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only buy but also live
여러 권의 부동산 책을 읽다 보니 몇 가지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첫 번째가 "정부와 맞서지 마라" (링크 참고)
두 번째는 "입지가 제일이다" (링크 참고)
이번에 설명할 세 번째는 "부동산은 살아가는 곳이다"이다.
"부동산 언제 사야 할까요?" "지금 가격이 비싼 걸까요?" "갭투자로 한 채 더 사고 싶은데 어떨까요?"
부동산에 관해 많이 질문하는 내용들이다. 부동산 격언 중에는 "무릎에서 사서 어깨에서 팔아야 한다"는 내용도 있다.
위 질문과 내용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다 부동산을 하나의 재화(goods)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즉 사고파는 대상물로 부동산을 보고 있는 것이다.
'돈이 없을수록 서울의 아파트를 사라' '돈 되는 아파트 돈 안 되는 아파트' '나는 마트 대신 부동산에 간다'
한 번쯤 들어봤을 제목일 것이다. 다름 아닌 최근 서점가에서 베스트셀러였던 부동산 서적들이다. 여기서도 제목의 공통점은 부동산을 사는 대상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내용에는 살아가는 이야기도 많이 나온다)
당연히 부동산도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재화이다. 이를 부인하기는 어렵다. 다만, 성격이 조금 다른 재화라는 점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부동산은 사는 것(thing)이기도 하지만, 살아가는 곳(where)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저 부동산을 사고파는 매매(賣買) 행위에만 몰두하는 경우가 많다. 물건이 비싼지 싼 지, 지금 사야 하는지 팔아야 하는지, 정부의 규제 신호는 매도신호인지 매수신호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그저 호가, 거래가만 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재화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고 당연한 것이다. 그것을 부정하자는 것은 아니다. 가끔 "부동산을 매매의 물건으로 보지 말고 살 집 1채씩만 구해서 주거의 품격을 높이자"라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런 주장은 그저 낭만적이기만 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눈 앞의 현실을 회피하는 것 같아서다. (사회현상이 자신이 봤을 때 옳지 않다고 하여 그것이 이미 벌어지고 있는 이상 사실이 아닌 것은 아니니까)
자본주의 시장은 수요와 공급으로 이루어지며 보이지 않는 손인 가격에 의해 합리적으로 결정된다. 경제학의 기본 명제다. 부동산 시장도 마찬가지이다. 합리적인 개인은 부동산에 대한 개별적인 선호를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선호가 수요와 공급을 결정하고 그에 따라 가격이 결정된다. 그러한 가격은 시장의 결과(result)이다. 과정(process)이 아니다. 물론 가수요(투기수요)가 더해져 잠시 동안 시장 왜곡이 일어날 수는 있지만 그것은 장기적 균형(equilibrium)을 가져오기는 어렵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부동산을 그저 사는 것에만 머물러 보지 말고, 살아가는 곳으로 시각을 넓혀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시야를 넓히자는 것이다.
'어디가 가격이 오를까?' '지금 가격이 제일 쌀 때 아닐까?' '어디 재건축이 돈 될까?'라는 질문 이전에 '어디가 살기 좋을까?' '지금 사는 곳에서 언제까지 살아야 하지?' '지금은 낡았지만 그곳에 새 건물이 들어서면 살기 좋아지지 않을까?'라는 질문이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부동산은 재화 이전에 거주의 공간이고 그 주거에 대한 수요가 가격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하에 시장, 가격의 관점에서 봐도 주거에 대한 고려를 반드시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개인들은 모두가 다른 상황 하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사회 초년생도 있고, 대학생도 있으며, 노부부도 있고, 4인 가족도 있다. 그 사람들의 개개인의 (수요와 공급을 결정하는) 선호가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를 범주화(categorize)하여 바라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는 개인적으로 생애주기별(life-cycle) 분류를 통해 주거의 함수에 좀 더 다가가려는 노력을 해보려 한다. (개인적으로 고민하여 만든 함수이다)
주거의 함수(函數) 쉽지 않다. 함수를 결정하는 주거의 선호 요인에는 무엇이 있을까. 아마도 교통, 학군, 직장, 상권, 공원, 병원 등이 들어갈 것이라는데 대해 많은 분들이 공감할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다음과 같은 함수 구성이 가능할 것이다.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가정한 것이다)
D=f(교통, 학군, 직장, 상권, 공원, 병원 ...)
생애주기별로 구분한다면 아마도 이런 수요 함수들이 도출될 것이다.
D(20대 미혼, 신혼부부)=f(교통 50%, 직장 40%, 상권 10%)
D(30대 기혼, 초등자녀)=f(교통 40%, 학군 30%, 직장 20%, 상권 10%)
D(40대 기혼, 중등고등자녀)=f(교통 30%, 학군 40%, 직장 20%, 상권 10%)
D(50대 기혼, 고등대학자녀)=f(교통 30%, 학군 20%, 직장 20%, 상권 10%, 공원 10%, 병원 10%)
D(60대 기혼, 자녀결혼)=f(교통 40%, 상권 10%, 공원 20%, 병원 30%)
D(70대 이후 혼자)=f(교통 50%, 상권 10%, 병원 40%)
20대는 교통, 직장에, 30대~50대는 교통, 학군에, 60대 이후는 교통, 병원에 수요가 높을 것으로 가정했다.
(보다 정확하게 하기 위해서는 설문을 해보면 좋겠지만 당장은 쉽지 않은 일이므로 일단은 상식 선에서 논의 전개를 이어나가도록 하겠다.)
아파트 주거 함수가 위와 같다면, 우리는 어떤 아파트를 사는 것이 재화와 거주지로서 좋을 것인가.
위 생애주기별 함수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1. 20대 미혼이나 신혼부부는 혼자 또는 둘만 살기 때문에 15~20평, 방 1~2개 정도면 충분하다. 교통과 직장을 중요시하니 이왕이면 근처에 직장이 많은 역세권 아파트가 좋을 것이다. 추가하자면 요즘 젊은 사람들은 새 것을 좋아하니 오래되지 않은 아파트를 사는 것이 나을 것이다. 아님 인테리어라도 깨끗이 해야 한다.
따라서 15~20평 아파트를 고려한다면 역세권에 직주근접인 곳을 사는 것이 수요를 고려해볼 때 좋을 것 같다.
2. 30대 기혼은 미취학 자녀 또는 초등 자녀 2명 이내와 함께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24평 방 2개 이상은 있어야 한다. 교통과 초등 학군을 중요시하니 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가 좋을 것 같다.
따라서 24평 아파트를 고려한다면 초등학교를 품은 교통 좋은 곳(역세권 꼭 아님)을 사는 것이 좋을 것 같다.
3. 40대 기혼은 중등 또는 고등 자녀 2명 이내와 함께 살 것이다. 따라서 33평 방 3개 이상은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 어머니들은 중등 학군을 무척이나 중요시한다. 학업성취도 평가가 높은 중학교와 학원가가 근처에 있으면 좋을 것이다.
따라서 33평 아파트를 고려한다면 학군이 좋은 곳을 사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대치, 목동, 분당, 평촌 등)
4. 50대 기혼은 고등 자녀 2명 이내와 함께 살 것이다. 선호에 따라 38평대 이상을 사는 사람이 꽤 있을 것이나 33평도 불편하지는 않다. 학군의 중요성이 여전히 있으나 중학교 때만큼은 아니다. 따라서 취향을 강하게 탈 수 있을 것이다. 교통에 강점을 주던지, 공원이나 병원에 강점을 주던지 하는 식이다.
따라서 38평대 이상의 대형 아파트를 고려한다면 모두 고르게 갖추어진 곳이거나 한 분야가 압도적으로 강한 곳을 사는 것이 좋을 것이다.
5. 60대 기혼은 본인은 은퇴하고 자녀들은 결혼시키느라 돈이 많이 들어가는 시기다. 24평 방 2개 정도로 줄여갈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24평 아파트를 고려한다면 교통과 병원 접근성이 좋은 곳도 도움이 될 것이다.
6. 70대 기혼은 혼자가 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자녀들이 있기에 24평에서 더 줄이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줄여가는 수요도 꽤 있을 것이다. 관리비 걱정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더라도 60대 기혼과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 결론을 통해 정리해보겠다.
실거주든 투자든 수요가 많아야 가격이 오르거나 유지된다. 수요가 입지를 만들고 입지가 가격을 결정한다. 따라서 내 아파트(구입했든 구입할 예정이든)에 대한 실제 주거 함수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를 미리 검토해봐야 한다. 앞서 말했지만 부동산은 사는 곳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네 가지로 요약하며 마무리하겠다.
1. 교통은 모든 세대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 수도권 역세권 아파트는 모든 세대를 통틀어 수요가 있을 것이다. 간혹 역세권 아파트가 싫어 산 좋고 물 좋은 곳으로 가는 어른들이 있는데 그 빈자리를 채워줄 사람은 무한대일 것이다.
2. 20평대 이하 소형평수일수록 역세권에 사야 한다 : 소형평수에 들어갈 사람은 1인 가구, 신혼부부일 것이다. 혹은 고령부부가 될 수도 있다. 따라서 교통에 대한 선호가 클 수밖에 없다. 특히 노인들은 지하철이 무료이기 때문에 더더욱 선호가 클 수 있다.(버스는 아직 유료이다)
3. 20~30평대는 학군이 중요하다 : 우리나라의 학구열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우리나라 학생들의 주당 공부시간은 60시간으로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길고, 사교육과 방과 후 수업은 평균 9세부터 시작해 OECD 국가 중 가장 빠르다. 소형평수에서 교통이 상수라면 중형 평수에서는 학군이 상수이다. 초등학교는 도로를 건너지 않는 곳, 중학교는 학업성취도가 높은 곳이 좋다. 고등학교는 필요 없다.
4. 대형 평수는 컨셉이 중요하다 : 대형은 취향을 탄다. 2007년 이후 가격 폭락은 대형이 주도한 경향이 있는데 이는 소형평수 유행과 맞물려서 이다. 언젠가 다시 유행이 올 경우 무섭게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현재 평당가가 낮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택할 경우에는 50대 기혼 부부의 취향을 많이 고려해야 한다. 그분들이 실거주할 확률이 제일 높은 세대이기 때문이다. 병원, 공원, 백화점, 또 다른 무언가가 그들을 유인할 지에 대한 고려가 필요할 것이다.
이상이다. 동의하는 부분도 아닌 부분도 있을 것이다. 역시 결정은 개인이 하는 것이다. 따라서 주거 함수를 수정하면서 본인에게 맞는 수요를 찾아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