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우리에게 필요한 자존감 수업
3대째 의사 가문이 뭐라고! ... 남들이 다 우러러본다고요?
어머닌 언제까지 남들 시선에만 매달려서 사실 거냐고요?!
드라마 [SKY캐슬] 중에서
우리는 왜 남들의 시선을 의식할까?
우월감은 비교에서 나온다. 그리고 나의 우월감은 남들의 열등감을 동반한다. 그래서 우월감에서 나오는 나의 가짜 행복을 극대화하려면 남들이 다 우러러보는 것을 이루어서 날 부러워하게 만들어야 한다. 즉 타인의 욕망을 이룰 때 우월감은 커지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타인의 욕망을 이룬 정도, 얼마나 남들이 부러워하는 일을 이루었냐가 인생의 가치, 성공 여부를 측정하는 기준이 되어있다.
그래서 우리는 타인의 욕망을 좇아 우월감과 열등감으로 인생을 살고, 우월감을 가지기 위해 자연스레 타인의 욕망을 좇는다. 이 굴레 속에 빠지는 건 10대라고 예외가 아니다. 남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명문대, 명문고를 가려고 죽어라 공부하지만, 합격하면 합격한 대로 우월감과 허망함에 빠지고 탈락하면 탈락한 대로 열등감과 스트레스에 사로잡힌다. 이렇게 우리 인생은 이미 10대부터 자존감과는 멀어지고, 우월감과 열등감으로만 가득 찬다.
우월감과 열등감이 아니라 자존감으로 사는 인생. 진정한 내 인생을 살기 위해선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난 정말 우연히 이 방법을 터득했다. 운이 좋았다.
열등감과 우월감은 뿌리가 같습니다.
모두 삶의 기준을 타인에 두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법륜 스님
누구보다 우월하다 생각했고, 내 삶이 완벽하다고 믿었던 때, 국제중에 떨어졌다. 그리고 순식간에 우월감은 열등감으로 바뀌었다. 우리 가족은 미국으로 떠났다. 아빠 일 때문에 가게 된 것이라, 원래 국제중을 합격해도 미국을 갔어야 할 판이었다. 하지만 난 "국제중에 합격했으나 합격증을 버리고 미국으로 간 아이"가 되고 싶었다(그러니 국제중이란 목표는 얼마나 껍데기뿐인 꿈이었던가...).
미국에 도착해 중학교에 첫 등교를 하던 날, 난 태어나 처음으로 학교에서 혼자 밥을 먹었다. 늘 내가 앉던 자리가 곧 '우리'가 앉던 자리가 되던 나에게 혼자 밥을 먹는 건 정말 낯 뜨거운 경험이었다. 그래서 고개를 푹 숙인 채 밥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내가 한국에서는 전교회장도 하고 잘 나가던 사람인데 이건 아니지' 싶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당당히 주변을 둘러봤다. 그런데 의도치 않게 처음 보는 특별한 광경을 보게 되었다. 나 말고도 혼자 밥을 먹고 있는 친구들을 보게 된 것이다.
순간 내가 한국에서 학교를 다닐 때도 혼자 밥을 먹었을 친구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분명 그곳에 같이 있었지만 단 한 번도 주의 깊게 본 적 없었던 친구들이 있었다. 왜 이제야 저 친구들이 보이는 걸까. 그 친구들에게 다가갔어야 할 전교회장일 때는 잘 나가는 아이들에 둘러싸여 거들떠보지도 않았다가, 왜 내가 혼자가 되고 나서야 저 친구들이 눈에 들어올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잘못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늘 내가 정말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해왔었는데, 갑자기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남들 앞에서 멋있어 보이고 박수받으며 사는 인생은 잘 사는 인생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뭔가 잘못되어왔다. 내 견고한 믿음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그리고 죄책감이 들었다.
내가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그 친구들의 감정을 뼛속 깊이 느껴보고 싶었다. 웃기지만, 그 죄책감을 조금 덜어보고자. 다시는 내가 그들을 무시하지 않도록. 그래서 한 학기 동안 친구를 만들지 않았다. 혼자 다녔다. 밥도 주로 혼자 먹었다. 의도치 않게 이 시기는 내 인생에서 학력, 성적, 직책, 인기 등 모든 껍데기를 걷어낸 날 것 그대로의 나로 산 처음이자 마지막 시간이 되었다. 그 누구도 내가 한국에서 어떤 사람이었는지 몰랐고, 무엇보다 관심도 없었다. 이 시간이 날 남들의 시선으로부터 해방시켜주었다.
처음에는 굉장히 기분 나빴다. 이곳의 사람들이 나를 한국에서 내가 인정받는 만큼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것이. 그래서 속으로 "내가 지금이야 조용히 평범하게 살지만 난 원래 한국에선 잘 나가던 사람이야"하는 생각을 정말 자주 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씩 흐르면서 지금 이 모습이 나의 참모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런 모습으로 사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날 감싸고 있던 족쇄들로부터 해방된 기분이었다. 드디어 날개를 단 듯이 자유로워진 기분이었다.
남들보다 등수가 높다는 것, 전교회장이라는 것, 인기가 많다는 것은 사실 나라는 사람을 정의하는 것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내 인생에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미국에서 나는 잘 나가는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있지 않았다. 유명하지도 않았다. 관심도 없었다. 자연스레 친해져 어울리던 친구 몇 명이 있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나 자신이 그 어느 때보다 맘에 들었다. 이전의 나와 비교할 수 없이 인기가 없어도, 친구가 없어도, 비싼 브랜드의 옷을 입지 않아도 온전히 행복했다. 남들의 인정이 이제 필요 없었다. 남들의 박수가 필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정말 자유로워졌다. 내 머리와 가슴은 이제 남들의 시선이 아니라, 내가 정말 원하는 것들을 찾기 시작했다. 나에게 소중한 것들에 신경 쓰고 사는 인생, 진짜 행복한 인생이 시작되었다. 왕따가 되고자 했는데 역설적으로 자존감을 찾은 것이다.
누구나 자신이 원할 때 아무도 자기를 모르는 곳에 가서 오랫동안 자유롭게 사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여행'을 통해서. 내가 누구인지, 껍데기를 벗겨낸 나 자신을 들여다보고 싶다면 여행을 떠나라. 국내든, 국외든, 바로 옆 동네든 상관없다. 최대한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남들 부러워하는 유명한 여행지에 가서 인스타에 올릴 목적으로 떠나지 말고, 나 자신을 마주하기 위해 떠나라. 사람이 많고,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면 좋다. 그리고 가만히 앉아 어디론가 바쁘게 향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저들이 나에게 관심이 1도 없음'을 느껴보라. 그 느낌을 만끽하며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해방감을 느껴라.
그리고 누가 더 잘 나가는지 비교하며 우열을 가리는 사람들을 주변에 두지 마라. 만나면 억지로 웃고 떠들긴 하지만, 속으론 기분 나쁜 사람들을 친구로 두지 마라.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는 친구들을 사귀어라. 나를 성적으로, 다니는 학교로, 버는 돈으로 보는 사람들이 아닌 내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든 날 아껴주는 친구들을 만나고 가까이 둬라. 그런 친구들이 진짜 친구들이고, 내가 내 인생을 살 수 있도록 응원해줄 친구들이다.
남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바로 '남들의 시선'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게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다. 우리가, 특히 우리나라의 10대가 남들의 시선에 매달리는 이유는 그게 중요하다고 머릿속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닫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나에게 남들의 시선보다 더 중요한 그 무언가를 찾아라. 그것을 찾고 추구하다 보면 자연스레 남들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게 된다. 내 인생에 진짜 중요한 가치를 실현시키는 게 먼저니까.
하루빨리 남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져라! 그리고 자존감을 되찾아라.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 사람인가. 난 무엇을 할 때 행복한 사람인가를 생각해보자. 중요한 건 남들의 시선에 부합하는 게 아니라, 나에게 인정받는 인생을 사는 것이다.
#2장우리에게필요한자존감수업 #열아홉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