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서비스 이후 서비스 패러다임 발전과정
어렸을 적 동네를 지나다 보면 마주하게 되는 간판이 있었다.
애프터서비스
사실 무슨 뜻인지도 몰랐다. 그저 영어구나 하는 정도였다. 창문에 라디오, TV를 진열해 놓은 것으로 보아 그저 가전제품을 파는 가게라고 생각했다.
학교에 들어가고 영어 단어를 조금 외우기 시작할 무렵에야 그 뜻을 어슴프레 알 수 있게 되었다. After Service, "~이후에 하는 용역", 정확하게는 "상품을 팔고 난 이후에 제공되는 수리 등의 용역"이 될 것이다. (물론 미국식 영어는 아니다)
당시가 90년대 초반이었으니 지금으로부터 25년도 더 지난 일이다. 당시 애프터서비스는 삼성, 금성, 대우 등 대기업에서나 사용하던 개념이었다. 저렴한 중소기업 제품에까지 요구하기에는 무리라는 것이 사람들의 대체적인 생각이었다. '애프터서비스가 필요하면 대기업 제품을 사야지' 정도가 당시의 민심일 것이다.
물론 사람들의 요구가 늘어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고객들은 모든 제품에 애프터서비스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판매는 곧 A/S>라는 등식이 시장에 성립되기 시작한 것이다. 중소기업도 예외일 수 없었다. 애프터서비스 패러다임이 확고하게 시장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90년대 중반이었다.
애프터서비스가 일반화되자 기업들의 고민은 깊어졌다. 과거에는 애프터서비스만으로도 차별성을 가질 수 있었지만 이제 더 이상 그것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통한 차별화된 서비스가 필요해진 것이다.
2000년 이후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등장 역시 새로운 변화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서비스 형태가 속속 등장하였다. 대표적인 것이 온디맨드였다.
온디맨드 On-Demand
보통 "주문형 서비스"로 번역되고 있다. 즉시성을 그 특징으로 한다. 애프터서비스가 판매 이후 서비스 행위를 말한다면 온디맨드는 판매와 서비스가 일치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이용자가 요구하면 그에 따라 상품이나 서비스가 즉시 제공되는 것이다.
수요-공급 측면에서 본다면, 애프터서비스가 공급 우위라면 온디맨드는 수요 우위이다. 애프터서비스에서는 수요자인 고객이 제외된 채 공급이 이루어지지만, 온디맨드는 수요자가 선택하지 않으면 공급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선후 관계로 본다면, 과거 애프터서비스가 문제에 대한 사후 처방이었다면 온디맨드는 같이 고민해서 문제를 발생시키지 않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합의가 전제된 온디맨드는 문제 발생과 같은 사회비용을 애초부터 제거시킬 수 있다.
온디맨드는 인터넷-모바일 환경 하에서 무한한 확장성을 보여주었다. 우버 Uber는 이용자가 요구하면 어디든 즉시 자동차를 보내주었고, 넷플릭스 NetFlix 역시 원하는 비디오를 언제든 송출해주었다.
한국 역시 온디맨드 흐름을 놓치지 않았다. 배달의 민족은 이용자와 식당을 연결시켜 주어 언제든 주문하면 그 즉시 음식을 보내주었고, 카카오 택시는 어디서든 시간에 맞춰 택시를 보내주었다. (이외에도 헤어, 대리운전, 이사, 부동산 등등 오프라인의 모든 생활영역에서 온디맨드는 이루어지고 있다)
길 위에 있던, 집 안에 누워있든 간에 온디맨드를 통해 이용자는 언제든 공급자와 연결될 수 있었다. 또한 시차 없이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다. 이미 만들어진 기성 제품을 사서 쓰다가 고장이 나면 그제야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애프터서비스가 아닌, 내가 원하는 제품을 언제든 주문할 수 있고 바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온디맨드가 대세가 된 것이다.
온디맨드의 발전은 계속되고 있다. 현재 O2O 사업의 대부분이 온디맨드이다. 새로이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도 온디맨드를 생각하며 상품 및 서비스를 기획한다. 하지만 온디맨드 역시 일반화가 되고 있어 더 이상 이를 통해 차별성을 확보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이윤 극대화가 지상목표인 기업들은 또다시 새로운 서비스 패러다임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고객의 수요를 예측하여 서비스를 선행하는 시스템이 등장하였다. 바로 비포서비스다.
비포서비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표하는 기술이 빅데이터(Big data)와 인공지능(AI:Artificial Intelligence)이다. 이 새로운 기술 플랫폼을 통해 기업은 무한한 데이터를 모을 수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제품과 서비스 생산 및 소비에 있어 완전히 새로운 방법을 만들게 된다.
말 그대로 비포서비스는 제품이 주문되기도 전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온디맨드가 즉시성, 동시성을 의미한다면 비포서비스는 예측성을 의미한다. 생산자(공급자)는 소비자의 데이터를 모으고(gathering) 미리 주문을 예측(helped by AI)하여 주문도 되기 전에 먼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아마존 Amazon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최근 아마존은 예상 배송(anticipatory shipping) 시스템을 구축하였다. 소비자가 주문을 넣기도 전에 배송을 준비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특허도 취득하였다. 특허의 내용은 (특정 지역에서의 과거 주문내역에 기초하여) 주문도 하기 전에 미리 상품을 포장한 뒤 해당 포장물을 트럭이나 허브에 대기시켜 놓고 주문을 기다리는 것이다. 따라서 발송은 주문이 들어오자마자 (상품 준비 시간 없이) 바로 가능해진다. 휴지, 시리얼, 비타민, 치약 등 주기적으로 구매해야 하는 것들이 주요 대상이 된다. (물론 앞으로 기술이 더 발전한다면 품목 확장이 가능해질 것이다)
이러한 비포서비스는 소비자들에게 많은 혜택을 가져다줄 것이다. 우선, 주기적으로 제품을 주문하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시간 비용을 덜어줄 것이다. 또한, 제품을 받아보기까지 드는 시간 비용 역시 줄여줄 것이다. 덧붙여, 아마존은 무료배송이 기본이며 대부분의 제품을 업계 최저 금액으로 판매하므로 제품 검색에 사용하는 수고 역시 덜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따라 소비자들의 충성도는 높아질 것이고 동시에 다른 물건도 같이 주문하다 보면 개인 총 구매액 역시 증가할 것이다.
서비스의 공존 共存 시대 : 애프터서비스, 온디맨드, 비포서비스
이제 제품을 팔고 애프터서비스만 해주는 시대는 끝났다. 고객은 자기가 원하는 제품을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얻기를 원한다. 이에 온디맨드가 대세가 되고 있다. 하지만 온디맨드가 일반화되자 기업은 새로운 서비스를 통해 다른 기업과 차별화를 꾀하였다. 비포서비스가 등장한 이유이다.
온디맨드가 확장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것이 인터넷과 모바일이었다면, 비포서비스의 등장에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의 역할이 컸다. 기술의 단계로 따진다면 애프터서비스는 2차 산업혁명, 온디맨드는 3차 산업혁명, 비포서비스는 4차 산업혁명 정도가 될 것이다.
물론 기술만으로 변화가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고민하는 사람의 생각(창의)에서 혁신은 시작된다. 기술과 플랫폼은 결국 도구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세 가지 서비스 패러다임은 상호 대체가 아닌 보완관계다. 향후 몇 년 동안 서로 도우며 발전을 견인해나갈 것이다. 물론 공급자 입장에서는 세 가지 모두를 시행하여야 하기 때문에 부담이 될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우리는 애프터서비스가 당연해진 90년대를 지나 온디맨드와 비포서비스가 당연해진 2017년을 살고 있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