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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우 Oct 15. 2023

미련조차 남지 않던, 기나긴 소개팅

나를 ㅠㅠㅛㅛ하게 하는 것들 - 그뿐인 것들

        

  평소 커피를 거의 마시지 않는다. 안 좋아하기 때문이다. 싫다는 것은 아니다. 내 기호에 커피가 부합한다고 느낀 적이 일평생 단 한 번도 없었을 뿐이다. 누가 주면 주는 대로 마시고, 굳이 내가 골라서 마신다면 따뜻한 커피다. 나 스스로 커피를 마시는 때라 한들 커피 자체가 당겨서 마시는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노릇이다. 내게 커피를 마시는 일이란 역하지 않은 향미가 가미되고 카페인을 함유한 따뜻한 물로부터 발견 가능한 약간의 위안을 찾는 행위에 불과한데, 커피와 동등하거나 그보다 양질인 위안을 줄 수 있는 음료는 세상에 많다.

  문득 생각해보니 에스프레소에 황설탕을 넣은 후 젓지 않고 마시는 일을 좋아하긴 한다. 하지만 재차 생각건대 에스프레소를 마신 뒤 바닥에 깔린 축축한 황설탕을 스푼으로 긁어먹는 일이 좋은 것이지 에스프레소 자체가 좋은 것은 아니다. 나는 종이 포장을 벗겨가며 앉은 자리에서 홀로 각설탕을 몇 개씩 와작와작 씹어먹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기도 하고.

  마지막으로 보온 기능을 끈 일이 언제였는지 대관절 상상조차 가지 않는, 에스프레소 머신 아닌 커피메이커가 내린 커피를 마시는 일도 좋다. 크레마가 아니라 시허연 거품이 둥둥 뜬 채 뚱뚱하고 넙데데한 유리 주전자에 며칠씩 고여서 향은 다 날아간 연갈색 커피 말이다(커피메이커에 들어가는 분쇄된 커피를 마지막으로 교체했을 시점은 가늠하지 않는 편이 정신 건강에 이롭다). 한국에서 이런 커피는 대개 약간은 촌스러운 호텔이나 사무실 한구석에서 목격된다.

  객실의 매트리스까지 뒤집은 후에도, 사무실의 캐비닛까지 뒤엎은 후에도 그 커피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해외로 눈을 돌려봐도 나쁘지 않겠다. 예컨대 네브래스카의 옥수수밭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운전하던 중 향후 6시간 이상 직진밖에 할 일이 없다는 사실에 실존적인 위기를 맞닥뜨리게 될 때, 잠시 들러 혈당 수치를 제고할 수 있는 국도변 다이너 같은 곳(주유소를 겸하며 화장실은 지저분한 곳이 특히 믿음직하다). 주인은 골드 러시와 남북 전쟁 이래 이곳을 찾은 백인 아닌 손님은 처음이라는 표정으로 당신을 맞은 뒤, 표면의 광택이 흐릿해진 스테인리스 주전자를 들고 와서 베트남전 무렵까지는 흰빛이 남아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누렇게 때 낀 잔에 커피를 부어줄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이역만리에서 맛본, 커피콩으로 만든 것이 분명한 음료에서 커피향은 간데없고 숭늉의 맛이 날 뿐인 일이 놀라운 나머지 남다른 감회에 푹 젖고 마는 것이다──아아, 나는 콘벨트에 혼자 앓아 누워서 어느 다이너 올드맨을 뵈이었는데, 햄버거 패티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울고, 길은 외줄기 미주 300마일,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라이더…….

  감상은 이만 끊기로 하자. 내가 이러한 숭늉맛 커피를 마시길 좋아한다손 치더라도 여전히 난 커피를 좋아한다고 할 수 없다. 그저 숭늉을 좋아하지만 오직 숭늉을 마시기 위해 솥이나 냄비에 밥을 지을 정도로 부지런하지 못한 탓에 이따금 숭늉맛 커피를 마실 뿐이다. 국내 호텔업계가 단합하여 객실마다 숭늉 메이커를 비치하기로 결의하거나 네브래스카 시골에 소재한 다이너의 주인장이 돌솥째 숭늉을 날라 온다면 나는 커피를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이다. 설령 막 햄버거나 토마토 마카로니 수프나 소시지와 베이컨과 서니 사이드 업 에그를 곁들인 팬케이크를 끝장낸 후라도 말이다(이런 경우 차라리 콜라가 낫긴 하겠지만).

  한국에서든 미국에서든 하다못해 오천축국에서든, 도대체 왜, 어째서 내가, 구태여 원해서, 무려 커피를 마시겠는가?     


*     


  세상에 있는 커피의 가짓수는 많다. 내가 좋아한다고까지 말할 수 있을 커피도 어딘가에 존재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에 드는 커피를 여태 만나지 못한 것은 놀랍기 그지없는 일이다. 커피라는 음료 자체의 한계 탓이 아니라면, 이는 거대한 국제 음모를 상정하지 않고서는 설명될 수 없다. 중국 윈난성에서 대엽종 차나무를 가꾸는 농부 콩 씨로부터 케냐 케리초의 홍차 공장에서 차엽의 유념을 담당하는 음왕기 씨에 이르기까지, 차 업계 종사자의 대다수가 공조하는 상당한 규모의 음모일 것이다. 이 공모자들은 목표는 내가 맛있는 커피를 접할 기회를 최대한 차단함으로써 나로 하여금 더 많은 차를 소비하게 하는 것일 테다.

  일개인 대 세계 차 업계라는 지극히 불리한 악조건 속에서도 나는 커피의 맛을 알고자 나름대로 영웅적인 항쟁을 이어나갔다. 드리퍼나 프렌치프레스로 커피를 내리는 일을 넘어 모카포트, 심지어는 제즈베까지 동원해 커피를 끓여봤다(터키에서는 전통적으로 상견례 때 예비 신부가 제즈베로 커피를 끓이는 모습을 보고 그 의중이나 됨됨이를 평가한다던데, 내가 터키인 예비 신부였더라면 솜씨는 몰라도 노력만은 갸륵하다는 평가를 들을 수 있지 않았을까). 로스팅된 원두를 갈아 커피를 준비하는 과정은 즐겁고 향기로웠지만 그 결과물이 특기할 정도로 맛있지는 않았다.

  원두도 여러 종류 시음했다. 자메이카 블루마운틴, 하와이 코나, 코스타리카 카라콜리……. 시트러스 계열의 향이 나는 모카 마타리 원두, 포도향이 나는 시다모 원두 등은 신기하고 인상적이었지만 그들로부터 추출한 커피의 맛은 감동이 덜했다. 비유하자면 모과나 샌달우드의 향이 좋다고 해서, 그들을 생으로 우적우적 씹어먹거나 다른 것은 전혀 넣지 않은 채 맹물에 끓여 마신다면 빈말로나마 맛있다고 할 수 없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어쩌면 내 실력이 문제일 수 있다. 남이 내려주는 드립 커피의 맛을 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이 글을 시작하기 전 나는 또 한 번 커피에 기회를 주기로 했다. 핸드드립을 하는 카페를 찾아 케냐 AA 커피를 주문했다. 향긋했고 따뜻했으며 산미가 있었고, 그뿐이었다. 커피는 맛있지 않았고, 일부러 핸드드립 커피를 사서 마시는데도 커피에 관해 쓸 말은 별달리 떠오르지 않았다.


*     


  종국에 나는 커피를 좋아할 수 없다는 이야기로 에세이를 쓰게 되고 말았다. 물론 내가 커피의 세계에서 한국이라는 우물 안 개구리일 수도 있다. 과테말라나 에티오피아로 원정을 떠난다면 맛있는 커피를 만날지도 모른다. 또 커피와 관련하여 내가 직접 해보지 않은 일 중에는 로스팅이 있다. 인제 아예 생두를 구매해야 할까? 마침내 원두 배전에 도전할 때가 된 것일까?

  글쎄, 나는 내가 오로지 커피를 마시기 위해 10시간 이상의 비행을 감수하지 않으리라는 점을 안다(기내에서도 커피는 사양이다). 대개 킬로그램 단위로만 주문을 받는 생두를 사서 포대로 쌓아두지도 않을 것이다. 내 경험이 부족해서 커피가 맛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리라는 지적은 십분 인정할 용의가 있으나 맛있는 커피를 찾기 위한 경험을 하겠다고 더 애써보기에는 의욕이 부족하다. 원두 등을 볶는 일을 뜻하는 ‘배전焙煎’은 일본을 경유해 들어온 표현으로 일본어에서는 ‘바이셍ばいせん’이라 읽는다. ‘바이셍’까지 하기에는 의욕, 즉 ‘이요꾸いよく’가 ‘아리마셍ありません[없습니다]’이다.

  이를테면 나는 커피와 소개팅을 했고 그의 첫인상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딴에는 노력하며 애프터를 이어나간 셈이다. 어쩌다 나는 커피를 만났고, 대체로 남들은 참 좋다고 평가하는 괜찮은 상대였고, 내가 아는 한 상대방 쪽에서도 내가 별로라고 한 적은 없었다(과묵한 소개팅 상대이긴 했지만). 그런데 애프터를 아무리 많이 하든, 만나서 무슨 짓을 해보든 도무지 좋아지지가 않는데 어떡하란 말인가.

  셰익스피어가 쓴 본문상 로미오와 줄리엣은 일요일에 처음 만나 목요일 동틀녘에 함께 죽는다. 눈만 확실히 맞으면 닷새도 채우기 전에 사랑 탓에 죽을 수 있다. 나와 커피의 관계는 닷새 만에 죽네 사네 소리가 나올 사이는 아니었고, 그냥 계속 미적지근하기만 했다.

  지금도 나와 커피는 비교적 나쁘지 않은 관계를 유지하는 중이다. 서로 남달리 좋아하는 것도 아니면서, 내 주변에 그를 아는 사람이 많고(내 지인 중 그가 모르는 사람이 있기나 한지 모르겠다) 세상이 좁은 까닭에 그래도 거듭 만날 일이 생긴다. 그를 의도적으로 만나려 하지는 않지만 만나게 되면 적극적으로 밀어내려 하지도 않는다.

  한때 죽네 사네 사랑했던 사이라면 한번 결정적으로 헤어진 끝에 미워할 수라도 있었을 것이다. 내게는 커피에 대하여 그가 싫다고 명시적으로 말할 수 있을 조금의 애정마저 없었다. 특출난 매력을 찾아볼 수 없었던 그를 상대로 미련한 미련을 남길 까닭은 없으니, 나쁘지 않은 일이다. 어차피 나의 옛 소개팅 상대는 워낙 인기가 많아서, 그의 매력을 알아보고 나보다 더 잘해줄 사람이 널려 있기도 하고.

  나와 커피는 앞으로도 이렇듯 덤덤한 사이로 남을 것 같다. 언제든 커피를 다시 만나게 되리라는 것쯤은 아니, 그를 무시할 생각은 없다. 다만 커피와 마주칠 때마다 나는 그에게 특별한 감정은 없이, 무례하지는 않은 선에서 관심을 담아 이렇게 안부를 물을 것이다.     

  오겡끼데스까お元気ですか。 [잘 지내죠?]

  와따시와 겡끼데스私は元気です。 [전 잘 지내요.]      

    

작가의 말

  미움은 슬프지 않다. 오히려 무감각할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슬픈 일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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