종 합격 서류와 2년짜리 해외 보험 서류만 챙기기로 했다.


'이후는 운에 맡기기로 하자고.'


그렇게 걱정과 함께 도착한 밴쿠버 공항.

크리스마스였기에 공항은 한산했고 직원들의 안내에 따라 이민국으로 곧장 향했다. 사실 직원들의 말을 잘 못 알아들어서 사람들이 많이 향하는 방향으로 갔더니 이민국이 나왔다. 나와 같이 비자를 받기 위한 외국인들이 꽤 많이 보였고 그중의 대다수는 인도인들이었다.

이민국으로 들어가니 사람들이 대기석에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이민국 직원에게 말을 걸어보고 싶었지만 영어 실력 이슈로 인해 나 역시 얌전히 앉아 기다리는 것을 선택했다.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되는 거지...

혼자 온 여행이 아니었기에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친구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건 한국인 여자 두 명. 함께 워킹홀리데이를 온 듯 보였다. 일전 일본에 여행을 갔을 때도 생각했지만 한국인은 굳이 한국말을 쓰고 있지 않아도 한국인이라는 게 티가 난다. 난 자신감 있게 한국어로 그들에게 말을 걸었고 예상대로 그들은 한국 사람이었다.


"얼마나 기다려야 되는지 아세요?"

"저희도 잘 모르겠어요. 앉아서 기다리라고 해서 기다리고 있어요."


내 기다림은 슬금슬금 나타난 직원이 미리 받은 서류를 보며 한 명씩 이름을 호명하기 시작하면서 끝이 났다. 막상 이름이 불리고 심사를 받을 거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얼마나 뛰던지. 나는 워홀 카페에서 본 예상 질문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며 내 순서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드디어 불리게 된 내 이름.

제발 쉬운 질문 해라. 쉬운 질문.


"너 생일이 언제야?"


응?

너무 쉬운 질문이었다.

그런데 나는 이 쉬운 질문을 처음엔 알아듣지 못했다.

내가 예상했던 질문들은 내가 캐나다에 입국한 이유라는지, 워홀을 온 목적이라든지, 앞으로 캐나다에서 어떤 일을 한 것인지, 어디서 지낼 것인지 등등의 것이었다.

때문에 생일 같은 기본정보를 확인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내가 못 알아듣자 직원은 다시 한번 물어왔고 그제야 정신을 차린 나는 대답했다.


"좋아. 이거 갖고 가."


직원은 내게 2026년 12월 24일까지인 비자 서류 한 장을 건네주었고 심사는 그렇게 끝이 났다. 생일 하나 물어보고 끝나는 심사라니... 이거 크리스마스 선물인 건가? 비자를 무사히 받았다는 기쁨에 취한 나는 얼른 친구에게로 가고 싶은 마음뿐이었고, 때문에 직원이 다시 나를 부르고 있다는 것은 알아채지 못했다.

내 차례 다음으로 심사를 받으러 온 사람이 나를 다시 한번 불러 세우고 나서야 나는 내가 뭔가 실수를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뭐지?

직원은 내게 계속해서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짧은 영어 때문에 계속 알아듣지 못했고 직원이 손으로 내 휴대폰을 들어 올려 보여주고 나서야 내가 휴대폰을 놓고 가려고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너무 어이없어서 웃음이 나기 시작했고, 공간을 벗어날 생각밖에 없는 내가 웃기는지 직원과 나를 지켜보고 있던 외국인들도 웃음을 터트렸다.

딱딱하게 굳어있던 공간이 순간 부드러워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든 순간.

이 기억 때문인지 밴쿠버 공항의 이민국의 이미지는 꽤 좋게 남아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