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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S 오픈 플레이스 Oct 24. 2021

옥스퍼드, 어떤 부동산을 살까?

영국에서, 12년의 렌트를 청산하고 주택 매매 시장에 뛰어들게 되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각오를 다지고, 우리가 제일 먼저 한 것은 바로 앱 app을 다운로드하는 것이다.

지난 10년간, 영국 주택시장에는 라이트무브 rightmove, 주플라 Zoopla 등의 몇몇 부동산 앱이

가장 중요한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영국의 거의 모든 부동산 매물이 부동산 앱에 올라오고,

내부 도면과 주변 지도, 매물에 대한 상세한 설명, 학군과 매매 히스토리, 주변 집의 최근 매매 가격까지

바로 이 앱에 공유된다.  

그중 라이트무브Rightmove는 2011년 84퍼센트의 시장 점유율을 보인 이후, 2014년에는 매매 가격을 공유하는 기능을 추가하고, 2015년은 학군 체크하는 기능을 더해가면서 명실공히 영국 부동산계의 가장 큰 허브가 되었다. 이 앱의 의미는, 옥스퍼드라는 도시를 잘 몰라도 하루 종일 검색에 매달린다면, 어떤 집을 구할 수 있는지 그 주 주말쯤에는 대강 가늠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옥스퍼드의 시세는 만만치 않았어도, 검색 상으로는 우리의 예산으로는 여러 지역에 방 세 개에 작은 가든이 딸린 집을 기대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어떤 집을 찾는데?" 물어보는 친구들에게, 우리는 너무나 심플하게 대답했다.


"그냥, 너무 춥지 않고, 너무 상태가 심하지 않고. 정말 웬만하면 될 것 같아."


그러나 여기 큰 함정이 있었다. 즉 부동산 소개에 사용하는 언어는 일상에서 사용하는 언어나 단어와

다른 여러 가지 의미가 있고, 이 숨은 뜻을 찾아 나름대로 해석할 수 있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부동산에서 올리는 집 설명에 자주 등장하는 '투자할만한 아주 좋은 매물입니다.' 라는 표현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 수 없다. 막상 찾아가 보면, '현재는 살 수 없는 상태여서 공사를 대대적으로 해야 합니다'는 뜻에 가깝기 때문이다.

'아주 매력적인 부동산'이라는 설명은 '전통적인 스타일의 오래된 집'이라는 뜻으로 보면 가장 비슷했다.

'살기 편하게 고쳐진 집입니다' 이 뜻은 몇 년 전 화장실 타일을 조금 바꿨다거나 부분적으로 살짝 고친 적이 있다는 뜻이다. 전체를 고친 경우는 가격이 쑥 올라가고, 이를 놓치지않고 '대대적으로 레노베이션을 했습니다!!라는 강조가 꼭 들어가기 때문이다. 최근이라는 범위도, 생각보다 넓다는 점.


사이즈 역시 매우 주관적으로, 긍정적으로 보았음을 감안해야 한다. '굿 사이즈 룸'은 그저 아담한 사이즈를 의미한다. 방이 넓은 편이라면 '널찍한 spacious'라는 단어가 꼭 들어간다. '더블룸', '싱글룸'으로도 사이즈를 설명하는데, 책상, 옷장은 무시하고라도 더블사이즈 베드가 어떻게든 들어간다면 더블룸이며, 그보다 작다면 '싱글룸'을 의미하는 듯 했다.


열심히 매물을 보다 보니,  '처웰 중고등학교 캐치 먼트임"라는 문구 역시 관용어처럼 나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 아이들은 유치원과 초등학교였기에 신경쓰지않고 넘어가다가, 혹시나, 주변 친구들에게 물어보았다. "옥스퍼드에 여러 중고등학교 중에서, 공립학교는 처웰이라는 학교를 가장 좋다고 여겨요. 상위권 아이들을 따로 반을 만들어 공부시키는 학교예요. 옥스브리지를 스무 명 가까이 보내서, 모두 여기 배정받기를 원해요".

여기도 이런 게 있구나, 한국 엄마의 촉이 작동했다. 이 지역에서 매물로 나온 집들의 사진을 종합해 보니, 어린아이들이 있는 집은 잘 나오지 않았고, 대출이 끝난 집이나 할머니 할아버지가 사시던 집이 주로 시장에 나오는 듯 했다. 즉, 아이들이 중고등학교가 배정될 때까지는 작더라도 그 학군 안에서 살다가, 아이들이 버스와 자전거를 타고 학교를 다니는 나이가 되면, 외곽에 있는 큰 집으로 이사한다고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옥스퍼드의 외국인 엄마들의 교육열과 결합하여, 유명 초등, 중고등학교 캐치 먼트 라인의 집들은 주변보다 비싼 편이었다. 그렇다면 바로 이 학군을 염두에 두고, 상대적으로 비싸지 않은 적당한 동네를 목표로 집을 보자, 우리의 예산으로는 겨우 몇 채의 작은 테라스하우스들이 떠올랐다. 부동산과 전화로 약속을 잡고, 그 주말부터 아이들과 함께 보러 가는 '전투'에 나섰다.


토요일 아침, 매물로 나온 집 앞에서 부동산 중개업자를 만났다. 그는 멋진 신형차에서 내려 밝고 힘차게 악수를 했다. 이 집은 전형적인 테라스 하우스, 즉 같은 사이즈의 여러 집들이 쭉 붙어있는 구조로, 보통 두채가 붙어있는 집의 형태인 세미 디태치드 Semi detached나 단독주택보다 크기가 작았다. 이 집 역시 들어서자마자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고, 옆에 작은 시팅 룸(거실), 안쪽으로 키친이 있는 전형적인 구조였다. 방은 모두 이층에 있다.

주인들은 거실에 앉아 미소를 보내고, 부동산 중개업자는 여러 번 와본 듯, 능숙하게 안쪽 키친으로 우리를 인도했다. 집을 제대로 둘러보기도 전에, 집 안에 거대한 거북이가 기어 다니는 것을 발견했다. 생각보다 빠르게 기어 다니는 거북이를 의식하지 않으려고 하면서, 서서히 발을 옮기는데 아이들은 벌써 소리를 지르고 신이 났다.

"만져도 돼." 집주인은 너그럽게 아이에게 말해주었지만, 예측할 수 없는 둘째 준이가 귀한 애완 거북이의 등껍질을 때리기라도 할까 봐, 아이를 붙들고 어설프게 걷기 시작했다.

"보시다시피, 굿 사이즈 주방이죠." 테라코타 색으로 칠해진 벽면에 냄비가 가득 걸린 전통적인 주방은 내가 가장 피하고 싶었던 바로 그 퍼즐과도 같은 모양을 자랑했다.


둘째로부터 거북이를 보호하며 이층으로 겨우 올라가자, 부동산업자는 방들을 보여주었다. "두 개의 더블 베드룸, 하나는 싱글 베드룸입니다. 물론 세상에서 제일 큰 방은 아니지만, 지내기는 편안하죠"

세상에서 제일 큰 방이 아닌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지내기 편안할 것도 없다.


드디어 딸인 듯한 여자주인이 상냥하게 말했다. "아직 아이들이 어리네요. 알다시피, 저희 집은 처웰 캐치 먼트예요. 중고등학교 아이들을 둔 가족 중에 벌써 집을 사려는 사람들도 있어서, 금방 나갈 것 같아요." 가장 솔직하고 분명한 '킬링 포인트'였다.


다음 집도 구조는 비슷했지만, 부동산 소개업자는 우리를 무성한 뒷마당으로 이끌었다. "보다시피, 아주 무르익은 가든이죠. 이런 나무들과 풀을 심으려면 많은 시간과 돈이 필요하거든요."


풀을 헤치며 걸어간 곳에는 네모난 초미니의 건물이 서 있었다. 중개업자는 기대하라는 듯, 미소를 지으며  문을 열었다. "타라! 바로 홈오피스죠".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전개였기에 가만히 서 있는 우리를 보고, 중개업자는 설명해주었다. "요즘 영국에서는 뒷마당에 홈오피스를 만드는 것이 유행이에요. 이런 홈오피스를 만드는데 수천파운드가 들거든요. 이 방은 방음, 단열이 되어있어서, 겨울에도 뭐든지 할 수 있어요. 아이들이 기타나 키보드를 칠 수 있고요", 한 살 반 된 둘째를 보면서 "아이들을 피해 들어와 있을 수도 있죠."


실제 매물 중에는, 집을 공사하며 외부 공간, 홈 오피스를 설치한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었다. 한 친구는 지인의 집에 갔다가 정원에 있는 작은 공간에 숨겨진 '홈 바'에 초대받은 적이 있다고 했다. "안에는 모든 도구와 술병이 가득하고 인테리어도 바처럼 완벽하게 되어있고요. 그 안은 정말 다른 세상이었어요. 집안에서는 평범한 아빠인데, 그 안에서는 바텐더처럼 변신하더라고요". 나만의 세상, 취미 방으로도 많이 쓰는 것 같더라고요."


3 베드룸 하우스에서 2 베드룸 하우스로 낮춰보자, 드디어 잘 가꿔진 집도 만났다. 집주인 할머니는 그 집에서 20년을 살았다고 수줍게 웃으며, 마호가니 나무로 된 키친 캐비닛을 보여주었다. "몇 년 전에 큰 맘먹고 장만해 잘 길들였죠. 고기 냄새 미안해요. 오늘 우리 손자들이 놀러 온다고 해서요".  오븐에는 로스트 포크를 먹음직스럽게 구워지고 있었고 자수가 놓인 테이블보가 마호가니 식탁에 곱게 깔려있었다. 공들여 돌본 아름다운 집이 분명했지만, 자꾸만 우리 아이들이 마호가니 서랍장에 연필로 찍찍 긋는 장면이 떠올랐다. 이곳저곳을 보여주는 할머니께, "다락이 있는데 혹시 다락방을 터서 3층에 방을 하나 더 만들 생각은 안 해보셨는지요?" "아니요, 이 집은 저와 남편에게 딱 적당한 크기거든요. 계단을 그리 많이 오르내리고 싶지 않고요".


우리가 본 집들은 멀지 않아, 하나씩 팔려 앱에서 사라졌다. 집이 가진 히스토리, 매력, 크기들이 우리와는 맞지 않았지만, 각자의 주인을 찾아간 것이다. 그리고 배운 것은 그동안 우리가 가지고 있던 '그저 적당한 집'의 의미가 도리어 맞추기 어려운, 너무나 애매한 것이라는 것이었다. 이곳에서, 그저 살만한 집을 찾는 것은 불가능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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