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투어

반짝반짝 빛나는 길, #3 아직도 Salta

by 일로나

결국 그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나는 여전히 살타에 머물러야 했다.

비행기를 탄다던지 다른 루트를 찾아볼 수 있었지만, 난 그러지 않았다. 삼일째가 되는 날엔 무슨 오기 같은 것이 생겼다. 필히 나는 살타에서 버스를 타고 아타카마로 갈 것이라고.


살타에 머무는 동안의 나의 일과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오전에 한번 오후에 한번 터미널로 가서 버스회사 직원에게 상황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삼일 동안 거의 똑같은 질문과 대답이 나와 그 직원들 사이에 왔다 갔다 했다.

"내일은 버스가 떠날 수 있나요?"

"버스는 있지만 장담할 수 없어요. 숙소로 연락드릴게요. 가서 기다리세요."

말하는 것만으로도 그들도 지치고 나도 지치는 대화였다.


삼일째 되는 날 거의 포기하다시피 하고 집(파라과이)으로 돌아갈까 하는 생각을 하며 골목을 걷다가 어떤 호객꾼에게 걸렸다. 살타도 관광도시여서 크고 작은 여행사들이 즐비한 골목이 있다. 그곳을 넋 놓고 지다 가다 호객꾼에게 무슨 빌미를 줬는지 나에게 따라붙어 투어 상품에 대해 아주 열심히 설명해댔다. 나는 여행하면서 절대 아니 한 번도 호객꾼에게 이끌려 상품 산적도 음식점에 들어간 적도 없다. 무심하게 광고지만 받고 그를 내 주위에서 쫓아내고 광고지를 찬찬히 봤다. 살타 인근 마을로 와인 투어와 유적지로 하루 투어를 가는 상품이었다. 나름 괜찮은 상품인 것 같아 다른 여행사도 둘러보고 광고지를 비교해 봤다. 내일 어차피 할 것도 없고, 버스 출발은 보나 마나 못할 것이고... 패키지 투어나 가볼까?


여러 장의 투어 상품 광고지를 비교하고 나름 가격에 대한 기준을 잡았다. 그리고 골목을 거닐다가 마음에 드는 여행사를 골라 들어갔다. 내일 일일투어를 가고 싶다고 했더니 웬 떡이냐 싶었던지, 처음엔 나를 띄엄띄엄 보고 아주 비싼 가격을 불렀다. 나는 그 남자를 한번 쏘아보고는 됐다고 나오려고 했다. 그랬더니 그가 나를 다시 부르며 얼마에 가기를 원하냐고 한다. 나는 내가 생각했던 가격을 말했다. 그는 절대 그 가격엔 안된다고 고개를 흔들며 나를 도둑 보듯이 봤다. 흥! 나도 됐어. 또 나가려고 하는데 나를 잡더니 '원래 그 가격엔 안되지만 내일 투어에 딱 한자리가 남았으니까 너한테 싸게 줄게.'이런다. 하... '그래 고맙다'하고 계약서를 적고 돈을 지불하고 나왔다. 그의 말이 정말인지 거짓말인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에게 나쁘지 않으니까.




새벽에 오기로 했던 투어버스는 5분 정도 기다렸더니 호스텔 앞에 도착했다. 남미에서 이 정도는 칼같이 시간을 맞춘 거나 다름없다. 미니버스에는 세 명 정도 앉아 있었다. 거의 두 시간 가까이 시내 이곳저곳 다니면서 사람들을 태우고 정말 어제 그 여행사 직원의 말처럼 만석이 되어서야 목적지를 향해 내달렸다.


살타 주변에는 기암괴석으로 유명한 유적지가 많다. 그리고 주변의 작은 마을에는 와인 양조장이 많이 있다. 그래서 이 두 가지를 묶어서 관광 투어 상품으로 만들어 놨다. 이 투어가 유명해진 탓인지 자국민 관광객도 많이 오는 편이라고 한다. 우리 버스에 탄 사람들의 절반은 아르헨티나 사람이고, 나머지는 외국인 여행자들이었다. 동양인은 나 혼자였다. 처음엔 혼자 온 사람도 나 혼자인 듯했는데, 나중에 혼자 왔다는 브라질인 제시카를 알게 되어 계속 같이 다녔다. 서로 사진 찍어주고 점심도 같이 먹고, 다행히도 제시카가 스페인어를 할 줄 알아서 소통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사실 이름 말할 때 좀 부끄럽기도 했다. 나도 제시카라는 이름을 쓰기 때문이다.


"난 제시카 야."라고 그녀가 말했다.

"어, 나도 제시카인데. 하하 그런데 진짜 이름은 아니야. 내가 붙였어."

"왜? 진짜 이름은?"

"한국 이름은 발음이 어려워서 부르는 사람들이 어려워하길래 영어로 이름을 하나 붙여줬어. 내가 나에게."

"한국 이름이 뭔데?"

그녀는 내 한국 이름을 두어 번 따라 해 보더니 진짜 어렵다며 그냥 제시카로 부르겠다고 했다. 그렇게 우린 서로를 제시카로 부르며 하루 종일 같이 다녔다. 혼자 간 패키지여행에서 짝꿍이 생겨서 기분이 좋았다. 가이드도 너희 둘이 친구가 되어서 정말 기쁘다며 자신의 수고가 덜어져서인지 우릴 보고 흐뭇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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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어는 생각보다 지루하지 않았다. 황토산을 몇 군데 둘러보고 올라가고(사실은 황토색 언덕), 붉은 바위로 둘러싸인 광장 같은 데를 가서 한참을 있다가(여기가 메인), 와인 양조장을 둘러보고 와인도 시음하고 치즈도 맛보고, 작고 예쁜 마을에서 점심을 먹고 쉬었다. 그 마을의 비아그라 아이스크림이 유명하대서 먹어봤는데 그냥 민트맛이었다. 그리고 또 기암괴석과 또 황토 언덕을 구경하고, 또 아쉬운지 기암괴석이 있는 들판에 잠시 내려서 단체 사진을 찍고서야 투어가 끝났다. (항상 패키지 투어의 끝은 단체 사진이다. 한국이나 외국이나.) 살타로 돌아오니 7시가 다 되었다. 제시카와는 아쉽지만 버스에서 헤어졌다. 그녀는 내일 아르헨티나 남쪽 어느 도시로 간다고 했다.


피곤해서 바로 숙소로 가서 쉬고 싶었지만 혹시나 모르니까 터미널에 또 들러서 확인해 봐야 했다. 터미널에 갔더니 다행히도 아직 문을 닫지 않았다. 창구로 얼굴을 내미니 직원이 반갑게 인사한다. (이제 버스회사 직원들과도 친하게 되었다. 그들도 진심으로 내가 살타를 떠날 수 있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아주 기쁜 소식을 들려주었다. 드디어! 내일 버스가 출발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오늘 오후부터 국경이 열렸다는 것이다. 너무 기뻐서 그 직원에게 고개까지 숙여가며 고맙다고 인사했다. 그리고 다시 버스표를 작성하고 내일 출발 시간 30분 전까지 오라고 했다. 그런데 출발이 3시? 새벽 3시? 재차 확인했더니 혹시나 모르니 일찍 출발할 거라고 했다. 아, 아주 일찍이긴 하지만 떠날 수 있다는데, 이 정도는 괜찮다.


아주 가벼운 발걸음으로 투어의 피곤함 따위는 다 잊고, 숙소로 가는 길에 맛집 레스토랑에 들러 꿀맛 같은 스테이크와 살타 맥주를 거나하게 마시고, 마지막 밤이니까 또 살사 카페 거리로 가서 맥주도 마시고 춤 구경도 하면서 거의 열 시가 넘어서 숙소에 들어갔다. 숙소 직원이 나를 아주 반갑게 부른다. 아주 좋은 소식을 가지고 있다면서.

"낮에 버스회사에서 전화 왔는데, 내일 버스가 출발할 수 있을 거래."

"응, 나도 터미널 가서 확인했어. 고마워. 그래서 기분이 좋아."

"드디어 내일 살타에서 떠날 수 있게 되었네. 축하해!"


살타를 떠나는 일이 축하받을 일이 되다니... 기분이 묘했지만 그동안의 나의 괴로움을 아는 직원의 그 한마디가 기쁨을 더 해주었다. 그래 고맙다. 내일은 정말 살타를 떠날 거야!

살타, 제발 이젠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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