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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현락 Jun 18. 2021

바르셀로나행 야간열차

연재소설 구름다리 #5

5


“형, 혼자 다니면 심심해. 이거라도 가지고 다녀.”

“사진 찍을 줄도 모르데 카메라는 무슨.”


“그래도 가지고 다니다 보면 내 말 듣길 잘했다 싶을 걸.”


녀석이 억지로 쥐어 준 카메라와 헤드폰은 과연 요긴했다. 사진은 혼자 여행 온 여행자에게 소일거리를 제공해 줬다. 사진작가라도 되는 양 요란스러운 포즈를 취하며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고 있으면 무언가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아 외로움이 덜했다. 


헤드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며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있으면 다른 사람 시선 따위는 신경 쓸 여유조차 없었다. 사진을 찍고 아이패드에 옮기고 그것을 다시 클라우드에 올리는 일은 이제 현재의 일상 됐다. 그렇게 삼 주를 보내고 마드리드와 세비야 그리고 론다와 그라나다를 거쳐 바르셀로나행 야간열차를 탔다. 


야간열차에는 한 정거장이 지나도록 아무도 타지 않았다. 한 정거장이 지나자 문이 열렸고 익숙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바르셀로나에서 잠깐 스친 적이 있는 한국인 관광객으로 유럽의 몇 개 나라를 여행 중인 신혼부부였다. 


“바르셀로나 가신다고 하시더니 신기하게 같은 객차네요.”

“야간열차는 처음이라서 긴장하고 있었는데 한국어로 얘기하니 좋네요. 다행이에요.”


“우리 말고 다른 사람은 더 안 탔으면 좋겠네요. 좀 편하게 가게.”

“그럼 좋죠. 그럼 아내 분은 어디에서 주무세요?” 


“아, 다른 객차인데 여기 있다가 가도 되죠?”

“괜찮아요. 편히 있으셔도 돼요.”


부부는 세비야를 거쳐 론다로 갔다가 그라나다를 거쳐 바르셀로나에 가려했지만 일정이 맞지 않아 론다를 건너뛰고 그라나다로 오는 바람에 누에보 다리를 보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현재는 아이패드를 꺼내 론다의 누에보 다리를 보여줬다. 론다는 이 다리가 전부고 사진보다 나을 것도 못할 것도 없는 풍경이라며 부부를 달랬다. 


부부는 보고 온 도시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고 보지 못한 론다에 대한 아쉬움만 토로했다. 프라하에서 현재는 부다페스트 일정을, 두브로브니크에서는 로마의 일정을 걱정했다. 카를교를 건너면서도 부다페스트에 예약한 숙소를 찾아갈 생각에 강의 풍경은 놓치고 말았다. 


로마에 있으면서 파리를 생각하고 자그레브에 있으면서 아테네를 떠올렸다. 몸은 유럽에 마음은 서울에, 현재는 그렇게 분주히 두 공간을 오갔다. 유럽의 거리를 숨 가쁘게 돌아다니느라 현재는 지금 여기의 현실을 눈에에 담지 못했다. 


현재의 시선은 누구보다 바쁘게 과거와 미래 사이를 오갔다. 지난 온 일에 대한 후회와 앞으로 닥쳐올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현재의 지금은 가려졌다. 새벽같이 일어나서 밤새 아이패드 구글맵에 표시해 놓은 장소들을 하나씩 순례하고 숙소에 돌아올 때쯤이면 현재의 발은 부르트고 종아리는 부어 있었다. 현실을 밀어내는 감각 속으로 밀려드는 고통을 즐기며 현재는 자신의 몸을 혹사시켰다. 그러는 동안 과거와 미래는 현재 곁을 아슬아슬하게 피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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