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기회에 미국 생활을 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산 기간이 압도적으로 많기에 몸과 마음 모두 전형적인 한국인이다. 따라서 미국 생활이 신기하기도 낯설기도 하다. 그 와중에 나를 흔드는 미국인의 말들이 있었다. 이 공간을 통해 몇 가지 공유해보고자 한다. (작가 주)
첫째 아이의 친구 생일파티에 갔을 때의 일이다. 두 돌 무렵 조그만 남자아이가 그 집 잔디밭에서 놀고 있었다. 아마도 오빠나 누나를 따라온 듯했다. 예쁘네 하면서 보고 있는데 근처에 아이 부모가 안보였다. 너무 어린데 부모가 케어 안 하나, 하는 생각이 들 찰나에 엄마가 첫째 딸아이와 함께 나타났다. 조그만 남자아이가 조금 큰 장난감 자동차를 엉금엉금 오르려는 순간이었다. 첫째 딸아이가 안돼, 소리를 지르며 아이에게 달려들었다. 그 순간 엄마가 말했다.
"그대로 두어라 Let him be"
보고 있던 나도, 옆에 있던 아내도 모두 속으로는 엥, 했지만 굳이 내색은 하지 않았다.
첫째 딸아이는 엄마 말에 따라 그대로 두었고, 아이는 본인 몸보다 큰 장난감 자동차에 성공적으로 올라섰다. 어쩌면 그 아이에게 있어 인생 첫 번째 등정 성공이었을 것이다. 저 조그만 몸에서 느끼는 성취감은 얼마나 컸을까.
물론 아이가 바닥에 떨어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풀밭이어서 크게 다치지는 않았겠지만 그래도 상처는 충분히 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부모는 아이를 그냥 두었다. 그리고 그 순간 아이는 인생 최고의 성취를 얻을 수 있었다. (비슷한 사례글)
이런 사례는 비단 노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첫째 아이 학교에 가보면 이상하게 철에 안 맞는 옷을 입고 다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초여름에 두꺼운 외투를 입고 오거나 초겨울에 반팔이나 반바지를 입고 오는 경우 말이다. 처음에는 저 아이 부모는 무슨 생각으로 저렇게 입혀 보내는 거지, 라며 비난 아닌 비난을 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는 첫째 아이 친구 부모를 통해 미국 아이들이 왜 철없는 옷을 입는지 알게 되었다. 그건 바로 아이들이 스스로 입을 옷을 결정해서 입고 오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심지어 철 안 맞는 옷을 입어도, 그 부모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다. 만약 손윗 형제가 참견하려고 하면 그때도 같은 대답을 한다고 한다.
"그대로 두어라 Let her be"
철없는 옷을 입어봐야 본인 스스로 철없음을 깨닫게 되어 다음에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신발 양쪽을 바꿔 신어도 그냥 두고, 학교 준비물을 책상에 두고 가도 그냥 둔다고 했다. 결국 결정은 본인 스스로 하는 것이고, 부모는 도움을 요청했을 때 도와주는 존재에 머무는 것이었다.
이런 이야기들은 우리 부부에게 항상 많은 생각을 하도록 만든다. 우리가 아이를 마치 우리의 소유물처럼 생각하지는 않았는지, 그 결과 스스로 생각하지도 결정하지도 못하는 아이로 만든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 말이다.
그래서 요즘 들어 가끔씩 첫째 아이에게 옷을 스스로 고르게 하기도 하며, 둘째 아이가 조금 위험한 놀이를 하려고 해도 그냥 두기도 한다. 그 안에서 아이가 조금이라도 성취감을 얻게 하고 싶어서 이다.
당연히, 아이들은 부모의 소유가 아니다. 스스로가 적극적으로 결정하는 고귀한 인격체들이다. "그대로 두어라 Let her/him be" 라는 말이 그걸 가능하게 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