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구름다리 #7
7
“세상 좋아졌다!”
“그러게! 애들은 잘 있지? 잘 보여? 신기하긴 하다. 애들은 자고?”
“응, 여태 뛰놀더니 이제 자네. 카메라 잘 쓰고 있어?”
“너 아니었으면 큰 일 날 뻔했다. 카메라 없고 헤드폰 없었으면 여행 못할 뻔했어.”
“내가 그랬잖아. 혼자 여행 갈 때는 카메라 가져가야 한다니까.”
“그러게 덕분에 잘 쓰고 있어.”
“밥 잘 챙겨 먹고 있는 거지?”
“그냥, 그래도 생각보다 잘 먹고 있어.”
“언제 올 거야? 형수 기일 전에는 올 거지?”
장학금이 모자라 집 식구들을 한국에 두고 온 녀석은 처가의 도움으로 가족들을 흐로닝겐으로 데려 왔다. 오랜만에 가족들과 함께 한 녀석은 어느 때보다 즐거워 보였다. 녀석은 은혜를 처음 보자마자 형수라고 불렀다.
녀석이 싫지는 않았는지 은혜는 불쑥 데이트에 끼어드는 녀석을 밀어내지 않았고 그렇게 셋은 뭉쳐 다녔다. 놀이동산에 갈 때도 주말에도 셋은 하나였고 둘은 어색했다. 유난히 놀이동산을 좋아하던 녀석이 연간회원권 같이 하자고 졸라댈 때 그걸 말리는 것은 현재의 몫이었다.
“형 좀 봐주라. 너는 애인 생기면 여자 친구랑 연간회원권 하란 말야.”
“애인도 없는 동생 데리고 다니면 안 돼? 내가 싫다고 해도 형이 같이 안 갈 거냐고 이렇게 빈말로라도 물어봐야 하는 거 아냐? 아, 진짜 변했어.”
“야 인마, 나도 장가 좀 가자. 형이 장가가면 너랑 여자 친구 연간회원권 내가 해 준다.”
“형, 포기할게. 난 글렀어. 그냥 이대로 살래.”
넉살 좋은 녀석 때문인지 셋이 함께 있으면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둘이 데이트를 할 때면 뭔가 빠진 것만 같았고 은혜는 그때마다 녀석의 소식을 묻곤 했다. 그러던 녀석에게 여자 친구가 생겼고 은혜와 현재는 커플에게 연간회원권을 선물했다.
연간회원권을 받고 신이 난 녀석은 한껏 들떠서 커플 데이트를 하자고 했다. 녀석의 제안은 끝내 이뤄지지 못했다. 네 번째 연간회원권은 그다음 해로 그다음 해로 미뤄졌다. 은혜가 투병을 시작할 무렵 녀석은 결혼을 했고 은혜는 녀석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한 걸 두고두고 미안해했다.
결혼식을 마치고 문병 온 녀석에게 은혜는 인터넷으로 주문을 했다며 카메라를 건네줬다. 녀석은 이리저리 카메라를 만지더니 금세 익숙해졌는지 현재와 은혜 사진을 찍어줬다. 사진을 찍었다는 사실 조차 기억하지 못했던 현재가 그 사진을 발견한 것은 녀석과 작별하고 다음 행선지를 향해 가는 비행기 안에서 카메라의 전원 버튼을 눌렀을 때였다.
실수로 뭔가를 눌렀는데 은혜가 나타났다. 사진 속 은혜는 담담해 보였다. 옷맵시가 깔끔한 은혜는 환자복조차 끝단을 접어 입었다. 환자복만 아니면 아픈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 만큼 입원 초기의 은혜는 건강해 보였다.
문병을 오는 사람들은 은혜에게 금방 일어날 거라며 예의 위로의 말을 건넸다. 치료를 받을수록 은혜는 무너져 내려갔고 문병 온 사람들이 함께 사진을 찍자며 핸드폰 카메라를 들이대면 손사래를 치며 싫어했다. 연애하는 동안 한 번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은혜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는 염치조차 내려놓고 살려달라고 울부짖으며 욕설을 퍼부었다.
호스피스 병원을 선택한 것도 치료를 중단하기로 한 것도 모두 은혜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죽음은 은혜의 선택이 아니었다. 그곳에는 죽음으로 내몰린 한 인간이 있었을 뿐 죽음을 선택한 인간은 없었다. 은혜는 그렇게 살려달라며 울부짖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