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변화

느끼기 #1

by 현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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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아름다움을 한껏 느낄 수 있는 가을의 백미는 단연코 단풍이다. 울긋불긋이라는 단어로는 모자랄 정도로 총천연색의 아름다움이 온 도시를 물들이고 있다. 정말 놀랄 정도로 노란 절정의 은행나무에 말문이 막힐 정도이다. 그 예쁜 단풍을 보며 언젠가 친구랑 나누었던 대화이다.

"정말 절정이네 절정. 정말 예쁘다 단풍.”

“그러게 정말 절정이다. 근데 저거 낙엽은 다 누가 치우냐.”

“너 왜 이렇게 낭만이 없어졌냐. 치우는 이야기부터 하고.”

“그러게. 나도 왜 이렇게 낭만이 없어졌나 모르겠다. 일이 잘 안 풀려서 그런가.”


가끔 너무나도 일상적인 것들을 너무나도 일상적으로 지나치고 있진 않을까. 살아있음을 열렬히 감사해도 모자란 한 번뿐인 이 생을, 한없이 가벼운 삶으로 살고 있진 않은가 반성해 본다. 그 시간마저도 충분히 내 가슴으로 느낀다면 스스로 불안의 굴레 속으로 들어갈 일이 없어질 테인데. 아침에 일어나서 밥하고 애들을 챙기고 출근해야 된다는, 늦으면 안 되는데라는 불안보다는 또 하루가 시작된다는 즐거움과 아침밥과 반찬 하나하나를 즐기는 즐거움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싶다. 차가 막혀 짜증이 나는 출근길이 아니라 계절의 변화를 가슴으로 느끼며 오늘은 어떤 일이 있을지 기대하며 걸어가는 길이고 싶다. 듣기 싫은 기계음과 시끄러운 소리로만 가득한 하루가 아니라 새 지저귀는 소리, 고요한 적막, 다정다감한 말들로 가득 찬 하루였으면 한다. 머리 아픈 매연으로 코가 마비되기보다는 향긋한 커피향과 나무 내뿜는 향긋함을 가슴으로 느끼고 싶다. 그런 하루를 가슴으로 느끼며 살아가고 싶다.


푸르름으로 가득 차다 못해 후각까지 초록빛으로 마비시켜버리는 이 무더운 여름을 지나면, 한 가지 단어로 표현하기 힘든 형형색색의 색만큼이나 다양한 향들로 코를 즐겁게 하는 가을이 올 것이다. 발에 잔뜩 밟힌 나뭇잎에서 살짝 올라오는 젖은, 그렇지만 그리 불쾌하지 않은 은은한 향. 높고 맑은 하늘에서 시작하는 것만 같은 청량함이 주는 실체 없는 상쾌한 향. 울창한 여름의 풀냄새와는 다른 신선한 숲의 향. 심지어 길 가다 코를 찌르는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짓이겨진 은행을 마주하게 되면 유일한 가을의 저주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이내 열매가 없는 은행나무는 수나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 이유 없는 연민을 느끼기도 한다. 수나무의 그 쓸쓸함 때문에, 떨어진 은행열매의 고약한 냄새조차 나에겐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가을의 향이 된다.


사무실 뒷산 산책을 나서는 순간이 유난히도 즐거워진다. 데크길을 따라 펼쳐진 나무 사이를 걷고 있노라면 폐포 하나하나 사이로 신선한 공기가 가득 차는 것 같다. 온몸에 살짝 도는 땀방울이 여름의 찌든 그것과는 선선한 느낌 자체가 다르다. 바짝 말랐던 땅이 촉촉해지고, 시원하다 못해 살짝 서늘해지는 나무 그늘 속에서 흙을 밟으며 걷고 있는 그 순간, 나는 살아 있다는 걸 느낀다. 고어텍스에 등산화를 신고 쌩쌩 산을 오르는 사람도, 지팡이에 의지하여 겨우겨우 한 발자국 오르는 어르신도, 유행하는 맨발 산행을 하는 동네분들도, 모두 내가 살아있다는 오로라를 내뿜고 있는 듯 느껴진다. 이 계절은 모두가 각자의 찬란한 생명의 향을 내뿜고 있다. 모든 게 살아있음을 느끼는 이 순간, 현실과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그저 불안해하기엔 이 소소한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는 일은 꽤나 신성하다. 짧다면 짧은 이 순간의 향연은 그저 살아내고 있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다는 걸 몸소 느끼게 해준다.


그 언젠가 25층 내 사무실 자리에서 밖을 내다보며 계절의 변화를 알게 되었던 순간들이 있었다. 꽤나 오랫동안 나에게 계절의 변화는 운전하는 출퇴근길의 가로수의 색깔 차이였고, 입고 다니는 정장과 셔츠 속에 카디건을 입냐 안 입냐의 차이 정도였다. 온전히 그 계절을 느끼기 위한 노력을 할 여유가 없어서일까, 느끼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계절을 느낄 수 없었을까. 그 계절의 향은 그저 무색무취의 건조함이었을까. 좀 더 온전히 그 계절을 느꼈었다면, 나는 좀 더 달라졌을까.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빛을 보기 위해 눈이 있고, 소리를 듣기 위해 귀가 있듯이, 너희들은 시간을 느끼기 위해 가슴을 갖고 있단다. 가슴으로 느끼지 않은 시간은 모두 없어져 버리지. (중략) 허나 슬프게도 이 세상에는 쿵쿵 뛰고 있는데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눈멀고, 귀먹은 가슴들이 수두룩하단다.”

“그럼 제 가슴이 언젠가 뛰기를 멈추면 어떻게 돼요?”

“그럼 네게 지정된 시간도 멈추게 되지. 아가, 네가 살아온 시간, 다시 말해서 지나 온 너의 낮과 밤들, 달과 해들을 지나 되돌아간다고 말할 수도 있을 거다. 너는 너의 일생을 지나 되돌아가는 게야. 언젠가 네가 그 문을 통해 들어왔던 둥근 은빛 성문에 닿을 때까지 말이지. 거기서 너는 그 문을 나가게 되지.”

-미하엘 엔데 소설 <모모>, 한미희 옮김, 비룡소, 1999, 217-2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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