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걸로 절 알긴 어려울텐데
"무슨 일 하세요?"
사람들을 처음 만나면 으례 받는 질문이다. 항상 나는 이 질문이 이상하다고 여겼었다. 왜 묻는 질문인지 알 수 없는 질문이랄까...
직업에 대한 질문 뿐만 아니다. 통상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나면
"어디 사세요?"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와 같은 질문도 난감하기 그지 없다고 느꼈다.
'도대체 나에 대해서 뭘 알고 싶은 거지?'
'이걸로 날 알 수는 있는 거야?'
'진짜 날 알고 싶은 거긴 해?'
오히려 이런 피상적인 질문에 반발도 느꼈었다.
특히 몇 년 간의 외국 생활 후에 맞닥드린 한국 문화는 이상하고도 신선했다. 나이는 왜 묻는 건지... 오랜 시간을 함께 했어도 본인에 대한 신상정보를 모르는 경우가 다반사인 다른 문화와는 다르게 나이, 직업, 거주지, 부모의 직업 등의 질문은 참 낯설었다. (아랍권 문화는 더불어 결혼과 자녀 여부도 묻는 경우도 있더라.. 그것도 방금 봤는데....)
직업에 대한 질문은 사실 어느 대륙에서나 쉽게 나오는 질문이다. 인사치례로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내가 생각할 때 직업을 묻는 가장 기본적인 이유는 직업이 그 사람을 대변 해 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 아닌가싶다.
그렇지만 특히나 직업에 대한 질문이 어려웠던 건 주로 나는 1) 여러 일을 하고 있었거나 2) 나를 설명하기에는 복잡한 직업을 가지고 있었고 (특히나 한 일을 관두고 다른 일을 앞둔 경우나 분야를 완전 바꿔서 일을 하는 경우에는 더더욱!) 3) 말해준다고 해서 상대가 모를 일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 번은 직업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걸 대답하려면 긴 인생 얘기를 해야하는데 시간이 되냐는 질문으로 맞아 친 적도 있었고 "Well, it's not easy to answer. (음, 대답하기 어려운데)" 하며 어물쩍 넘어갔던 적도 있었다.
직업에 대한 질문에 특히나 철학적인 (그리고 삐뚤어진? 혹은 예민한) 태도를 보였던 이유는 과거의 내 생각 때문이다. 의외로 예전의 나에게 직업은 내 존재 이유와도 같은 것이었다. 내가 좋아하고 내 삶의 철학과 맞는 것을 직업으로 삼아야 한다는 생각에 직업 자체가 내 '삶'이 되어 살았던 적도 있었다. 그 때는 공과 사가 없었던 것 같았다. 일이 잘 풀리면 기뻤고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세상 만사가 어렵게 느껴졌다.
내려 놓기를 한 지금도 내가 좋아하고 내 삶의 철학과 맞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있다. 그렇지만 직업이 '나' 자신은 아니라는 걸 안다. 또 직업과 소속이 자주 변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런 종류의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직업과 내 소속이 내가 될 수 없다는 것도 안다.
'Eat Pray Love' 의 저자, Elizabeth Gilbert에 따르면 직업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 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나의 직업이 투자자지만 나는 화초 가꾸기를 좋아하는 사람일 수도 있고 웨이터지만 글쓰기를 소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직업'이 그 사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까? 물론 처음 만난 상대에게 질문하고 공통의 관심사를 찾는 과정은 이해한다. 그치만 나이, 거주지, 직업과 같은 피상적인 질문 말고 좀 더 딥한 질문은 어떨까?
언젠가 친구가 들고 온 틴더 데이트 참신한 질문 목록이 생각난다.
'제일 좋아하는 간식이 뭔가요?' ‘냉장고에 뭐가 있어요?’ ‘불이 났다면 어떤 연예인부터 구할거에요?’ ‘삶에서 가장 소중한 5가지는 무엇인가요?’
이런 질문을 받으면 질문자에 대한 기억이 인상적으로 남을 것 같다.
단순한 인사 치례일 수도 있는 질문에 철학적이고 반항적인 사색
당신을 알고 싶은 제가 질문합니다.
"앞으로 딱 10분동안 당신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집니다.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그리고 실제 해보는 건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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