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반짝 빛나는 길, #2 여전히 Salta
살타는 마음에 드는 도시였다. 고풍스럽기도 하고 세련되기도 했고, 예쁜 바(BAR)들도 많았다. 무엇보다 맥주가 맛있었다. Salta에서 만들어 거의 Salta에서만 소비되는 그 고장의 맥주인데, 내 입맛을 강타해서 아쉬운 생각에 첫날부터 낮술로 수시로 마셔주었다.
하루가 아쉽다는 생각을 하지 말았어야 했나... 난 며칠 동안 살타를 빠져나올 수 없었다. 꼭 개미지옥에 갇힌 것처럼.
처음 도착하자마자 나는 이곳에 하루밖에 있지 못하니까 오늘 부지런히 돌아다녀야지, 가고 싶은 곳, 먹고 싶어서 찜해뒀던 식당은 오늘 다 가야지라고 생각하면서 정말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푸니쿨라 타고 전망대도 올라가고 토산품 시장도 들르고 성당도 몇 군데 다 돌고, 예쁜 가게도 둘러보고 카페에서 맥주도 마시고, 맛집으로 유명한 레스토랑에 오늘의 첫 손님으로 입장했다(이곳 사람들은 저녁을 진짜 늦게 먹는다. 8시가 다 되어서 갔는데 내가 첫 손님이었다.). 그리고 대(大)자같은 바비큐를 시켜서 살타 맥주와 함께 실컷 뜯고 씹고 먹고 마시다 숙소에 돌아갔다. 아주 기분이 좋아서 숙소 직원과도 약간의 수다를 떨다가 내일 새벽 4시에 택시 예약을 하고 아주 흡족하게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새벽 4시에 오기로 했던 택시가 오지 않아 발을 동동거리다가 15분쯤 기다려 겨우 택시를 탔다. (남미는 택시 예약을 했다고 해서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택시 기사들이 대부분 늦게 오거나 아예 나타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특히 이른 아침에는.) 늦을까 봐 초조해하며 택시를 탔는데, 10분도 안 걸리는 거리여서 다행히 시간 안에 도착했다.
그러나! 버스 회사 사무실이 닫혀 있었다!
놀라서 이리저리 돌아다녀 봤지만 직원들은 없었고, 나 외에는 기다리는 승객도 없었다. 머릿속이 하얘지고 무슨 일인지 얼떨떨하기만 했다. 겨우겨우 옆 옆 사무실 직원에게 물어봤더니 버스가 안 떠날 거라고 했다. 뭐? 왜? 나도 모르게 소리가 커졌다. 흥분한 나에게 그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으려 했고 조금 더 기다리면 내가 예약한 버스 회사의 직원이 올 거니까 기다려 보라고만한다. 이 무슨 일인가... 잠시 후에 키 큰 남자 하나가 배낭을 메고 나처럼 이리저리 살피며 뭔가를 찾으려는 것 같았다. 다가가 말을 걸어보니 그도 아타카마로 가는 나와 같은 버스를 예약했다고 했다. 동지를 만나서 반가웠다.
출발 시간인 다섯 시가 넘어도 직원은 나타나지 않았다. 다른 승객들도 더 나타나지 않았다. 춥고 배고프고 너무 피곤했다. 인내심의 한계가 느껴지던 그쯤에 직원이 나타났다. 그는 우리를 보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기다리라며 사무실 문을 열고 버스 회사 사무실이라는 그 박스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에 창구로 나타나 우리에게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폭설로 인해서 칠레 국경이 닫혀서 버스가 갈 수 없게 되었는데, 너희 둘은 숙소를 적지 않아서 연락을 할 수 없었다. 숙소를 적어 뒀더라면 그쪽으로 연락을 해 줬을 거다. 그러니 숙소를 안 적은 너희 잘못이지 나는 잘못이 없다. 이런 말들이었다.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왜 우리 외에 다른 승객들은 없는지...
그리고 남미에서 폭설?! 폭설이라니! 믿을 수가 없었다. 나름 남미를 잘 알고 있는 나인데, 남미에서 폭설이라는 말은 처음 듣는 말이었다. 믿을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그럼 어떻게 하냐고 하니까, 오늘 출발하려던 버스가 내일 출발하기는 할 텐데 장담할 수 없다고 한다. 뭐? 그럼 오늘처럼 또 출발 못 할 수 있다는 거야? 안돼! 난 내일은 꼭 가야 해! 했더니 직원은 아주 피곤하다는 표정으로 다른 버스 회사도 모두 마찬가지라고 했다. 취소를 할 거면 취소하고, 내일까지 기다리려면 기다리라고 했다. 난 생각을 좀 해보겠다고 하고 다른 버스 회사들 창구에 가서 아타카마 표를 애타게 찾았다. 그러나 다른 버스 회사들도 마찬가지였다. 하긴, 국경이 닫혔다니 다른 버스들도 마찬가지겠지...
나는 내일 표로 다시 등록했다. 직원이 숙소 이름을 적어주면 비상 상황에 전화하겠다고 했다. 아는 숙소라고는 어제 묵었던 호스텔 밖에 없는데, 영락없이 오늘도 거기로 가야 했다. 같이 기다리던 독일인 키 큰 친구는 취소하고 다른 루트로 가겠다고 했다. 비행기를 타려나...? 나도 비행기를 생각했지만 아타카마로 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칼라마 공항이 악명이 높다고 소문이 나서 되도록이면 피하고 싶었다. 그 친구와는 터미널에서 서로의 행운을 빌며 바이 바이 했다.
그리고 호스텔로 돌아가 이런 황당한 사연을 직원에게 이야기하고 하루 더 묵겠다고 했다. 직원은 흔하지 않지만 칠레 국경 근처에 눈이 올 때가 있고 국경이 닫힐 때도 많다고 했다.(정말 칠레는 국경을 잘 닫는다. 배낭여행 다니며 칠레 국경이 닫혀서 낭패를 본 적이 이후로도 몇 번 더 생겼다.)
착하고 친절한 호스텔 직원이 체크인 시간은 아직 멀었지만, 정리가 된 침대를 줄 테니 잠을 자고 싶으면 자라고 했다. 고맙기도 해라... 이후 이 직원과는 며칠 있으면서 거의 친구가 되었다. 잠을 자고 나서 아타카마에서 만나기로 했던 지인에게도 연락하고, 오전 내내 호스텔에 있다가 점심 먹을 겸 환전할 겸 해서(살타는 은행 거리에서 암 환전을 할 수 있고 가격도 괜찮다.) 나왔다가 저녁때까지 골목골목을 돌아다녔다. 어제 감탄에 마지않았던 그 광장을 수도 없이 왔다 갔다 하면서, 그 예쁜 핑크색 성당을 질리도록 보면서, 하루 종일 걷고 예쁜 카페에서 맥주도 수시로 마시면서 하루를 보냈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이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며 나름 괜찮은 하루를 보냈다. 이제 정말 더 이상 아쉬움이 없었다. 내일은 떠날 수 있겠지!
그런데 숙소에 갔더니, 숙소 직원이 안 좋은 소식이라며... 버스 회사에서 전화가 왔었다고 했다. 내일도 국경이 열리지 않을 것이고 그래서 버스가 출발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뭐?! 진짜?! 나는 소리를 안 높일 수가 없었다. 호스텔 직원에게 화를 내는 것은 아니라고 했지만 너무나 화가 났다. 아놔~ 진짜. 이제 그만 살타에서 떠나고 싶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