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의사생활
생명을 살리기 위해 애쓰는 을제 병원 사람들 이야기가 다시 찾아왔다. 비록 을제 병원이라는 가상공간이지만 그 속에서 빚어지는 이야기들은 가슴을 울린다. 이번 시즌도 마찬가지로 을제 병원 선생님들은 콜을 받느라 커피 한잔 제대로 마실 시간이 없다.
하지만 아무리 급한 전화라도 받아야 할 때가 있고 받지 말아야 할 때가 있는 법. 드레싱 중에 전화를 받은 추민하 선생은 환자가 얼마나 불편했겠냐며 양 교수에게 꾸중을 듣는다. 때로 혼내주시는 선생님들이 고마울 때가 있다.
석사논문 지도를 받을 때였다. 논문 초고를 가져가니 지도교수님이 읽어 보시다가 탁자에 초고를 내려놓고 조용히 나무라셨다. 자기 스스로가 자기 논문을 믿지 않으면 누가 네 논문을 봐주겠냐며 오늘은 그만 돌아가 보라던 교수님 말씀에 나는 앉지도 서지도 못한 채 황망한 마음으로 연구실을 나왔다. 연구실 계단을 내려오면서 얼마나 서럽던지 눈물도 나지 않았다.
처음에는 분했지만 생각해보니 교수님 말씀 하나하나 틀린 말이 없었다. 이 연구가 얼마나 가치 있고 중요한 것인지 나 스스로를 설득하지 못했다면 과연 누구를 설득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내 연구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스스로에게 되묻고 초고를 전면 수정했다. 그렇게 밤을 새워 제출한 논문이 1차 심사와 2차 심사를 순조롭게 통과해 최종심에서 최고 점수를 받았다.
1차 원고와 2차 원고 모두 자잘한 맞춤법 수정 외에는 별다른 수정사항 없이 잘 쓴 글이라는 칭찬이 부심들로부터도 돌아왔다. 제자의 성장에 기쁘셨던지 지도교수님도 애썼다며 어깨를 두드려 주셨다. 만약 그때 교수님이 아무렇지도 않게 그 정도에서 넘어가 주셨더라면 그 당시에는 편하게 논문을 쓸 수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 생각해도 서러운 그 쓴소리 덕분에 어디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논문을 제출할 수 있었다.
교수님을 자주 찾아뵙지는 못하지만 그 이후로 연구에 임할 때 교수님이 해 주시던 말씀을 되뇌이게 된다. "너 스스로 이 연구를 믿니? 이 연구가 얼마나 상담에 있어서 중요한 연구인지 스스로 얼마나 믿고 있니? 네 연구를 너 스스로가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급한 환자가 응급실에 들어왔다. 시험관으로 어렵게 얻은 아이가 유산될 위기에 처한 산모. 아이를 포기할 수 없는 산모는 어떻게든 아이를 낳고 싶어 한다. 참으로 딱한 처지다. 병원생활을 오래 해 본 나로서는 이런 딱한 형편의 사람들을 자주 만나곤 했다. 아이도 살리기 어렵고 자칫하면 산모도 위험에 처할 수 있기 때문에 의료진은 최대한 산모에게 안전한 선택이 무엇인지 고민할 수밖에 없다.
상담센터에서도 마찬가지다. 최대한 내담자를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어떤 상담기법이든지 최우선으로 내담자를 고려해야 한다. 내담자와 협력하여 내담자에게 최대한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상담의 목표를 잡고 그것에 맞는 상담의 전략을 세워야 한다. 이것을 상담에서는 사례개념화라고 한다.
"선생님, 한 번을 만나더라도 내담자에게 의미 있는 만남을 가져야 해요." 언젠가 나의 수퍼바이저 선생님께서 나에게 해 주신 말씀이다. 지금도 상담을 할 때 이 말씀을 나의 나침반으로 삼고 있다. 내담자가에게 도움이 되는 의미 있는 만남이 되게 하자!
두 의사가 있다. 한 의사는 거리를 두고 손은 주머니에 넣은 채 환자를 바라보고 있다. 한 의사는 환자 곁에 다가와 두 손을 모으고 환자를 마주 보고 있다. 태도의 차이가 보이는가? 객관적 태도는 전문가가 지녀야 할 미덕이다. 거리를 두고 이성적 판단으로 진단하고 치료를 해 나가는 것은 합리적인 태도다. 나무랄 것 없다. 그러나 그 앞에 있는 환자는 시험관으로 겨우 얻은 아이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한 사람이다.
사람을 대상화할 때 그 사람을 대상화하는 사람도 대상화된다. 인간의 비인간화. 산업화 사회를 지나오면서 끊임없이 제기됐던 문제다. 인간은 타인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따라 자기 자신의 모습도 그렇게 변해간다. 1, 2, 3, 4. 사람을 숫자로 세기 시작하면 사람은 그저 사망자 1명의 숫자 하나에 불과해진다. 사망자에게도 이름이 있다. 우리는 그 이름을 기억해야 마땅할 것이다. 몇 백 명 중에 하나가 아니다. 그 한 사람은 누군가의 어머니이고 딸이고 아내이다.
같은 산모이지만 차트의 내용은 다르다. 태도가 다른 만큼 진단과 처방도 다른 것이다. 옳고 그름으로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다. 다만 환자를 얼마큼 돕고 싶은지 의지의 차이가 있을 따름이다. 때로 생명을 살리고 싶다는 강한 의지가 치료의 핵심이다.
상담을 하다 보면 지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때로 내가 진행하는 상담에 회의가 들기도 한다. 계속해서 내가 해야 하는 걸까? 리퍼하는 게 맞는 건 아닐까. 이때 중요한 것은 상담기법도 이론도 아니다. 의지가 필요하다. 상담자에게도 내담자에게도 이 상담을 끝까지 완주할 의지가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내담자와 상담자는 협력 관계이다. 세상 어느 팀보다 강력한 팀워크를 지닌 한 팀인 것이다.
극 중 연우엄마가 찾아왔다.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하늘나라에 간 세 살 때까지 병동에서 살았다. 백일도 돌도 병동에서 맞았다. 그 아이가 죽고 나자 친척들도 일 년 만에 아이를 잊었다. 이제 누구도 연우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다만 병원에 오면 연우엄마라고 불러준다.
병원에서만큼은 연우의 이름이 기억되고 있다. 연우엄마는 아이를 잊지 않기 위해 병원을 들른다. 병원 관계자들은 혹시라도 연우엄마가 의료진의 실수로 아이를 잃었다고 생각하고 고소할 증거를 찾으려고 오는 건 아닌지 의심한다.
의료진도 그만큼 두려운 것이다. 최선을 다했지만 안타까운 일들이 발생하기도 한다. 불가항력이란 말이 그래서 있는지도 모른다. 아이의 죽음은 막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한 의료진도 가족도 아이에게 미안함이 남는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6년이 지나서였을 것이다. 갑자기 어머니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았다. 밤중에 어머니 얼굴을 떠올리려는데 잊혀 생각나지가 않았다. 순간 온몸이 시리고 아팠다. 그날 밤, 난 이불에 얼굴을 묻고 엉엉 울었다.
"엄마, 미안해. 엄마, 미안해. 엄마 잊어버려서 미안해."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은 오죽하랴. 연우엄마는 아이를 기억하기 위해 오늘도 케이크를 사들고 을제 병원 어린이 병동을 찾았다.
장겨울 선생은 자신의 연인이자 상사인 안정원 교수에게 묻는다. 연우엄마가 자꾸 찾아온다고.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안교수는 복잡한 심정을 토로하는 장선생에게 연우엄마에게는 시간이 필요하다며 다음번에 연우엄마가 또 찾아오거든 커피 한잔 사드리며 이야기를 들어주라며 달랜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에 커피 한잔을 사주며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가 있다면 우리는 한결 그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다. 그 커피타임에 서러운 이야기, 아쉬운 이야기, 속상한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우리의 감정을 추스른다. 우리에게는 그런 하프타임이 필요하다.
다시 찾아온 연우엄마에게 장겨울 선생은 커피 사드릴 테니 함께 가자며 연우엄마를 환대한다. 연우엄마는 그제야 병동에 자주 찾아오는 이유를 장선생에게 말해준다.
"이제는 아무도 연우 이름을 안 불러요. 제가 연우엄마인 것도 몰라요. 여기 오면 사람들이 날 연우엄마라고 불러줘요."
연우엄마에게는 시간이 필요하다. 머리핀 살 시간조차 없는 장선생은 그 귀한 시간을 연우엄마에게 내어준다. 시간을 내어주는 것은 생명을 내어주는 것이다. 내 생에 일부를 그 사람과 나누는 것이다. 함께 해 주는 삶은 그래서 복되다.
커피타임을 내어 준 장선생에게 연우엄마는 부끄러운 듯 선물이라며 머리핀을 놓고 총총히 발걸음을 옮긴다.
의대 99학번 동기들은 한 병원에서 일하며 오늘도 생명을 살리기 위해 분주히 병동과 수술실을 오간다. 한숨 돌릴 틈 없이 바쁜 그들이 그 와중에 짬을 내어 만든 구구즈 밴드가 '비와 당신'을 연주하며 드라마는 마무리된다. 유난히 비 소식이 잦은 요즘 빗소리를 들으면 생각나는 그 사람을 떠올리며 가사를 적어본다.
이젠 당신이 그립지 않죠,
보고 싶은 마음도 없죠.
사랑한 것도 잊혀 가네요, 조용하게.
알 수 없는 건 그런 내 맘이
비가 오면 눈물이 나요.
아주 오래전 당신 떠나던 그날처럼.
이젠 괜찮은데 사랑 따윈 저버렸는데
바보 같은 난 눈물이 날까.
아련해지는 빛바랜 추억
그 얼마나 사무친 건지
미운 당신을 아직도 나는 그리워하네.
이젠 괜찮은데, 사랑 따윈 저버렸는데
바보 같은 난 눈물이 날까.
다신 안 올 텐데, 잊지 못한 내가 싫은데
언제까지 내 맘은 아플까.
이젠 괜찮은데 사랑 따윈 저버렸는데
바보 같은 난 눈물이 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