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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유 Dec 13. 2024

에필로그: 세상이 어지러울지라도 짬푸하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가족의 안락한 집은 여기 그대로 있을 것이다

 아파트에 가계약금을 걸었던 날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사실  때까지만 해도  시리즈는 가계약금을 거는 순간까지 쓰고 마무리하는 걸로 생각했다. 혼란 가득하고 예측 불가능한 2020년대 대한민국 부동산사를 얕잡아  것이다. 정부가 냅다 대출 자체를 규제해버릴 거라곤 생각도   탓에  시리즈는 생각보다 길어지게 됐다. 돌아보니 김현미  장관님이 선녀로 보였다는  진심이다.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고  아파트 매수를 서두르게    장관님께는 아직도 감사한 마음이다.


남동생의 말을 빌리자면, 안방이 지난 번 집의 거실보다 넓다. 두 아이들이 아무리 집을 어지럽혀 놔도 별로 지저분해 보이지도 않는다. 집이 넓으니 오히려 정리하기도 쉽고, 환기도 원활하며, 좌우당간에 쾌적하다. 우리의 첫 자가 아파트는, 둘째를 낳은 직후에는 떨어진 머리카락을 치우지도 못할 정도로 어지럽혀졌지만 도저히 손을 쓰기가 어려웠다. 아니 손을 쓰고 싶지가 않았다. 치워 봤자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확실히 넓은 공간은 마음에도 여유를 준다. 이사를 하고 난 뒤 아이들에게 화내는 일은 거의 없어졌다(고 생각한다).


첫째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면, 둘째를 안고 아파트 단지 밖으로 살짝 나온다. 2분을 걸어가면 스타벅스가 있다. 며칠 사이 추워져 오늘 아침에는 뜨끈한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자연스레 모닝 커피는 매일 아침의 루틴이 됐다. 나 말고도 아이를 데리고 나온 엄마나 아빠들이 많다.


지난 번 집에서 제일 가까운 스타벅스는 도보 25분 거리에 있었다. 가장 가까운 카페는 메가커피였는데 이마저도 걸어서 10분은 가야 했다. 커피를 마시고 돌아오는 길에는 마트에 들러 점심과 저녁 메뉴에 따라 간단히 장을 본다. 이마트 에브리데이, GS 프레쉬, 롯데슈퍼가 전부 도보권 안에 있다.


좋지 않은 점도 물론 있다. 청소기를 돌리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귀가 후에 옷을 아무데나 대충 벗어두지 못하고 다 드레스룸의 제자리에 잘 걸어놔야 하며, 집 안에서 물건 하나를 찾기 위해 먼 거리를(?) 다녀와야 하고, 배달 음식을 먹거나 외식하는 일은 거의 사라졌다. 그러나 큰 불편은 아니다. 그보다는 서재에 꽂힌 족히 몇백권은 될 법한 책들을 볼 때, 또 드레스룸에 걸린 수많은 옷과 가방들을 볼 때 느끼는 뿌듯함이 더 크다. 아이들이 자라고 나면 또 대대적으로 방 개편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좀 골치 아프지만, 그래도 지금은 장난감이 가득한 큰 방에서 둘이 같이 노는 것을 지켜보는 게 마냥 귀엽기만 하다.


무엇보다도 가장 좋은 건, 아이들의 미래를 상상할 때 배경이 이 집이라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다른 주거지를 생각할 필요가 없다. 어딘가로 떠나거나 옮기지 않고 평생을 여기서 살 수도 있다. 이제는 ‘짬푸’에 욕심내지 않아도 된다. 그 생각이 마음에 더없는 여유와 안정을 준다.


서울 시내 뉴타운의 40평대 브랜드 아파트에 자가로 사는 게 그렇게 중요한 가치냐고 물을 지도 모른다. 당연히 아니다. 단칸 월세방에 살면서도 행복할 수 있다. 나의 첫 신혼집은 투룸 오피스텔이었지만, 거기서 나는 매일 웃었다. 지금도 즐거웠던 기억밖에 없다. 누군가는 결혼 후 첫 집이 아파트도 못 되냐고 손가락질했을지 모르지만 당시에는 그야말로 ‘알빠노’였다. 교통 편하고, 놀 거리 많은 집이 연애하듯 살던 신혼부부 시절에는 최고였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또 그 아이를 키운 뒤 교육하고, 이후 늙어갈 나를 생각한다면 몇 년 내 거처를 옮길 걱정 없이 쭉 안정되게 살아갈 집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집의 주변 인프라가 발달돼 있다면 더더욱 좋을 것이고.


 시리즈를 연재하던 와중에 시중은행 대출 규제라는 암초가 발생(?)하는 변수가 생겼다면,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는 45 만의 비상 계엄이라는 황당한 사건이 벌어졌다.  모든 사건을 촉발한 작자는  시간짜리 내란이 어디 있느냐고 주장했다만 고작   시간 때문에  나라의 정치, 문화, 사회 그리고 경제까지 국민 생활 전반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고 말았다. 부동산도 예외는 아니다. 대출을 틀어막은 와중에 말도  되는 계엄으로 인해 경제 전반이 얼어붙었으니 한동안 상승기는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집값이 어쩌면 떨어질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면 최고 상승기류일 때 집을 산 것이 다소 아쉽긴 하나, 당장 떠날 게 아니면 집값은 이제 큰 의미가 없다. 세상이야 언제든 계속 어지러울 수 있고, 지금까지 겪어온 고충을 새발의 피로 만들 만큼 큰일이 또 벌어질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가족이 안락하게 머물 수 있는 집은 변함없이 여기 자리잡고 있다. 그게 지난 10년간 몇 번은 잘못된 선택을 하고, 몇 번은 상승기를 타며 ‘짬푸’를 해 온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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