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하지 않는 삶은 기만이다.
사랑에도, 일에도, 돌이켜보면 난 언제나 겁쟁이였던 것 같다.
두 우주가 만나 서로의 시공간을 넘나들며 기꺼이 내 세상의 질서를 수정하는 것이 사랑이라면, 나는 늘 내 세상이 깨지거나 흐트러질까 봐 두려워했다. 그래서 다른 우주가 내게 가까이 다가와 그림자를 드리울 때, 그 그림자가 더 커지기 전에 발을 빼고 싶어 했다. 내게 다른 세상의 그림자를 드리우지 말라고, 내 세상의 평화와 안정을 흔들지 말라고 밀쳐냈다. 사랑에 있어서 나는 그렇게 자폐를 자처했다.
일은 달랐다. 도전하고 성취하고 인정받고. 누구에게도 지고 싶지 않은 승부욕이 가득했고,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 타협하지 않는 끈기와 열정이 있었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했다. 일을 시작한 지 십수 년이 되어 가는 요즘, 과연 나는 정말 그렇게 열정적인 사람이었을까 의심이 든다. 어쩌면 나는 너무나 영악하게도 내가 잘하는 것만 골라서 한 것은 아니었을까. 실패하지 않을 만큼만 도전했던 건 아니었을까. 언제든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남겨놓고 그 희망을 담보로 내 성공의 역사와 자기만족을 연장해 왔던 것은 아니었을까.
사람들은 외관을 더 이쁘고 멋지게 만들기 위해 화장을 하고 겉모습을 꾸민다. 하지만 사람들이 꾸미는 것은 겉모습뿐이 아니다. 우리는 마음에도 똑같이 화장을 하고 그럴듯하게 꾸며 실제 모습을 감춘다. 누구든 부족하다 느끼는 건 감추고 싶은 게 인간의 본능이니까. 어쩌면 나는 늘 마음을 치장하기에 바빴던 것 같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일에 있어서도. 나의 부족함, 수치심, 실패의 가능성을 마주할까 봐 무의식적으로 집어 먹은 겁에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뽀얀 분을 덧칠하기 바빴다. 내가 아직 이루지 못한 무언가는 ‘아직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이유는 그중에서도 가장 그럴듯했다.
덕분에 크게 모나지 않은 관계를 유지하며 크게 어렵지 않은 삶을 살고 있지만, 내 세상의 일부를 타인에게 기꺼이 양보하고 공유하는 데는 소질이 없고, 가슴 뛰는 열정과 꿈은 사라진 듯한, 늘 마음 한구석 어딘가가 채워지지 않는 삶을 살고 있는 느낌이다. 결국 사랑이든 일이든 기꺼이 나를 던지는 용기가 부족해서다. 잘하든 못하든 나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두려움도 당당히 마주하기를 선택하며 그 선택에 책임지는 용기.
용기(勇氣) 있는 사람은 인생을 담는 용기(容器)도 크다. 그 크기만큼 더 많고 다양한 인생의 경험이 담긴다. 내 인생을 담은 용기는 어느 정도의 크기일까. 여태껏 그 안에 담긴 것들은 무엇일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선택하지 않는 삶은 기만이고 위선이다. 내 삶을 더 큰 그릇에 담아 후회 없이 충만한 삶을 살고 싶다면, 선택의 순간을 맞닥뜨렸을 때 내 안에서 일어나는 마음의 작용이 편리한 자기기만은 아닌지, 듣기 좋은 합리화는 아닌지, 마음의 민낯을 드러내는 용기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