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현서 Jul 19. 2024

에세이 <새파란 찰흙인형>

폭우와 미술과 모녀

    종종 엄마와 함께 폭우를 맞는다.

    그중 두 가지 기억을 꺼낸다.

    한 번은 쨍쨍하던 오사카에서 갑자기 우수수 비가 쏟아졌다. 마치 스콜 같았다. 우리에게는 우산이 없었고, 숙소와 가까운 위치였기에 일단 빗줄기가 잦아들면 뛰어갈 요량으로 어느 건물의 어닝 아래에서 기다렸다. 그 어닝도 아주 작아 비를 피할 공간이 좁다랬기 때문에 사람들이 다닥다닥 한 줄로 서 있었다. 여기서 문제는…. 아무리 기다려도 빗줄기가 잦아들지 않았다.

    시간은 점점 늦어졌다. 우리는 이내 그냥 거센 비를 맞고 숙소로 뛰어가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나는 그 폭우 속으로 들어갔다. 온몸에 빗방울이 투두두둑 떨어졌다. 첨벙첨벙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눈도 잘 깜빡일 수 없는 채로 마구 달렸는데, 어떤 해방감이 느껴졌다. 으학학 웃으며 숙소로 돌아갔다.

    오사카 이후로 오랫동안 여행을 가지 못했지만 그때는 그 사실을 몰랐다. 그때 오사카 여행에서 나는 유니버셜 스튜디오도 가고, 맛난 것도 많이 먹고, 구경도 많이 했다. 그런데 그때를 회상하면 이상하게도 깔깔 웃으며 비를 맞고 달려가던 일이 가장 강렬하게 일렁인다. 나는 열일곱에, 막 자유가 시작된 참이었고,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후 나는 수많은 좌절을 겪었다. 그러면서도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만은 언제나 그러잡고 있었다. 지금도 그 마음을 손바닥에 굴리고 있다.


    또 한 번은, 집까지 꽤 먼 카페에 앉아 있던 참이었다. 나와 엄마는 말도 안되게 먼 거리를 냅다 걸어 다니는 취미이자 특기가 있다. 지금은 없어진 그 카페도 정말이지 꽤 멀었다. 한참 수다를 떨고 있는데 별안간 천둥과 번개가 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물이 불어나 바깥은 무슨 얕은 강과도 같았다. 우산은 지닌 채였지만, 우산으로 어떻게 방어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그건 살면서 본 것 중 가장 심한 폭우였다. 폭풍우라고 해도 될 듯싶었다.

    이때도 나와 엄마는 빗줄기가 잦아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나갈 작정을 했으나…. 이때도 비는 끝내 잦아들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작달막한 조각 우산을 쥐고 서로에게 의지해 나아갔다. 물은 거의 발목까지 찼다. 중간에 우산도 몇 번 뒤집히고 시간도 늦어 어둑한 데다가 빗줄기 때문에 시야도 흐렸다. 엄마가 옆에서 흐악! 어떡해! 하며 소리를 질렀다. 너무 멀어서 걸어도 걸어도 집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웃긴 건, 그 와중에 우리 둘 다 웃음이 나왔다.

    즐거웠다. 탐험가가 된 것처럼. 영화 속 영웅의 시련처럼. 게임 속 주인공의 미션처럼. 나는 분명 추적거리는 비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데. 무진장한 폭우를 맞는 건 되려 행복했다.

    오사카가 먼저였는지 카페가 먼저였는지 모르겠다. 오사카는 열일곱이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카페는 정확히 몇 살이었는지 기억도 안 나고 사진도 없어서. 분명한 건 카페 폭우 때도 10대였다. 불안하고 답답했던 나의 10대에는 군데군데 이런 기억들이 있어 결국 미소 지으며 돌이켜볼 수 있다.


    이건 날짜가 정확하다. 내가 2020년 6월 30일에 만든 찰흙인형이다. 다소 황당한 상황에서 만든 것인데, 하여간 ‘비’를 주제로 미술 작업을 해야 되는 일이 있었다. 어쩌다 보니 흰색과 파란색 점토, 철사만 가진 상태로 작업에 들어가게 되었다. 시작할 때만 해도 찰흙인형을 만들 생각조차 없었다. 그런데 손이 알아서 움직이더니, 비를 맞으며 행복했던 기억 속의 날 찰흙인형으로 만들었다.

    영상과 글의 길로 들어온 지금은 내가 이런 시각예술(미술)에 파묻혀 자랐다는 사실이 조금 낯설다. 하지만 그때 시각예술은 확실히 내 언어였고, 나는 이 찰흙인형으로 내 할 말을 했다.

    <검붉고 새파란 잡지>에 처음으로 연재한 에세이 <레프트 핸디드 레이디>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이곳에서 왼손잡이다운 인생은 어느 하나 쉬운 구석이 없다. E와 나는 두세걸음마다 폭풍우를 맞닥뜨렸지만, 때로는 그 폭풍우 한가운데서 옴팡지게 비를 뒤집어쓰고 깔깔 웃었다.

    이는 사실 비유이면서 비유가 아니다. 나와 엄마는 희한한 날씨운을 가져 어떨 땐 일기예보가 잔뜩 겁을 주는데 막상 무척이나 쾌청하고 어떨 땐 쨍쨍하다더니 폭우를 맞는다. 그런데 나는 폭우 맞는 법을 잘 안다. 가끔은 폭풍우를 내가 먼저 고대한다. 나는 결국 그 한가운데서 춤을 출 것이니까.

이전 10화 단편소설 <이상한 나라의 왼손잡이와 반항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