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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현락 Jun 25. 2021

때때로 불행한 일이 좋은 사람에게 생길 수 있다

슬기로운의사생활 시즌2 심플리뷰

한 아이의 엄마가 한 아이의 엄마에게 말을 건넨다.


"괜찮아요, 괜찮아. 잘 될 거예요. 우리 애는 바드 단지 삼 개월 넘었어요. 근데 지금 잘 버텨주고 있어요. 우리 마라톤이야. 우리 마라톤 선수예요."


어릴 때 장기간 입원한 적이 있다. 먼저 온 아이의 엄마는 자신에게 누군가 그랬듯이 나중에 온 엄마를 위로한다.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아이가 쓰러져 사경을 헤매고 인공심장을 달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는 엄마를 주저앉게 만든다. 별다른 방법 없이 기증자를 기다려야 하는 안타까운 사연들도 있다. 각양각색의 스토리들이 어우러져 병실은 이야기 꽃이 핀다.


5년 때로 그보다 더 긴 세월 병실을 드나든 아이의 엄마는 이제 베테랑이 된다. 먼저 다가가 등을 토닥여 주고 우리 애도 수술을 받고 지금까지 잘 버티고 있다며 이제 갓 마라톤 주자가 된 엄마의 등을 두드려 준다. 병원은 그래서 위로의 공동체가 된다. 가족보다 더 끈끈한 정을 나누는 경우도 많다. 일종의 전우애인 셈이다. 마라톤을 끝까지 완주할까 싶은 애처로운 마음이 들 정도로 여린 엄마들은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투사가 된다. 아이들은 그런 엄마 덕에 하루하루를 버텨 나간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


아이는 힘든 암수술도 이겨냈다. 그 고통을 견딘 아이가 오늘따라 간단한 실밥 제거조차 몸서리치며 아파한다. 엄마는 아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몇 번을 달래고 들어와도 아이는 핀셋이 닿기도 전에 몸서리를 치며 울부짖는다. 세 번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실밥을 제거 못하고 아이는 아빠와 밥을 먹으러 간다. 엄마는 그런 아이가 밉다.


정원은 아이 때문에 밥도 못 먹고 병원 한편에 앉아 있는 엄마에게 다가간다.


"어머니, 승원이 힘든 암수술도 이긴 아이예요. 아픈 거 승원이가 많이 겪었고 제일 많이 알 거예요. 속상하신 거 이해해요. 그래도 아픈 아이 케어해서 여기까지 잘 오셨는데 오늘 같은 실밥 제거 정도야 전에 승원이 아프고 수술받고 아프고 할 때 비하면 이 정도는 진짜 아무것도 아니잖아요. 전 괜찮으니까 어머니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일주일 뒤에 다시 도전하면 되죠. 뭐."


어쩌면 아이도 알았는지 모른다. 자신이 힘들어하면 엄마, 아빠도 힘들까 봐 암수술할 때는 묵묵히 버텼을지도. 이건 내 경험이다. 난 도저히 어린양을 부릴 수 없었다. 깊숙이 패인 어머니의 두 눈과 의사 선생님들께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치료 잘 부탁한다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아파도 울 수 없었다.


그러다 울음이 터졌다. 별일도 아닌데 서러웠다. 그냥 간단한 검사였는데 엉엉 울고 말았다. 검사를 하던 선생님은 당황했고 미안하다며 어쩔 줄 몰라했다. 치료가 끝났다는 안도감 함께 설움이 터져 버렸다. 승원이도 마찬가지로 그런 설움이 아니었을까? 이제야 터져 버린 눈물이 아니었을까?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


송화는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유경진의 수술을 앞두고 환자와 보호자에게 수술에 대해 브리핑한다. 보호자는 송화가 교수인 줄 모르고 VIP인 자신들에게 레지던트만 보냈다며 기분 나빠한다. 끝까지 송화가 수술 담당 교수인 줄 모르던 보호자는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리고 사과한다.


그런 보호자에게 송화는 전공의 선생님들도 10년 넘게 이 분야에서 공부하고 수련을 쌓은 분들이라며 전공의들이 충분히 환자의 상태를 설명해 줄만큼 전문성이 있다고 보호자에게 설명한다. 교수인 자신을 몰라 본 보호자를 경우가 없다고 나무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앞에 있는 전공의를 무시한 태도를 바로 잡는다.



전공의 선빈이 급히 송화에게 달려온다.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를 구한 한국의 신경외과 의사 송화를 독일의 언론이 주목하고 인터뷰를 요청해 왔다는 것이다. 들떠 있는 선빈에게 송화는 그 인터뷰 안 하기로 했다고 말한다. 인터뷰 요청을 거절한 송화에게 선빈은 왜 그랬냐고 묻는다.


"알아, 병원장님에게 들었어. 근데 나 안 한다고 했는데. 그냥 안 한다고 했어... 니들 시간 안 된다고 해서. 같이 고생했는데 어떻게 나만 인터뷰를 해. 니들도 같이 인터뷰하면 좋을 것 같아서 다른 시간 몇 개 더 물어봤거든 근데 이번 주 토요일 밖에는 시간이 안된대. 그래서 나도 안 한다고 했어. 다음에 서로 시간 맞춰서 여유 있게 하자고 했어."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


공은 함께 나누고 과는 떠안는 것이 책임 맡은 자의 자세다. 하지만 현실은 과는 떠넘기고 공은 독식한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팀워크는 무너진다. 리더는 우산이 되어 비를 막아주고 방패가 되어 동료를 지키는 사람이다. 송화는 팀워크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다. 같이 고생한 동료들과 공을 나누는 것이 진정한 정의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


아이를 그토록 원했던 착한 부부다. 그 부부에게 천사 같은 아이가 찾아왔다. 산모는 위험을 무릅쓰고 아이를 지키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런 노력도 허사로 돌아가고 아이는 수술실에서 태어나지도 못한 채 생명을 잃는다. 산모는 오열한다.


그 모든 과정을 석형은 담담히 설명한다. 의료진이 어떤 조치를 취했으며 아이와 산모는 어떤 상황에 있었고 그 결과는 무엇인지 소상하게 얘기한다. 산모의 건강을 최선에 두고 치료하겠다는 다짐과도 같은 치료 계획도 설명한다.



보드 달고 처음으로 환자에게 메시지를 보낸 석형은 산모의 손편지를 받는다. 자신의 감정도 추스리기 어려운 형편에 산모는 볼펜을 꾹꾹 눌러 자신과 태어나지 못한 아이를 돌본 석형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한 달 정말 짧은 기간 동안 아이는 엄마와 아빠를 만나고 갔다. 그 짧은 만남이 부부에게는 너무도 소중하다. 석형을 비롯한 의료진들은 부부에게 아이와 만나는 한 달이라는 소중한 선물을 준 셈이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


석형이 보내  문구는 뭘까? 궁금증을 자아낸다. 석형은 자신이 보낸 메시지를 액자로 만든 사진을 지긋이 내려본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


산과 교과서의 첫 장에는 이런 글이 있네요. "때때로 불행한 일이 좋은 사람들에게 생길 수 있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


때로 교과서에서 예기치 못한 문장을 만날 때가 있다. 어느 상담 교과서에서 나는 이런 시를 읽었다.





방문객 / 정현종


사람이 온다는 건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상담에 대해서 내가 알고 있다면 얼마나 알까? 전공을 했고 수련을 쌓았으며 자격을 취득했지만 여전히 사람은 신비롭다. 어떤 이론으로도 어떤 상담 기법으로도 사람을 다 담을 수는 없다. 난 오늘도 한 사람의 일생이 다가오는 그 상담실 문을 앞에 두고 내담자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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