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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서민서패밀리 Jul 06. 2017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

언어에 담긴 타인의 의도를 경계하라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


우리는 매일 언어를 사용한다. 누군가를 만나면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하고, 무언가 감사한 상황에 처하면 "고맙습니다"라고 사례를 한다. 마치 본능적으로 이루어지는 과정 같지만, 사실 감탄사, 단순 반응이 아닌 이상 뇌를 통한 사고 과정이 필수적으로 수반된다.


물론 모국어 사용의 경우 빠르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사고 과정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말한다고 가정한다면 언어가 사고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체감하게 된다.


우연한 기회에 미국인을 만나게 되면 "Hi"라고 할지 "Hello"라고 할지 망설이게 되며, 감사한 상황에서도 "Thanks"라고 할지 "Thank you"라고 할지 고민하게 된다. 더 복잡한 말들은 아예 생각이 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 짧은 상황에서도 무수히 많은 생각을 하게 됨을 느낄 것이다.


언어에 사고 과정이 수반된다면 그 관계성은 어떻게 맺어질까. 인과관계일까, 단순 선후관계일까. 혹은 언어가 사고를 제한할까, 아님 확장할까.


물론 이러한 논의는 오래전부터 존재하였다. 


'사고는 언어를 통해 이루어진다'거나 '언어는 사고의 결과이다' 정도의 논의는 기본적으로 많이 이루어졌으며, '언어가 사고를 확장한다'거나 '사고가 언어를 제한한다' 등의 논의는 심화적으로 이루어졌다. 


그중 가장 논란이 많이 되었던 것이 '언어가 사고를 지배(제한)한다'였다. 이는 주로 언어학과 인지과학에서 많이 다루었던 문제였다. 대표적인 것이 무지개 색깔 논쟁이다.



무지개는 몇 가지 색으로 구성되는가


무지개는 '빨주노초파남보'의 일곱 가지 색으로 구성된다고 널리 알려져 있다. 영미, 아시아 문화권에서는 꽤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생각이다. 아래는 영미권 언어교육 프로그램에서 인용한 내용이다.


The picture from mocomi.com


Rainbow colours – A rainbow is not just made up of the seven colors of VIBGYOR, but also many other colors that are not visible to the naked eye.

무지개 색깔 - 무지개는 7가지 색(VIBGYOR : 빨주노초파남보)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다른 색깔들이 우리 육안으로는 안 보일 뿐이다.  

[출처] http://mocomi.com/seven-colours-of-the-rainbow/


강의에서는 (무지개가 7가지 이상의 색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우리 육안으로 보이는 무지개의 색은 "7가지"라고 단정해서 말하고 있다. 아래 무지개 사진을 보자. 딱 잘라 7가지 색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The photo by Waikiki Natatorium (flickr)


사실 위대한 과학자 아이작 뉴튼(Isaac Newton)의 초기 연구에서는 (그의 눈이 색을 잘 구별해내지 못하여) 무지개를 5가지 색(빨노초파보)으로 구분하기도 했었다. (물론 그 후에 주황색과 남색을 추가하여 7가지 색으로 표시하였지만) 보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미국의 유명 SF작가인 아이작 아시모브(Isaac Asimov) 역시 "무지개 색 중 파란색과 보라색 사이에 남색이 놓여있다는 것은 관습적이며, 내 눈에는 남색이 아니라 단지 진한 푸른색처럼 보인다"라고 반대의견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런 반론들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무지개가 7가지 색깔로 구성된다고 생각한다. '일곱 색깔 무지개'에 해당하는 언어(단어)가 존재하며 그것을 지속적으로 학습했기 때문이다.



동물울음소리는 전 세계가 동일한가


또 다른 대표적인 사례가 동물울음소리이다. 아래 그림은 각 나라별 강아지와 수탉의 울음소리의 차이이다.





한국인은 강아지는 멍멍, 수탉은 꼬끼오라고 운다고 배웠고 실제로 그렇게 듣고 있. 하지만 일본인은 강아지는 완완, 수탉은 꼬기꼬꼬라고 운다고 배웠으며 실제로 그렇게 생각한다. 모국어의 범위 안에서 자연세계를 다르게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언어가 시각(무지개 색깔)에 이어 청각(동물울음소리)까지 지배하는 것이다.



사피르-워프 명제


미국 언어학자 에드워드 사피어(Edward Sapir)는 여기에 주목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가 표현하는 방식대로 생각하고 있었다. 동일한 사물을 보는 방식이 언어에 의해 차별성을 가지고 있었다.


사피어의 제자인 밴자민 워프(Benjamin L. Whorf)는 이를 더 발전시켜, 사피르-워프 명제(Sapir-Whorf Hypothesis)로 불리는 다음의 가설을 완성하였다.


“우리는 모국어의 범위 안에서 자연세계를 판단한다”


사피르와 워프는 여러 사례를 근거로 모국어에 의해 사고의 범위가 정해진다고 보았다. 그 결과 하나의 언어 내에서 이루어지는 개인의 특정 생각을 다른 언어에 사는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 발생한다고 보았다. 사람들은 자신의 언어에 얽매인 채 세계를 경험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가설에 대해 학계 모두가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언어학과 인지과학에서는 여전히 이 명제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서 살펴본 것처럼 여전히 많은 사례들이 사피르-워프 명제를 지지하고 있다.



코끼리는 생각하지마


여기서 생각나는 또 다른 한 사람이 있다. 인지언어학의 창시자인 조지 레이코프(George Lakoff)이다. 그는 <코끼리는 생각하지마>라는 책에서 정치적 언어가 어떻게 사람의 생각(프레임)까지 통제하는지를 보여줬다. 그가 책에서 주장한 내용은 미국 공화당(우파) 정치인들이 평범한 미국인들을 언어를 통해 선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책에 나온 짤막한 예시이다.


짧은꼬리원숭이가 어떤 물체를 집으면 원숭이의 복층 전운동 피질에서 특정한 뉴런 집단이 활성화된다. 그런데 원숭이에게 그 물체를 집지 말도록 훈련시켰을 때에도 물체를 집을 때 사용되는 바로 그 뉴런의 일부분은 여전히 활성화된다. 즉 물체를 집지 않으려면 물체를 집는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이 사례의 교훈은 간단하다. 내가 상대편의 언어를 사용해서 상대를 (네거티브) 공격하더라도 이를 듣는 제3자는 상대편의 언어가 활성화되고 강해진다는 것이다. 리처드 닉슨의 사례도 있다.


워터게이트 사건의 주범인 닉슨은 TV연설에 나와 이렇게 말했다. "저는 사기꾼이 아닙니다." 그 순간 모두가 그를 사기꾼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닉슨의 상대편의 언어인 '사기꾼'을 사용하는 바람에 그 사고(프레임)에 갇히게 된 것이다. 결국 상대방의 언어만 살아남고 나의 언어(변명)는 약해졌다. 



타인의 언어에 대한 비판적 태도가 필요하다


언어가 완벽히 사고를 지배하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높은 개연성을 가지고 있음은 앞선 여러 사례로 볼 때 분명하다. 우리는 매일 다양한 언어(단어)를 시각적 청각적으로 접하고 있으며 신문, 방송, 뉴스, SNS 등등 그 출처도 다양하다. 그 안에서 듣거나 보게 되는 것은 타인의 언어이다. TV에서 라디오에서 혹은 책과 신문에서 타인은 언제나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다. 화면에 나오는 순간, 인쇄되어 읽히는 순간 신뢰성이 높아진다고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그 부분을 경계해야 한다. 방송했으니 출판되었으니 믿을 만하다고 쉽게 넘어가서는 안된다. 모든 말과 글에는 화자나 작가의 의도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해당 언어를 통해 상대방의 사고(프레임)를 변동시키려는 노력을 발견하게 될 지도 모른다.


따라서 비판적 텍스트 읽기가 매우 중요하다. 미디어의 영향력이 점차 커지고 그 파급력도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 분야에서 '가짜뉴스'가 많이 등장하고 있다. 있는 그대로가 아닌 그 안에 숨은 의도를 경계하며 읽는 연습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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